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품격 갖춰 입는 테니스 룩, MZ세대에 스며들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31 00:20

업데이트 2021.07.31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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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호 19면

[서정민의 ‘찐’ 트렌드] ‘테린이’ 유혹하는 운동복  

‘라코스테’가 후원하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 [사진 각 브랜드]

‘라코스테’가 후원하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 [사진 각 브랜드]

“공을 딱 치는 순간의 쾌감은 쳐본 사람만 알아요. 러닝이나 요가와는 달리 격렬한 운동이라 움직인 만큼 스트레스가 풀리고 또 다른 성취감을 느끼게 하죠.”

다른 운동과 차별화 된 패션 매력
경기장 풍경 인스타 소재로 각광
2030 여성 중심 테니스 인구 늘어

건강·섹시한 주름 치마, 반팔 셔츠
코트 벗어나 일상복으로 진화 중

홍보대행사 ‘매그피알’의 이영민 대표가 주말 포함 1주일에 5일 이상 테니스를 치는 이유다. 그가 부쩍 테니스에 빠진 이유는 또 있다. “테니스 룩은 다른 스포츠보다 격식을 갖춰 입는 게 특징이에요. 코로나19로 저녁 약속 등 각종 모임이 없어져서 한동안 패션을 신경 쓰지 않았는데 테니스 경기장을 찾으면서 옷을 잘 갖춰 입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연이은 폭염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주말 아침은 초록색 하드 코트를 뛰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오랫동안 테니스를 즐겨온 매니아도 많지만, 올해는 ‘테린이(테니스 초보자)’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 정현 선수가 2018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단식 16강전에서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를 3-0으로 완파하고 한국 선수 최초로 그랜드 슬램 대회 4강에 진출한 후 테니스 붐이 일었는데, 최근 다시 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리복’의 테니스화 클럽 C 스니커즈. [사진 각 브랜드]

‘리복’의 테니스화 클럽 C 스니커즈. [사진 각 브랜드]

김동경 ‘요넥스’ 테니스 영업팀장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성장세가 주춤했지만 올해 초부터 2030 테니스 인구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며 “라켓 수입량도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동대문의 스포츠용품업체 ‘썬스포츠’ 양승환 부장 역시 “올들어 서울에 실내 테니스장이 많이 생겼다”며 “야외보다 활동하기 좋고 혼자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늘자 20만원을 호가하는 예쁘고 좋은 라켓을 구매하려는 2030세대 여성 테린이가 65% 이상 늘었다”고 했다.

경기장과 일상, 어디든 어울리는 MZ세대 의류 브랜드 ‘르쏘넷’. [사진 각 브랜드]

경기장과 일상, 어디든 어울리는 MZ세대 의류 브랜드 ‘르쏘넷’. [사진 각 브랜드]

MZ세대 여성 ‘테린이’가 늘어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테니스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의상 규정이 엄격하고 까다롭다. 4대 그랜드슬램(호주오픈·프랑스오픈·US오픈·윔블던) 중 윔블던의 경우, 경기 중 의상이라면 반바지·스커트·신발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완전히 흰색이어야 한다. 윔블던뿐 아니라 테니스 룩의 클래식은 흰색을 고집해왔다. 영국의 멋쟁이 신사 윈저 공이 1920년대 V네크라인의 흰색 스웨터와 흰색 면바지를 입으면서 시작된 유행이다. 1929년 ‘악어’라는 별명의 세계적인 프랑스 테니스 선수 르네 라코스테가 특별한 조직의 면으로 짠 반팔 소매 티셔츠 ‘피케 셔츠(폴로 셔츠로도 유명한)’를 만들기 전에는 셔츠도 무조건 긴 소매가 룰이었다.

흰색 반바지·슬리브리스 티셔츠 차림의 ‘아디다스’ 여성 테니스 룩. [사진 각 브랜드]

흰색 반바지·슬리브리스 티셔츠 차림의 ‘아디다스’ 여성 테니스 룩. [사진 각 브랜드]

‘테니스계의 전설’ 안드레 아가시가 80~90년대 파격적인 컬러·무늬 셔츠들로 이 ‘흰색 패션’ 규칙을 깨면서 색·패턴·디테일은 조금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테니스 룩에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패션’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남성은 반바지, 여성은 짧은 주름(또는 주름 없는) 스커트. 상의는 남녀 모두 피케 셔츠(또는 티셔츠)가 기본이다.

남과 차별화 되는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 러닝·요가·필라테스·헬스를 하며 다용도로 입는 레깅스보다 ‘스페셜하게 갖춰 입어야 하는’ 테니스 룩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100년 전 전통을 고수한다는 점도 젊은 세대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남자 친구를 고를 때 슬렁슬렁 걸으면서 돈 내기를 하는 골프 매니아보다, 코트 안에서 열정적으로 움직이며 스포츠의 본질을 지키려는 테니스 매니아가 낫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원피스 디자인의 ‘라코스테’ 유니폼은 일상복으로도 인기가 많다. [사진 각 브랜드]

원피스 디자인의 ‘라코스테’ 유니폼은 일상복으로도 인기가 많다. [사진 각 브랜드]

둘째, 테니스 경기장과 테니스 룩은 모두 완벽하게 ‘인스타그래머블(Insragra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하다. SNS를 통해 일상과 취향을 과시하는 걸 즐기는 MZ세대에게 초록색 하드 코트, 정갈한 흰색 네모들, 공중에 뜬 네트, 파라솔을 쓴 심판석 등의 배경은 구조적이고 매력적인 사진 연출과 결과물을 선사한다.

지난 6월 문을 연 테니스장 ‘테니스 아레나’는 서울 시내에서 떨어진 김포시에 위치했지만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예약시스템 오픈 3분 만에 4개 코트의 일주일 치 예약이 완료된다. 이곳의 홍원섭 실장은 “바다처럼 청량하고 경쾌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블루 코트로 꾸몄는데, 젊은 층에서 벌써 ‘인증샷 찍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났다”며 “4050세대가 테니스 클럽 멤버들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해 함께 오는 것과는 달리, 2030세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팀을 구성하고 처음 코트에서 만나 경기와 사진 찍기를 즐기고 쿨하게 헤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소개했다.

테니스 룩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주름 스커트와 카디건, 크롭 티셔츠를 매치한 가수 현아. [사진 인스타그램]

테니스 룩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주름 스커트와 카디건, 크롭 티셔츠를 매치한 가수 현아. [사진 인스타그램]

게다가 요즘의 테니스 룩은 스타일리시한 일상복으로 진화 중이다. ‘라코스테’ 송현귀 이사는 “피케 셔츠가 남자들의 캐주얼한 주말 의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오래됐다”며 “최근엔 MZ세대 여성을 중심으로 짧은 주름 스커트 또는 원피스 스타일의 테니스복을 패셔너블한 일상복으로 활용하는 예가 많다”고 했다. 건강미와 섹시미를 동시에 연출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인스타그래머블한 조건을 충족시킨다.

몸에 붙는 스포츠 소재 상의에 테니스 룩 스타일의 주름 스커트를 입은 가수 제니. [사진 인스타그램]

몸에 붙는 스포츠 소재 상의에 테니스 룩 스타일의 주름 스커트를 입은 가수 제니. [사진 인스타그램]

전문 스포츠의류 브랜드는 아니지만 테니스 룩 스타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MZ 세대 패션 브랜드 테니스보이클럽, 르쏘넷, 클로브 등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내놓은 티셔츠·미니스커트·원피스·반바지 등의 아이템들은 경기장에서 실제로 입고 뛰어도 좋고, 일상에서 청바지 등과 따로 매치해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반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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