사설

[사설] 코로나가 키운 혐오, 다양성 존중으로 극복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3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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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호 30면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대표 안산 선수.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대표 안산 선수. [연합뉴스]

코로나19는 우리의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큰 상처를 냈다. 비대면 활동과 함께 증가한 온라인상의 혐오 표현이 대표적이다.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뜻의 혐오(嫌惡)는 감정의 하나이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순간 상대에겐 고통이 되기 쉽다. 특히 개인의 단순한 의사표시를 넘어 집단적 사회현상으로 확산하면 무차별적 폭력으로 치닫는다.

국민 3분의2 “1년간 혐오 표현 경험”
젠더, 이념, 지역, 세대간 갈등 심해
정치도 부추겨…차별과 배제 없애야

중앙일보 기획 ‘혐오 팬데믹’에 소개된 다양한 사례는 한국 사회에 혐오 현상이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 잘 보여준다. 엠브레인퍼블릭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는 응답자가 3분의 2나 됐다. 3분의 1은 자신이 직접 혐오 표현을 써봤다고 했다. 코로나19 이전보다 혐오 표현이 많아졌다는 데는 76.4%가 동의했다.

혐오 표현의 내용과 대상은 다양하다.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상대인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한녀’, ‘한남’이라 부르며 갈등을 키운다. 진보와 보수는 ‘수구꼴통·토착왜구’, ‘입진보·빨갱이’로 깎아내리기 바쁘다. 특정 계층을 향한 일방적인 비하 표현도 많다. 고령자를 ‘틀딱충’으로 부르거나 아이 가진 엄마를 ‘맘충’으로 호칭하는 게 대표적이다. 벌레를 뜻하는 ‘충(蟲)’이라는 접미어에서 보듯 조롱과 비난의 뜻이 담겨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혐오 피해를 많이 본 대상은 중국 동포(조선족)다. 이번 조사에서 혐오 표현을 경험한 이들 중 4분의 3이 중국·중국 동포에 대한 혐오를 접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됐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중국 동포를 범죄와 연관시킨 경우가 많다. 응답자의 75.2%가 “보이스 피싱이나 온라인 댓글 조작의 주범은 중국인·중국 동포가 절반 이상”이라는 문장에 동의했다. 하지만 실제 국적별로 따져본 인구 10만명당 범죄자 수는 한국(2990명)이 가장 많고, 중국(1402명)은 6번째에 해당한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우리의 인식과 실태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잘 보여주는 통계다.

최근 1년간 혐오표현 보거나 들은 적 있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최근 1년간 혐오표현 보거나 들은 적 있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인류의 축제라 불리는 올림픽도 혐오를 비껴가진 못했다. 양궁의 안산(20) 선수는 금메달 획득 소식 못지않게 그의 짧은 머리가 화제 됐다. 페미니스트를 연상시킨다며 온라인상에서 일부 남성들의 무차별적 공격이 이어졌다. 이에 맞서 유명 여성 연예인과 인플루언서의 ‘숏컷’ 인증 릴레이도 벌어졌다.

이 사건은 안산 선수 개인에 대한 논란이라기보다는 ‘숏컷’에서 연상되는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일부 남성들 사이에 팽배한 ‘여혐’ 문화가 주원인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반지성적 사고가 혐오 현상의 본질적 이유라는 이야기다.

정치권은 이를 악용한다. 차별과 배제로 혐오를 부추기고, 국민을 갈라치기를 해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한다. 얼마 전 이재명·이낙연·정세균 등 여당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빚어진 ‘백제’ 논쟁이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구 민란’ 발언이 대표적이다. 특정 지역을 분리해 낙인찍거나 추켜세우는 방식으로 케케묵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혐오의 감정을 동력 삼아 지지세를 넓힌다.

사피어-워프 가설에 따르면 언어는 인간의 사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혐오 표현에 노출될수록 세상을 선악과 흑백의 이분 구도로 보기 쉽다. 그 결과 혐오는 대상뿐 아니라 주체까지 망가뜨린다. 이 때문에 다수 선진국은 학교에서 쓰기·말하기 교육을 할 때 인종·종교·성별 등에 따른 차별과 배제가 없도록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을 가르친다.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다른 것이 틀린 게 아니라는 관용의 자세가 선진 시민의 척도다. 그래야만 혐오를 부추겨 표를 얻으려는 선동가의 횡포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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