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귀양지로 꼽은 '섬의 모둠'…차로 쓰~윽 갔다 왔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31 00:02

업데이트 2021.07.3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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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호 15면

섬의 무리. 군도(群島)라고 한다. 모여 있되 색과 맛이 저마다이기 때문에 '섬의 모둠'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 휴가지가 된 유배지
고군산군도, 새만금방조제서 다리 연결
비대면 여행 인기 속 지난해 방문 2위

한국은 섬이 많은 나라 세계 4위. 2018년 기준 3348개다. 그중 57개를 품은 군도가 있다. 고군산군도(전북)다. 덕적군도(인천, 섬 41개), 흑산군도(전남, 68개), 추자군도(제주, 42개) 등 우리나라 군도는 여럿이다.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대장도에는 대장봉이 있다. 얼핏 보면 야트막한 높이 때문에 쉽게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대장봉은 만만치 않은 가파름을 선사한다. 사진은 대장봉에서 바라본 대장도(붉은 지붕의 건물이 있는 섬)와 장자도(다리 건너 섬), 선유도(왼쪽의 해변이 있는 섬).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대장도에는 대장봉이 있다. 얼핏 보면 야트막한 높이 때문에 쉽게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대장봉은 만만치 않은 가파름을 선사한다. 사진은 대장봉에서 바라본 대장도(붉은 지붕의 건물이 있는 섬)와 장자도(다리 건너 섬), 선유도(왼쪽의 해변이 있는 섬). 김홍준 기자

이 여름에 굳이 고군산군도를 꼽은 이유는, 여러 다리가 섬들을 징검다리로 만들면서 군도의 깊숙한 곳까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섬과 섬을 잇는 드라이빙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 비대면 여행으로 손꼽혀 왔다.

새만금방조제와 고군산군도를 연결하는 도로가 만 5년 전인 2016년 7월 개통했다. 군산에서 배로 1시간 30분 걸리던 시간을 절반 이상 줄였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2569개 주요 관광지점의 입장객을 추린 결과, 고군산군도(선유도)가 288만 명으로 경북 영덕 강구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트여 있으나 드러나지 않는 고군산군도의 이율배반적 매력은 한때 이 섬들을 유배지로 각광 받게도 했다. 그 유배지가 휴가지가 된 것이다.

전북 군산시에서 차로 새만금방조제를 14.4㎞ 달리면 고군산군도의 입구 격인 신시도에 닿을 수 있다. 신호등은 4개다.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에서 차로 새만금방조제를 14.4㎞ 달리면 고군산군도의 입구 격인 신시도에 닿을 수 있다. 신호등은 4개다. 김홍준 기자

# 왜구에 '군산도' 궤멸…재건 때 '고군산도' 돼 

원래 ‘군산도’는 선유도를 가리켰다. 궁금증 하나. 왜 ‘고(古)’가 붙었을까.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고군산군도(2000)』에 "조선 태조 때 군산도에 설치한 만호영(萬戶營, 수군의 최전방 진영)이 세종 때 진포(현재의 군산)로 옮기면서 ‘고(古)군산도’가 됐다"고 적는다.

하지만 김종수 군산대 역사철학부 교수는 다른 주장을 편다. 그는 최근에 출간한 『군산의 역사와 인물(국학자료원)』에서 “이미 1380년 고려 우왕 때 왜구 1만여 명의 침입으로 군산도의 수군 진영이 와해하고, 군산에 새로운 진영(군산진)을 구축했다”며 “조선 후기 들어 군산의 경제·군사적 가치가 커지자 군산진만으로는 감당이 안 돼, 인조 2년(1624년)에 별도의 진을 군산도에 설치하면서 고군산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군영이 들어서면서 섬은 ‘관리’가 됐다. 어업과 수군 복무로 주민들은 풍족해졌다. 1762년(영조 38년) 고군산의 무사 김상건이 흉년에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 쓰라고 하면서 쌀 1300석을 국가에 납부할 정도였다. 김정호가 『대동지지(1864)』에 다음과 같이 썼다. "주민들은 모두 부유하고 집과 의복, 음식의 호사스럽고 사치스러움이 성읍보다 훨씬 더하다."

유배지가 관리되면 유배자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다. 현지 백성이 넉넉하면 인근 주민에 의지해야 할 유배자들의 민폐가 덜해지게 된다. 영조가 1728년에 ‘관수(官守·관리)가 없는 외딴 섬에는 죄인을 배정하지 말라’고 한 이유다.

한양에서 거리(직선 500리·200㎞)가 어느 정도 있는 섬. 고군산군도는 유배지로 적당한 곳이었다. 김종수 교수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에서 유배지로서의 고군산군도에 대한 최초 기록은 1701년(숙종 27년)에 나오는데, 이후 103명의 유배자가 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고종은 그중 절반이 넘는 53명을 유배 보낼 정도로 쏠림이 심했다.

고군산군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고군산군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 오르는 맛 대장도, 즐기는 맛 선유도
고군산군도를 훑어보는 동선은 자동차로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안쪽인 대장도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대장봉(143m)은 대장도의 백미다. 산행이 싫다고 하는 사람도 몸이 절로 가는 곳이다. 일단 수치상 산의 높이가 야트막하기 때문. 둘째는 고군산군도의 다른 섬들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는 순수한 욕망 때문.

지난달 29일에는 치마에 슬리퍼, 양복에 백구두인 채로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온전히 발로 해발 고도를 높인 노고는 시원한 조망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작은 다리 건너 장자도의 낙조대에는 발길이 무성하지만, 아직 오후 2시. 일몰까지 6시간이나 남았다. 장자도와 대장도는 하나로 묶기도 한다. 장자대교는 선유도로 이어준다.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중 선유도의 대봉에서 바라본 망주봉과 선유도 해수욕장.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중 선유도의 대봉에서 바라본 망주봉과 선유도 해수욕장. 김홍준 기자

선유도는 고군산도군도의 대표 섬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선유도는 원래 두 개의 섬인데, 사구로 연결돼 있다. 그 사구가 명사십리해수욕장(또는 선유도해수욕장)이다. 선유도 안쪽 남악산(156m)의 한 자락. 서울 용산구에서 왔다는 이원규(32)씨가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멀리서 보고 괜찮다 싶어 왔는데 생애 첫 백패킹이 대박”이라고 말했다. 백패킹 전문가 민미정(43)씨는 “그곳은 알만한 백패커들은 아는 명소인데,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고 전했다.

대부분 선유도를 찾는 사람들은 그 안쪽, 그러니까 남악산이나 남악리까지 들어가지 않는다. 길은 좁아지고 관광 시설은 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악산에 오를 일이다. 활처럼 굽은 모래톱. 그 굴곡의 정점에 뜬금없이 솟은 망주봉. 멀리, 높이서만 볼 수 있는 이국적 조화임이 분명하다.

망주봉은 험하다고 해서 군산시에서 입산을 금지했다. 깎아지른 절벽에 클라이밍 루트가 있다. 녹슨 확보물이 보인다.

전북 군산시 선유도는 고군산군도의 섬 중에서 가장 사람이 몰리는 곳이다. 망주봉이 멀리 보이는 선유봉에서 염소 한 마리가 기자를 빼꼼히 바라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선유도는 고군산군도의 섬 중에서 가장 사람이 몰리는 곳이다. 망주봉이 멀리 보이는 선유봉에서 염소 한 마리가 기자를 빼꼼히 바라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 중 하나인 선유도의 한 횟집에서 맛본 물회는 더위에 쓰러져가던 몸뚱이를 일으켜 세웠다.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 중 하나인 선유도의 한 횟집에서 맛본 물회는 더위에 쓰러져가던 몸뚱이를 일으켜 세웠다.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선유도 망주봉 남쪽에 오룡묘가 자리잡고 있다.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선유도 망주봉 남쪽에 오룡묘가 자리잡고 있다. 김홍준 기자

송나라 사신 서긍이 1123년 6월 이 일대를 보고 입을 떡 벌린다. 『선화봉사 고려도경』 에 글을 남긴다. “…(망주봉) 두 봉우리는 나란히 우뚝 서 있고 높은 절벽을 이루어 수백길이나 치솟아 있다. 서쪽의 가까운 작은 산 위에는 오룡묘(五龍廟)와 자복사(資福寺)가 있다. 또 서쪽에 숭산행궁(崧山行宮)이 있고….” 선유도는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었고, 왕이 머무른 행궁이 있었다는 말이다. 오룡묘는 복원돼 남아있지만, 자복사나 숭산행궁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왜구들이 이곳을 침입하면서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해수욕장에 700m 집라인도 있으니, 선유도는 즐기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선유봉(112m)을 놓쳐선 안된다. 선유봉은 해 질 녘 염소의 천지가 됐다. 대장도와 장자도 사이로 떨어지는 해를 볼 수 있는 선유봉은, 근처 행락지에 연연하다 보면 놓칠 수 있는 곳이다.

해 질 녘의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대장도(왼쪽)와 선유도(오른쪽). 선유봉에서 촬영했다. 김홍준 기자

해 질 녘의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대장도(왼쪽)와 선유도(오른쪽). 선유봉에서 촬영했다.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선유봉에서 바라본 대장도의 해 질 녘.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선유봉에서 바라본 대장도의 해 질 녘. 김홍준 기자

# 사람 사는 맛 무녀도, 쉬는 맛 신시도

1597년 음력 9월 16일 화원반도의 울돌목. 물길 좁고 거센 이곳에서 이순신은 전함 13척으로 왜선 200여 척을 물리쳤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이미 죽은 적장 마다시(馬多時)를 바다에서 건져 촌참(寸斬, 마디마디 자름)한 뒤 내걸었다. 이순신의 전함은 곧바로 서해안을 따라 북상했다. 9월 21일 고군산군도까지 올라가 숨을 골랐다. 이순신은 이곳에서 아들 면이 왜적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해했다. 그러고는 10월 3일 고군산도의 안전을 확인한 후 다시 남쪽으로 떠났다.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무녀도는 관광지로 각광 받는 선유도, 대장도, 장자도와 달리 주민들의 삶이 두드러지게 묻어나오는 섬이다. 사진은 무녀도초등학교 전경.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무녀도는 관광지로 각광 받는 선유도, 대장도, 장자도와 달리 주민들의 삶이 두드러지게 묻어나오는 섬이다. 사진은 무녀도초등학교 전경.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무녀도는 관광지로 각광 받는 선유도, 대장도, 장자도와 달리 주민들의 삶이 두드러지게 묻어나오는 섬이다. 사진은 무녀도초등학교 앞 골목.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무녀도는 관광지로 각광 받는 선유도, 대장도, 장자도와 달리 주민들의 삶이 두드러지게 묻어나오는 섬이다. 사진은 무녀도초등학교 앞 골목. 김홍준 기자

이순신의 전함은 지금의 선유대교 밑, 그러니까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를 통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녀도는 선유도와는 색이 다르다. 10명 안팎의 학생이 있는 아담한 무녀도초등학교, 골목과 골목을 걸으며 한담을 나누는 노인들, 작은 언덕을 넘어 만나는 분주한 항구…. 오토캠핑장이 있지만 다른 섬들에 비해 ‘삶’의 흔적이 더 강하다. 큰무녀봉(131m)도 바위가 많은 다른 섬의 산과 달리 흙이 많은 육산이다.

무녀도는 신시도와 고군산대교로 연결돼 있다. 군산시에서 ‘세계 최장 1주탑 현수교’라고 내세우는 이 다리를 제대로 보려면 대각산(187m)에 올라야 한다. 30도, 태양, 삐죽한 바위의 연속, 그리고 위태로워 보이는 전망대. 자동차로 지나온 고군산군도의 섬들과 배로 가야 밟을 수 있는 섬들이 둥둥 떠 있었다.

전북 군산시 신시도 대각산에서 바라본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등 고군산군도. 사진 오른쪽 건물이 있는 곳이 신시도 자연휴양림이다.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신시도 대각산에서 바라본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등 고군산군도. 사진 오른쪽 건물이 있는 곳이 신시도 자연휴양림이다.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신시도 자연휴양림 내 태양을 형상화한 전망대. 왼쪽에 선유도 망주봉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신시도 자연휴양림 내 태양을 형상화한 전망대. 왼쪽에 선유도 망주봉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신시도 자연휴양림 컨벤션센터에서 바라본 군도의 전경. 김홍준 기자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신시도 자연휴양림 컨벤션센터에서 바라본 군도의 전경. 김홍준 기자

지난 3월 문을 열면서 ‘핫 플레이스’로 평가받는 신시도 자연휴양림이 있으니, 신시도는 앞서의 섬들을 돈 뒤 편히 쉬는 곳이다. 서울 도봉구에서 왔다는 신모씨 가족은 “(고군산군도에) 들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했다.

김종수 교수는 "현재 고군산군도에는 유배자들이 전수해준 양반 문화가 남아 있다"며 "유배자들의 자손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고군산군도에서 만난 얼굴들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이건창(1852~1898)은 고종이 고군산군도에 유배 보낸 인물이다. 그가 이곳에서 시 몇 수를 남겼다. '…하늘은 신기루와 이어지고 구름은 다양한 모습이며/땅은 용신 사당과 가깝고 비는 향기롭다/절제사가 오지 않으니 누각은 적적한데/유배 온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니 바다는 망망하다…(검소루·劍嘯樓).'

숱한 일출과 일몰, 바다와 섬의 풍경이지만 이곳은 분명 다른 느낌이다. 이름으로는 뭉쳐 있되, 서로 속박하지 않고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그게 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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