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장보기…조선 선비는 살림꾼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3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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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호 21면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정창권 지음
돌베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엔 남자가 집안일을 하는 것은 당연시된다. 요리와 식사 준비는 물론 설거지, 청소, 다림질까지 남자들에게 ‘열외’란 없다. 젊은이들뿐 아니라 중년층까지 집안일 하는 남자들이 느는 추세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요리 솜씨를 자랑스럽게 올리는 남자들도 많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진다’는 말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돼 버렸다.

가부장제 사회에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했다고 흔히 알려진 조선시대엔 남자가 살림하는 일이 없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은 각종 문헌을 인용하면서 ‘조선시대에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양반가의 남자가 집안 살림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는 당시의 일기 자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대 남자는 여기에 비하면 오히려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1596년 10월 4일, 아침에 아내가 나보고 가사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한참 동안 둘이 입씨름을 벌였다. 아! 한탄스럽다.” 오희문이 쓴 일기 『쇄미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김홍도의 ‘감농하는 양반’, 종이, 28X23.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 돌베개]

김홍도의 ‘감농하는 양반’, 종이, 28X23.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 돌베개]

조선시대 남자들은 바깥일을 해서 양식과 반찬거리, 땔감 등 식재료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직접 요리하고 나아가 요리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실학자 서유구는 1807년 경기도 연천의 금화에 은거할 때 농사를 지으면서 어머니께 아침저녁 진지를 올렸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이 가득 차린 음식이 모두 자네의 열 손가락에서 나왔구먼”이라고 칭찬했다. 서유구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옹치잡지』라는 요리책을 쓰기도 했다. 16세기 초 안동 지역에 살았던 유학자 김유도 요리책 『수운잡방』을 펴냈다.

조선시대 궁중 요리사는 사옹원 소속의 숙수(熟手)라는 남자 요리사가 전체를 담당했다. 궁중뿐만 아니라 관아의 주방인 반빗간의 음식 담당자도 주로 남자가 맡았다.

연암 박지원도 요리를 잘했다. 연암은 1796년 안의 현감 시절에 한양의 자식들에게 고추장을 보내면서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는 편지를 동봉했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 주면 앞으로도 계속 두 가지를 인편으로 보내든지 말든지 하겠다.”

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접대하는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은 양반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일이었다. 남녀 모두의 일이었으며 또 아내가 없을 때는 남편이 제수 준비부터 제사 지내기와 손님 접대까지 모든 것을 홀로 치렀다.

남자도 당연히 살림의 한 부분을 맡고 살림을 잘하면 그것이 미풍양속이 되던 풍속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야 바뀌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성리학과 내외법의 강화로 여성의 사회 참여 자체가 금기시되는 풍조가 생겨났다. 하지만 이때에도 ‘외조하는 남자’들이 등장했다. 조선시대 여자의 문집 중 현존하는 것은 32종 정도다. 여자의 문집 대부분은 남편이나 아들, 사위, 형제 등 남자에 의해 편찬됐다. 외조하는 남자가 실제로는 많지 않았겠지만 이런 풍토를 볼 때 일부에선 여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분명히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한국사회에서 이젠 남성과 여성의 역할 구분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조선시대엔 이랬는데’라는 ‘라떼타령’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틀린 점이 많았다. 살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남자들이 많아질수록 한국사회의 선진화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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