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으로 번진 페미 논란…외신 “안산 온라인 학대” 우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31 00:02

업데이트 2021.07.3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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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호 03면

안산(20·광주여대)은 도쿄올림픽에 나선 한국 선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여자 양궁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다. 앞서 혼성전과 여자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딴 그는 한국 하계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단일 대회 3관왕에 올랐다.

안산, 페미니스트라고 공격받아
류호정·구혜선 등 지지 메시지

AFP “한국은 여전히 남성중심”
전문가 “여성스러움에 대한 편견”

도쿄에서 가장 빛나는 금메달리스트 안산. 그는 뜻하지 않게 ‘페미니스트 논란’에 휩싸였다.

여성을 정치·경제·사회 문화적으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념이 페미니즘이다. 민주·평등사회를 구현하는 기본적인 이념인 페미니즘이 반사회적일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이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처럼 왜곡, 변질시키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격화한 젠더 대결은 얼마 전 정치권 아젠다로 옮겨붙었다. 날로 심화하는 남녀 갈등은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올림픽으로 번졌다. 급기야 사회적 분노가 올림픽 최고 스타 안산에게 표출된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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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이 지난 24일 첫 금메달을 따며 유명해지자마자 ‘페미니스트 논란’이 시작됐다. 한국의 일부 남성 네티즌들이 “과거 안산이 소셜미디어(SNS)에 ‘웅앵웅’ ‘오조오억’ 등 남성 혐오 표현을 썼다”며 비난했다. 짧은 머리(쇼트 커트)와 여대를 다닌다는 점도 안산이 페미니스트라는 근거로 거론됐다.

안산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적이 없다. 그러나 일부 남성들은 그가 페미니스트라고 몰아가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안산을 향한 무차별 인신공격이 쏟아졌다. ‘안산이 금메달을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국가대표 선수가 남성을 혐오하는 표현을 쓰면서 공인의 책임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젠더 이슈로 인해 안산이 올림픽에서 이룬 성과마저 부정당하자 반대 여론도 커졌다. ‘안산 선수를 보호해달라’ ‘절대 선수를 사과하게 하지 말라’ 등의 댓글이 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에 수천 건 올라왔다. 이에 대한 재반격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는 졸지에 성 대결의 장이 돼버렸다.

인터넷에서 벌어진 한국의 남녀 갈등은 외신을 타고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이슈로 커졌다. 외국인의 시각은 매우 시니컬하다. 페미니스트를 원래 뜻 그대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안산을 둘러싼 젠더 갈등을 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AFP통신은 “안산의 짧은 머리가 그가 페미니스트라는 걸 암시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중 일부는 안산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또 금메달을 반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며 “안산은 일부 한국 남성들의 ‘온라인 학대(Online abuse)’ 대상이 됐다.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자 최고의 기술 강국이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회”라고 보도했다.

로라 비커 BBC 한국특파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머리 모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이 양성평등을 이루려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더러운 단어가 되어 버렸다”고 썼다. 또 폭스뉴스는 “안산은 자랑스럽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한국에서 장기간에 걸쳐 성장한 반페미니스트에 의해 비난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도 이 논란에 가세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SNS에 과거 염색했던 쇼트커트 사진을 공유하며 “페미(페미니스트의 준말) 같은 모습이라는 건 없다. 짧은 머리, 염색한 머리 등 각자 원하는 걸 선택하는 여성이 페미니스트”라고 적었다. 배우 구혜선도 쇼트 커트 사진과 함께 “저는 남성과 여성에게서 태어난 여성이다. 또한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이라고 썼다.

도쿄 현지에서 선수들을 응원 중인 대한양궁협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안산의 심리상태를 걱정했다. 장영술 양궁협회 부회장은 “회장님이 오늘(30일) 새벽 ‘혹시 안산 선수를 격려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선수가 부담을 느낄까 봐 나와 감독에게 먼저 알아본 것이다. 회장님이 안산에게 ‘(여러 다른 이야기에)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해주셨다. 우리 선수들은 굉장히 담담하다”고 했다. 여자 개인전 8강에서 탈락한 강채영은 “경기에 집중하는 게 중요해서 (안)산 선수가 그런 부분에 대해 얘기를 안 하는 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안산은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건 뒤 “(페미니스트) 이슈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박채순 양궁대표팀 감독은 “경기 외적인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외신기자의 질문에 안산도 같은 답을 내놓았다.

주종미 호서대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여성 스포츠 선수 중엔 보이시한 선수들이 많다. 굳이 안산에게 ‘여대에 쇼트 커트’라며 페미니즘 프레임을 씌우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안산이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것도 아닌데 이런 논란이 벌어진 건 여성스러움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비뚤어진 감정 표출”이라고 지적했다.

체육철학자 김정효 서울대 외래교수는 “전선이 확대되기 전에 대한체육회가 나서야 한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이 주는 가슴 뭉클한 감정보다 특정 선수의 헤어스타일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시대다. ‘특정인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의 금메달도 싫다’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이 현상에서 읽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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