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수많은 키스씬? 그게 묘미, 솔직해지고 싶어요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31 00:20

업데이트 2021.07.31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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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호 18면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뮤지컬 ‘레드북’ 주연 김세정

김세정은 “뮤지컬이란 신세계에서 배울 것이 너무 많아 신난다”고 했다. [사진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김세정은 “뮤지컬이란 신세계에서 배울 것이 너무 많아 신난다”고 했다. [사진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사라지는 티 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통통 튀는 사랑스러움이 무기
나만의 느낌 밀고 나가고 있어

부족한 스킬은 배워야겠지만
그대로 따라가고 싶지는 않아

야한 여자도 ‘아재’도 내 모습
유일무이한 아이돌로 남고파

뮤지컬 ‘레드북’의 넘버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의 노랫말이다. 극도로 보수적이었던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소위 ‘야한 소설’을 쓰면서 온갖 편견과 추행에 맞서야 했던 여성 작가의 고뇌가 담겼다. ‘빨간 책 쓰는 여성 작가’의 사연을 ‘웃프게’ 풀어낸 이 창작 뮤지컬은 2016년 시범 공연 때부터 남자 주인공이 대세인 뮤지컬판에 레전드급 여성 캐릭터의 탄생을 알리며 화제를 모았다. 커튼콜 마지막, 불 꺼지기 직전까지 무대에 홀로 남는 원톱 주인공이 여배우인 경우는 드물다.

이번 공연은 캐스팅도 남다르다. 주인공 안나 역을 나눠 맡은 차지연·아이비·김세정의 이미지가 제각각이다. 하나의 이미지로 끼워 맞추기를 거부한 개성 만점의 캐스팅이랄까. 그중 막내인 김세정(25)은 2016년 ‘프로듀스101’으로 데뷔해 걸그룹 I.O.I와 구구단으로 맹활약한 아이돌 출신으로, 뮤지컬은 처음이지만 ‘대체불가능’한 자신만의 무기로 무대를 휘어잡고 있다.

“제 무기요? (깔깔깔 웃으며)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사랑스러움 아닐까요? 통통 튐? 에너지? 스킬 면에선 당연히 선배들이 더 단단하겠죠. 그런 건 배워야겠지만 그대로 따라가고 싶지는 않거든요. 저만의 진심은 다른 느낌이란 생각이 들어서 사랑스러움으로 밀고 있어요.”

걸그룹 I.O.I와 구구단으로 활약

연초 구구단이 해체하면서 걸그룹을 졸업한 세정은 허물을 한꺼풀 벗은 모양새다. 홀로서기가 좀 외롭긴 하지만 마음껏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재미있단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이후 무대를 택한 이유기도 하다. “무대를 빨리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단면적으로 비쳐지는 매체에 있다 보니 몸 쓰는 법이나 발성이 부족하다는 걸 늘 느껴왔거든요. 마침 드라마를 함께 한 유준상 선배의 ‘그날들’을 봤는데, 무대에서 배울 게 정말 많아 보였어요. 이번에는 무대를 꼭 하고 싶다고 회사에 졸랐죠. 뮤지컬을 못했다면 연극이라도 했을걸요. 연극도 너무 매력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욕심쟁이거든요. 하하.”

지난해 첫 무대였던 군 뮤지컬 ‘귀환’은 코로나19 탓에 딱 한 차례 온라인 생중계 공연밖에 올리지 못한 터라 사실상 ‘레드북’이 무대 데뷔작인 셈이지만, 노래도 연기도 안정적이다. 하지만 뮤지컬이란 신세계에서 아직도 배울 게 많기에 신이 난다며 눈을 반짝인다. “무대 오르고 나서 답답해서 울기도 했어요.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을 혼자 감싸 안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선배님들이 연기 스터디에 초대해 주셔서 하나씩 풀어내고 있어요. 발성 전문 노래 수업도 받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문이 열리니 버거울 정도로 배울 것들이 많네요. 요즘엔 그걸 찾는 게 재미에요.”

‘레드북’ 공연 모습. [사진 아떼오드]

‘레드북’ 공연 모습. [사진 아떼오드]

‘레드북’은 개성 강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을 보수적인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운다. 세정은 “그런 안나가 저와 비슷하다”고 했다. “제 성격도 특이해요. 행동도 와일드하고 행복에 과하게 취하고, 아주 솔직한 편이죠. 안나는 세상을 예쁘게 바라보면서 있는 그대로 다 뱉는 친군데, 저도 그래요. 늘 느끼는 건 ‘왜 솔직한 걸 특이하다고 볼까’ 하는 거예요. 어쩌면 저도 그런 편견과 맞서 싸우고 있는 입장인지도 모르죠.”

데뷔 초부터 걸그룹 멤버답지 않게 털털한 ‘아재 캐릭터’가 화제였지만, 늘 환영만 받은 건 아니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첫 키스를 고2 때 했다는 말을 했어요. 그게 기사 헤드라인에 도배가 됐는데, 회사에서는 왜 그랬느냐고 난리가 났고. 그런데 제가 이미 그래 버렸는걸요. 과거를 돌이킬 수도 없고, 없는 말 지어낼 수도 없는데 어쩌겠어요.(웃음) 전 솔직해야 부끄럽지 않아요. 제가 솔직해야 남도 믿을 수 있죠. 기자님과 대화를 할 때도 ‘난 솔직하게 말했으니 나를 인간적으로 봐주시고 느낀 대로 써주시겠지’, 그렇게 사람을 잘 믿는 편이예요. (웃음) ‘솔직하니까 김세정’이라고 알아봐 주는 사람만 주변에 남은 것 같아요.”

키스 얘기가 나온 참에 작품에 키스씬이 많아 힘들지 않으냐 물으니 “그게 묘미”라면서 박수치며 좋아한다. “공연마다 키스씬이 다 다른 거 아세요? 차지연 선배님 아이디어였는데, 사랑이란 감정이 언제 어떻게 올라올지 모르는데 정해두면 어색하다고, 키스씬 만큼은 올라오는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게 프리하게 놔둬 보자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정해진 숫자도 없이 ‘알아서 하세요’예요. 관객분들께 오늘의 사랑을 어느 정도로 보여줄까는 각자의 재량에 달린 거죠. 그래서 어떨 땐 여덟 번도 하고, 한 번에 길게 할 때도 있고 늘 달라요. 키스씬이라 생각하면 부담스럽겠지만 게임 같은 거라 생각해서, 오늘은 어떻게 해볼까 궁리하는 게 재미있어요. 상대의 감정 흐름에 맞춰야 하니 몰입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장면에 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선배님들 아니었으면 이런 경험 못 했겠죠.”

세정은 미디어에 비친 쾌활한 이미지, 딱 그대로였다. 한창 공연 중인 배우답지 않게 목을 아끼지 않고 엄청 큰 목소리로 시종 깔깔거리며 즐겁게 수다를 이어갔다. 자신에 대한 확신과 긍정적인 욕심, 순수한 에너지는 기대 이상이라 놀라울 정도였다. “연예계에서도 유일무이한 존재였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가장 나다워야” 한단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선보였던 노메이크업에 후줄근한 츄리닝 패션도 “제가 가진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제가 전지현 선배님이나 쯔위 선배님 같은 미모는 아니지만, 저만의 매력을 가졌다는 걸 남들도 안다고 생각해요.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제가 어떤 행동을 한들 예쁘게 봐줄거다, 망가져도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죠. 그런 확신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세계에요. ‘프로듀스101’ 때도 엄청난 경쟁이었지만 남들이 아닌 나 자신과의 경쟁이라 생각했고, 첫 무대부터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어서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유준상·아이유 롤모델로 삼아

‘욕심쟁이’라 그런 걸까. 세정은 아이유와 유준상을 한꺼번에 롤모델로 꼽았다. 늘 ‘배울 것이 있는가, 꿈꿀 것이 있는가’가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꿈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해요. 꿈으로 인생이 돌아가고, 에너지도 얻는다 생각하거든요. 준상 선배님은 매번 느끼는 게 아직도 꿈꾸고 계신다는 거죠. 같이 작업하면서 ‘내가 마흔 넘어 쉰까지도 꿈꾸는 인생 살 수 있을까?’ 되묻게 되더라고요. 선배는 그게 가능하단 걸 알게 해주신 분이고, 저도 선배처럼 계속 꿈꾸는 인생을 살아야지 싶어요. 아이유 선배님처럼 되고 싶은 욕심도 있죠. 저도 노래·연기·작사작곡 다 하고 싶고, 인정도 받고 싶거든요. 그 모든 것에서 다 인정받고 계시니 너무 멋있고, 배우고 싶은 것 투성이예요. 저보다 세 살밖에 안 많은데 말이죠.”

그럼 세정이 지금 꾸는 꿈은 뭘까. 작지만 야무진 꿈을 이야기한다. 질투나 열등감 같은 인간의 어두운 본능적 감정을 담은 노래들을 발표하고 싶다는 것이다. 걸그룹은 졸업했어도 아이돌은 졸업하고 싶지 않은 것도 그 꿈 때문이다.

QR코드를 찍으면 김세정이 출연하는 ‘레드북’ 초대 이벤트에 응모할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찍으면 김세정이 출연하는 ‘레드북’ 초대 이벤트에 응모할 수 있습니다.

“아이돌은 좀 무거운 감정도 가볍게 포장해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가진 감정들인데도 남들은 얄밉게 보는 감정들 있잖아요. 그런 감정이 좋은 영향을 줄 때도 있지 않나요. 질투심 때문에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처럼요. 그런 노래들을 부르면 여러 관점들이 생길까 싶어 두렵기도 해요. 두려움을 딛고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게 지금 가진 꿈이예요. 왜? 그게 솔직한 저니까요. 언제나 대중 앞에 솔직해지고 싶은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제 감정들까지 드러내고 나면 훨씬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하나의 발걸음이 ‘레드북’이기도 해요. ‘아이돌이 야한 여자를 얘기해?’라는 편견을 딛고 무대에서 수많은 키스씬과 야하게 ‘꺅꺅’ 소리도 지르고 있잖아요.(웃음) 그 자체로 저의 꿈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귀여운 소녀가 어디까지 솔직해지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지만, 딱 안나처럼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 외치는 것 같아 왠지 응원하고 싶었다. 그 순수함도 오래오래 잃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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