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줍은 듯 선정적인 알쏭달쏭 일본 문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7호 20면

소확행하는 고양이

소확행하는 고양이

소확행하는 고양이
정순분 지음
소명출판

편의점·애니메이션·추리물 등 #30개 키워드로 본 일본의 내면 #다양성·조화 중시하는 정신 #이웃 한국에는 왜 적용 않나

책 제목의 ‘고양이’는 고대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다는 일본인을 상징한다. 일본 문학 연구자이자 배재대 교수인 저자는 ‘소확행’을 한 특징으로 끄집어내며 일본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소확행’은 작지만(小)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1986), 『소용돌이 고양이의 발견법』(한국어 번역본 ‘일상이 여백’, 1996) 등에서 이 말을 사용했다. 1990년대 일본이 거품경제 부작용으로 경제적 난관에 부딪히면서 소확행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불확실성 시대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사람들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확행하는 일본인’은 분명히 이 시대의 한 특징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일까? 일본에 관한 일이라면 ‘그런데’의 꼬리표를 붙여보곤 한다.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으로 각인된 반복된 피해의 기억이 작동하는 것이다.

저자가 일본에 유학을 떠난 것은 1990년대 초반인데, 일본에서 10년을 지내면서 격한 반일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와는 달리 일본은 우리한테 관심조차 없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강자의 여유였던 것일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한국의 국력과 문화가 그때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성장했다. 그런데도 일본은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이제 우리가 좀 더 여유로워져야 하는 것일까?

두 나라 사이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저자는 일본 문화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작업을 통해 두 나라 사이의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혀보려고 하는 것 같다. 저자는 30개 항목을 통해 일본 문화 깊이 보기를 시도한다. 신도(神道), 천황, 세습, 선(禪), 소도시, 새로운 어른, 편의점, B급 문화, 돈가스, 기모노, 만화, 애니메이션, 인형, 축소, 축제, 추리물, 사랑, 열차, 온천 등이 저자가 뽑은 일본 이해의 키워드들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얌전한 일본 문화의 이미지와 달리 폭력적인 경우가 많다.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한 장면. [사진 워터홀컴퍼니]

일본 애니메이션은 얌전한 일본 문화의 이미지와 달리 폭력적인 경우가 많다.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한 장면. [사진 워터홀컴퍼니]

일본 문화는 언뜻 모순덩어리처럼 보인다. 겉으로 친절해 보이는데, 속마음을 알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이 발달한 나라에서 미신과 같은 자연신을 믿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평소의 모습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듯한데,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은 왜 그렇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일까? 지진이 나면 질서도 잘 지키고 단합도 잘하는데, 평소에는 왜 혼자 행동하고 밥도 혼자 먹는 이들이 많을까? 30개의 키워드는 이런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일종의 수수께끼처럼 보이기도 하는 일본 문화의 성격에 대해 저자는 한 가지 잣대로만 판단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그 이유를 저자는 천황 제도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일본의 전체 역사에서 천황이 직접 정치를 한 때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고 한다. 천황 대신 귀족이나 무사, 시민(총리) 등이 정치를 담당해 왔다. 천황은 정신적·문화적 지배자이며 귀족이나 무사, 총리 등은 정치적, 행정적 지배자라는 얘기다. 일본 지배층의 구조 자체가 이원적이고 이중적이라는 점이 일본을 이해하는 저자의 기본 전제로 제시되고 있다.

일본 고대의 귀족 시대와 중세의 무사 시대에는 상반된 성향의 계층을 어떻게든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규율만 지키면 무엇을 해도 허용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이념이나 명분보다는 실리를 취하는 방식이 환영받는 배경으로 작용했고, 그런 전통이 지금도 남아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 식이 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서로 성격이 다른 문화가 동시에 공존하며 발달할 수 있었고 가치관 역시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게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상반된 성향의 공존, 즉 다양성을 일본 문화의 특징으로 꼽은 저자는 이를 일본 전통의 ‘화(和)의 정신’과 연결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 다양성과 조화를 중시하는 정신이 일본과 바로 이웃하고 있는 한국에는 왜 잘 적용이 되지 않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저자는 일본 문화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소확행하는 현대 일본인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도 않은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