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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사랑하는 곳’…중국만은 꺾고 싶은 염원 알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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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호 14면

[SUNDAY 인터뷰]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

빙부상을 당해 잠시 귀국했다 베트남으로 돌아간 박항서 감독은 “계속 성적이 좋아 베트남축구협회와는 허니문으로 가고 있다”며 일부 유튜버들이 제기한 불화설을 일축했다. 박종근 기자

빙부상을 당해 잠시 귀국했다 베트남으로 돌아간 박항서 감독은 “계속 성적이 좋아 베트남축구협회와는 허니문으로 가고 있다”며 일부 유튜버들이 제기한 불화설을 일축했다. 박종근 기자

‘베트남 축구영웅’ 박항서 감독이 조용히 귀국했다가 소리 없이 출국했다. 7월 10일 장인의 부음을 들은 박 감독은 그날 저녁 비행기로 귀국해 상을 치른 뒤 고향의 노모를 찾아뵙는 일 외에는 조용히 지냈다.

월드컵 최종 예선 쉽지 않은 도전 #부족한 점 확인, 발전 기회 될 것 #내년 1월까지 임기, ‘1년 연장’ 옵션 #은퇴 후 현지 유소년축구 돕고 싶어 #거짓 퍼트리는 일부 유튜버에 실망 #빙부상 치른 뒤 미디어·행사 차단

박 감독은 지난 6월 16일, 베트남 대표팀을 맡은 4년 시간 중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진출.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초, 동남아 국가 중 유일하게 카타르로 가는 마지막 관문에 들어선 것이다. 베트남은 최종예선 B조에서 일본·호주·사우디·중국·오만과 맞붙는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박 감독은 어떤 매체와도 접촉하지 않았다. 거취와 관련해 온갖 풍문이 떠도는 데다 자신의 말 한 마디가 어떻게 왜곡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다.

지난 28일 베트남으로 돌아가기 직전에야 박 감독은 중앙UCN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서울 올림픽공원 내 스포츠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인터뷰는 1시간 넘게 진지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어느 팀과도 붙어볼 만하다’ 자신감  

사상 첫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을 축하하기 위해 베트남축구협회가 만든 포스터. [중앙포토]

사상 첫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을 축하하기 위해 베트남축구협회가 만든 포스터. [중앙포토]

가장 시급히 할 일은 뭡니까.
“들어가면 최소 2주 격리해야 합니다. 최종예선을 앞두고 8월초 소집해서 훈련할 명단을 확정하는 게 급합니다. 베트남은 남쪽 호치민에 있는 내국인도 북부 하노이로 오면 2주 자가격리를 해야 합니다. 그런 점까지 고려해 9월 2일 사우디와의 첫 원정경기에 출전할 명단을 확정할 생각입니다.”
베트남 축구는 뭐가 강해졌나요.
“베트남 축구의 강점이라면 국민들의 축구사랑, 정부의 관심이죠. 프로 1부 14개, 2부 12개 팀이 있고 3부도 있을 정도로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선수들의 체력과 체격이 좋아진 편이고, 동남아에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서 어느 팀과도 할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3년 전 인터뷰 때 “선수들 아침 식사로 쌀국수 대신 우유를 먹게 했다”고 하셨는데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쌀국수는 베트남에서 오랫동안 내려온 아침식사지요. 지금도 쌀국수는 나오지만 그것만으로는 단백질 공급이 충분하지 않으니 우유나 계란 등을 보충하라는 겁니다. 대표팀에 유명한 영양학 교수를 초빙해 식단과 영양이 왜 중요한지 강의를 들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왜 시합 전후에 이 음식을 먹어야 되는지 전문가가 이야기하니까 납득하더라고요.”
최종예선 상대 중 본선 진출을 위해 꼭 이겨야 할 팀은?
“목표가 본선 진출이라 이야기 한 적 없어요. 월드컵 본선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현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만요. 이제 동남아를 벗어나 처음으로 아시아 정상권과 경기를 합니다. 다섯 팀은 각자 색깔을 갖고 있는 강팀이죠. 이런 팀을 상대로 베트남 축구의 현실과 부족한 게 뭔지 테스트하고 부딪쳐보면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라고 봅니다.”

얼마 전 베트남 대표인 부이티엔중 선수가 “중국과 함께라면 꿈에 그리던 최종예선 1승도 할 수 있다”고 말해 파장이 일었다. 박 감독은 “그 얘기를 듣고 대표선수 채팅방에서 ‘개인이 한 이야기는 책임을 져라. 자기가 감독도 아닌데 중국을 이긴다는 얘기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얘기만 하라’고 주의를 줬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베트남이 중국을 이기겠다는 의지는 강합니다. 역사적인 부분도 있고, 많은 베트남 국민이 중국과의 경기는 꼭 이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만 갖고 되는 건 아니고 우리가 잘 준비해야죠” 라고 중국전에 임하는 각오도 밝혔다.

월드컵 2차예선 최종전을 앞두고 “최종예선에 통과한다면, 내 역할은 거기까지”라고 말해 논란이 있었는데요.
“말하다가 중간중간 잠깐 쉰 건 통역이 놀라서 묻는 바람에 그랬고요. 그 이야기는 DJ(에이전트 이동준 대표)가 얘기했던 그대로입니다. 저는 내년 1월까지 계약이 돼 있습니다. 월드컵 최종예선 통과하는 게 제가 대표팀 감독으로서 최고의 올해 목표다 그 부분을 이야기한 거지요. 나머지 뜻은 전혀 없고, 계약을 약속한 것은 그대로 지킬 겁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면 베트남에 남겠지만 나가지 못한다면 떠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잘 모르겠어요. 나의 의사도 중요하지만 나를 관리해주는 회사 대표가 있기 때문에 대표가 모든 걸 해줄 거라 전적으로 믿고 있고요. 그런 것까지 생각하다 보면 제 일에 집중을 못하기 때문에…. 1월 31일 계약 종료인데 플러스1이 남아 있어요. 그 플러스1(계약 1년 연장)이라는 건 베트남축구협회와 내가 합의가 돼야 하는 부분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계약 만료) 3개월 전에 협의를 해야 하는 거라고 하니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정점, 잊혀지지 않을 나라

감독에서 은퇴하면 베트남에서 유소년 축구학교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베트남이 유소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한국처럼 학원축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프로 팀이 다 유소년 육성하는 것도 아닙니다. 북부 하노이 쪽에는 큰 그룹이 하는 PVF라는 아주 좋은 축구센터가 있습니다. 베트남이 길기 때문에 중부 남부에 거점을 만들어 권역별로 세 군데로 나눠서 하면 좋겠다 싶어서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외국인이 축구센터 만드는 건 내국인과 같이 하지 않으면 쉽지 않습니다. 베트남 기업이나 이런 데서 제안이 오면 할 수 있지만….”  
QR코드를 찍으면 박항서 감독 인터뷰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으면 박항서 감독 인터뷰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박 감독은 유튜브에 대해 감정이 안 좋다. 일부 유튜버가 조회수를 올리려고 ‘박항서, 태국행 확정’ ‘베트남축구협회와 갈등’ 같은 근거 없는 가짜 뉴스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인터뷰 막판 ‘즉문즉답’ 게임을 했다. ‘나에게 베트남은 ○○○○이다’ 질문에 박 감독은 “사랑하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정상에 있지 못했을 때 가서 베트남 국민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어요. 좋은 선수·스태프들 만났고, 저에게는 사랑하는, 잊혀지지 않을 국가일 수도 있고, 제 인생에서 정점에 와 있던 곳이죠.”

소년 시절 박항서, 개구쟁이에 공부도 잘한 골목대장

프로축구 럭키금성 소속으로 활약하던 당시의 박항서(오른쪽). [중앙포토]

프로축구 럭키금성 소속으로 활약하던 당시의 박항서(오른쪽). [중앙포토]

2019년 1월에 박항서 감독의 고향인 경남 산청군 생초면을 찾아 ‘동네 행님’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들은 ‘소년 박항서’에 대해 “늦게 축구를 시작했지만 공도 예쁘게 차고 중학교 때는 전교 3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도 잘 했다”고 회상했다.

개구쟁이 박항서는 의협심이 강하고 지는 걸 극히 싫어했다고 한다. 축구선수 출신인 선배 한 분이 황당한 일화를 들려줬다. “여름방학에 서울서 형들이 내려와 동네 여고생들과 강가에 놀러갔지. 중학생인 항서가 따라오기에 ‘넌 저리 가라’고 쫓아냈더니 부아가 난 항서가 우리가 나중에 먹으려고 냇가에 담가 뒀던 수박·참외 담은 통 안에 똥을 싸고 도망갔다 아이가.”

박 감독은 ‘가짜 뉴스’라며 펄쩍 뛰었다. “그분이 원래 뻥이 좀 심합니다. 수박을 훔쳐서 깨버리기는 했겠죠. 제가 키는 작아도 싸움은 좀 했고, 불의나 불이익 당하는 걸 못 참아요. 형들한테 달려들다가 두들겨 맞기도 많이 했죠”라며 껄껄 웃었다.

머리카락 얘기도 나왔다. 촬영하는 젊은 직원을 가리키며 그는 “저분처럼 5대5 가르마 탄 분들 진짜 싫어해요”라고 농담을 한 뒤 “저도 머리 좀 났어요. 솔직히 모발 이식을 좀 했지요. 남들은 옛날보다 더 보기 좋다고 하는데 처는 ‘당신의 캐릭터가 없어진다. 나이 들어서 머리에 신경 쓰냐’고 그러는데 나이 드니까 더 외모에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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