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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오디션, 미 음반사와 협업, 강력 팬덤 구축…K팝 열풍 방정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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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호 08면

[SPECIAL REPORT]
‘K팝 3.0’ 그 뜨거움의 비밀

BTS

BTS

BTS 세상이다. ‘버터(Butter)’로 K팝 사상 전례 없는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를 7주간 달성한 후 후속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에게 1위를 물려주더니, 26일 다시 ‘버터’로 1위를 탈환하는, 경이로운 ‘셀프 바톤터치’를 눈앞에서 펼쳐보인 것이다.

K팝 현지화 3단계 발전 #보아, 일본서 데뷔 후 미국도 진출 #블랙핑크·갓세븐, 글로벌 맞춤 공략 #미 음반사, 팬덤 규합 등 아웃소싱 #글로벌 시장서 장르가 된 K팝 #한국, 작년 45% 가장 빠르게 성장 #‘거물’ 스쿠터 브라운, K팝 산업 합류 #팝 본고장 미국도 한국 노하우 배워

이제 BTS가 빌보드 차트를 뒤흔들어도 놀라지 않는 시대가 됐지만,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음악산업 지도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치를 제대로 찾아 그려넣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아시아권에서는 ‘한류’라는 새로운 흐름이 떠올랐지만 ‘아시아의 별’ 보아(BoA), ‘월드 스타’ 비(Rain)를 알아보는 서구인은 소수의 마니아 집단에 불과했다. 2005년 유튜브가 미디어 혁명을 일으키며 K팝 세계화에 근본적인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으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등장해 판을 키우기 전까진 철저히 ‘그들만의 리그’였다.

하이브, 미국판 K팝 보이 그룹 채비

세계시장 진출 흐름

세계시장 진출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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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등장에도 처음부터 그들의 존재를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2017년 BTS가 미국의 3대 음악 시상식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깜짝 초청돼 역사적인 공연을 펼치고, 빌보드 뮤직 어워드의 ‘톱 소셜 아티스트’에서 팝 아이콘 저스틴 비버를 밀어내며 수상자로 지명되는가 하면 마침내 한국어로 된 앨범을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려놓는 등 숨 가쁜 성공 가도가 이어졌지만, 너무도 급작스러운 전개에 한국의 언론과 대중은 일제히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다이너마이트(Dynamite)’의 정상 등극도 국내에서는 일종의 ‘이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다. 누구도 주목하지 못했던 변방의 그룹이 어떻게 미국 시장의 중심부에 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어떤 면에선 당연했다.

중요한 것은 K팝을 두고 글로벌-로컬 간의 시차가 이미 발생했고, 그 간극이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타임과 같은 세계의 유력 매체들은 BTS를 “지구상 최고의 보이밴드”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80~90년대 듀란듀란이나 뉴키즈 온더 블록처럼, 이제 한국의 팝 그룹이 전 세계 최고의 아이돌로 등극한 것이다.

BTS의 성공이 독보적이긴 하지만, K팝 전반의 위상 역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60년대에 비틀스가 ‘브리티시 인베이젼’이라는 유행을 선도했던 것과도 유사하다. 올해 열렸던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는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 오른 총 다섯 팀의 후보 중 무려 세 팀이 한국 아티스트였다. 몇 년째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이자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블랙핑크와 일본을 비롯해 K팝 커뮤니티 내에서 가장 두터운 팬을 보유한 팀 중 하나인 세븐틴이 수상자인 BTS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K팝과 유사한 제작 노하우에 바탕을 둔 필리핀 보이그룹 SB19까지 포함하면 범 K팝 아티스트들이 현재 미국 현지의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여기서 새삼 점검해봐야 하는 것은 K팝의 성공 노하우, 그중에서도 현지화 전략의 현주소다. BTS처럼 특별한 현지화 전략 없이 세계를 정복한 사례는 극히 예외로 친다 하더라도 보아 이후 지난 20년간 K팝의 국제적 성공을 이끈 가장 중요한 동력은 세계 시장을 겨냥한 맞춤형 공략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K팝 현지화 기술의 발전은 대략 3단계의 틀 안에서 진행되어 왔다. 첫 번째는 한국 아티스트에게 언어와 문화를 교육시켜 현지용 아티스트로 키워내는 것이었다. 먼저 주목한 나라는 일본이었고, 선두 주자가 보아였다. SM엔터테인먼트가 ‘신비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30억원을 투자해 보아를 한국과 일본을 동시 공략하는 가수로 트레이닝했다. 춤과 노래는 물론 영어와 일본어 교육을 받으며 J팝 가수로서 정체성을 만든 보아는 2002년 일본어 앨범을 시작으로 활동을 개시했고, 일본 시장 점령 후 그 성공을 발판으로 2009년 영어 앨범 ‘BoA’를 발매해 K팝 가수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에 진입했다.

블랙핑크

블랙핑크

두 번째는 해외 교포나 외국인 멤버 등 인종·언어·문화에서 현지 대중이 친숙하게 느낄만한 인적 자원을 활용하는 형태였다. 지금도 해외에서 인기 많은 아이돌 그룹을 보면 대체로 해외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외국 출신 멤버를 포함하고 있다. 소녀시대의 티파니와 제시카는 미국 교포이며, 갓세븐의 뱀뱀과 블랙핑크의 리사는 태국인, 트와이스의 쯔위는 대만인, 모모와 사나는 일본인이다. 세계 시장에서 이들은 K팝의 홍보대사이자 문화 통역사 역할을 맡는다. 이제 K팝은 그 마지막 단계이자 궁극적 진화의 모델로 나아가고 있다. 오로지 현지 멤버들로만 이루어진 K팝 그룹을 현지에서 만들고 있는 것이다. JYP가 지난해 일본에서 ‘K팝 방식’의 오디션 및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 데뷔시킨 9인조 걸그룹 니쥬(NiziU)가 대표적이다. 니쥬는 얼마전 디지털 앨범 ‘메이크 유 해피’로 오리콘 차트를 싹쓸이하고 소프트뱅크와 의류브랜드 H&M 등 대기업 광고 모델로도 활약 중이다.

최근 K팝 기업들이 약속이나 한 듯 새로운 현지화 프로젝트를 속속 발표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미국과 일본 등 외국 회사들과의 합작을 통한 현지용 K팝 그룹을 뽑는 오디션을 개최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가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수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핵심적 팬덤을 확보하는 동시에 그 과정 자체를 상품화시키는 방식은 이미 K팝이 국내에서 유효성을 검증한 성공모델이기도 하다.

관심을 끄는 것은 역시 팝의 중심인 미국과의 협력이다. 하이브(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미국 최대 음반사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 산하의 게펜(Geffen)레코드와 함께 미국판 K팝 보이 그룹을 만들 예정이며, CJ ENM은 HBO MAX와 함께 남미 K팝 보이그룹 선발 경연 프로그램을 론칭한다. SM은 MGM과 합작해 자사의 보이그룹 프로젝트인 NCT의 미국 유닛인 NCT 헐리우드를 뽑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K팝은 필연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K팝은 무엇인가? 한때는 외국에 알려진 한국의 주류 음악이나 아이돌 정도를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이제 K팝은 하나의 장르, 산업, 혹은 카테고리로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에스파

에스파

하지만 K팝 현지 프로젝트를 통해 외국 국적의 K팝 유사품이 탄생한다면, 그것을 우리가 K팝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이 경우 K팝은 한국에서 만든 팝이 아닌 한국에서 유래한 팝, 혹은 한국 ‘풍’의 팝에 가깝게 그 의미가 변하게 될 것이며, 음악이나 신(scene)이 아닌 하나의 기술이나 ‘개념’의 단계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이제 막 실험 단계를 거치고 있는 메타버스 기반의 사이버 아바타 가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국경이나 인종, 문화에 종속되지 않은, 하지만 K팝의 미학에 근거한 새로운 카테고리가 만들어질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얼마 전 경제면을 장식한 충격적인 뉴스가 하나 있었다. BTS의 소속사인 하이브가 미국 기업인 이타카(Ithaca)를 인수했다는 소식이다. 미국 최고의 아티스트 매니저이자 레코드계의 거물인 스쿠터 브라운(Scooter Braun)은 2010년대 미국 최고의 아이돌 스타인 저스틴 비버를 발굴해 길러낸 인물로, 미국 틴 팝 산업뿐 아니라 싸이 등 해외 가수의 미국 내 프로모션을 돕는 절대적인 권력자로 군림해왔다. 그런 그가 회사의 지분을 하이브에게 넘기고 이사회의 일원으로 사실상 K팝 산업에 합류를 결정한 것이다.

한국에서 K팝의 해외 인기에 갸우뚱하고 있는 사이, 정작 산업을 움직이는 주체들은 바람의 방향을 정확히 읽고 기민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의 최첨단에 서 있는 이들은 미국 내 K팝의 성공을 이미 기정사실화 했고, 이 멈추지 않는 경주마에 누가 더 선제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베팅할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다.

미국, 한국 아이돌 육성 기술력 인정

NCT 드림

NCT 드림

이 같은 그들의 태도는 명백한 숫자에 근거하고 있다. 음악 산업에 관한 가장 표준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내놓은 최신 통계를 보자. 지난해 세계 음악시장 규모는 216억 달러(약 24조1380억 원)로 전년(202억 달러) 대비 6.9% 상승했다. 그중 아시아 시장은 남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는데, 세계 2위의 내수 시장을 보유한 일본이 예외적으로 2.1%의 매출 하락을 기록하는 와중에서도 K팝은 한국을 전년 대비 44.8%의,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음악시장으로 자리매김시키면서 아시아 음악시장 성장(9.5%)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한국은 올해 처음으로 6위에 진입하며 향후 가장 유망한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BTS의 미국 주류시장 정복을 통해 그 실체가 입증된 K팝은 이제 마니아들의 흥미로운 하위문화나 인터넷 바이럴 수혜자라는 위상을 넘어 주류 산업의 주요 카테고리이자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BTS를 가능케 한 K팝만의 제작 노하우와 훈련 방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BTS가 미국 대중음악 시장을 전복시킨 핵심적 주체인 ‘아미’ 그러니까 ‘팬덤’에 대한 관심이 있다. 스쿠터 브라운이 하이브의 일원이 되기로 결정한 것, 그리고 미국 음반사들이 그들이 전통적으로 점해온 틴 팝 산업을 K팝에게 사실상 아웃소싱하려는 제스쳐를 보이는 것도 결국 K팝이 가진 정교한 제작 노하우와 온라인 앱 등을 중심으로 한 팬덤 규합 및 그들과의 소통 능력에 있다.

팬들의 취향을 읽고 그들과 소통하는 능력에 있어서 이미 K팝은 미국 시장의 틴 팝 산업이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 이미 지난 10년간 세계 시장을 뒤흔든 틴 팝, 즉 10대를 위한 아이돌 음악 산업의 트렌드는 한국이 리드하고 있으며, K팝의 압도적인 팬덤 구축 능력은 팝의 본고장인 미국을 이미 추월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대중음악 산업에 있어서 수십 년 앞선 노하우와 인프라를 가진 미국 시장이 ‘아이돌’이라는 카테고리에 한해 K팝의 기술적 우위를 인정하고 이 산업에 주도적으로 동참하고자 하는 것이다.

K팝은 이제 세계 대중음악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리드할 수 있는 주도권을 잡았다. 미국과 서구권이 오랜 세월 구축해온 절대적인 위상이 당분간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K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이제 그 무대는 아시아를 넘어 북미와 남미의 중심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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