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끼리 배짱" 文 압박한 北, 통신선 청구서 꺼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30 11:04

업데이트 2021.07.30 11:37

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27일 오후 군 관계자가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활용해 시험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27일 오후 군 관계자가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활용해 시험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 간 통신연락선 복원 발표 뒤 잠잠했던 북한이 나흘째인 30일 사실상의 ‘청구서’를 제시했다. 통신선 차단 책임을 남한, 특히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리며 ‘배신’ ‘반성’ ‘재발 방지’ 등의 표현을 썼다.

통신선 복원에 “한국 반성 전제”

북한의 대외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북남수뇌분들의 합의에 따른 통신련락선 재가동’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통신선 복원은)당연히 북남교착을 초래한 원인에 대한 반성과 재발 방지의 다짐을 전제로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이 남북관계와 관련해 모종의 조치를 약속이라도 했기 때문에 북한이 통신선 복원에 응했다는 투였다. 통신선 차단과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서도 “북남선언들을 배신한 행위를 엄중시”한 결과라며 북한은 당연히 할 바를 했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우리민족끼리 배짱” 文 압박  

곧이어 화살은 문 대통령을 향했다. 조선신보는 “남측에서 북남관계를 견인해야 할 인물은 대통령”이라며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에 서명한 당사자로서 북남관계가 잘되든 못되든 그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는 자세와 입장에 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뉴스1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뉴스1

내년 3월 대선까지 사실상 임기를 약 8개월 남겨놓은 문 대통령에게 직접적 압박을 가하며 임기 말 무리수를 둬서라도 실질적 조치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려는 든든한 배짱과 자신심”까지 언급했다.

김정은 언급 ‘봄날’ 다시 꺼내

그러면서 조선신보는 올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의 태도에 따라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 것을 “북남관계에 대한 원칙적 입장”으로 규정했다. 이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지난 3월 한ㆍ미 연합훈련 실시 뒤 “3년 전 따뜻한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언도 인용했다.
8월 한ㆍ미 연합훈련 실시를 앞두고 통신선 복원에 전격적으로 합의한 북한의 속내가 드러난 셈이다.

지하 벙커에서 한ㆍ미 군 장병이 연합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미 공군

지하 벙커에서 한ㆍ미 군 장병이 연합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미 공군

조선신보는 또 “민족자주를 근본핵으로 명시한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은 마련되어 있고 이제는 선언에 명시된 근본적인 문제들을 이행하는 실천행동이 남았다”고 했다.

“'민족자주' 합의…이행만 남아”

판문점 선언에는 “(2007년)10ㆍ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했다”고 돼 있다. 사실상 남북 간 경협 필요성을 확인한 게 핵심이다.
판문점 선언에는 종전선언도 합의돼 있다. 평양 공동선언과 함께 마련된 9ㆍ19 군사합의는 연합훈련을 남북이 협의할 수 있도록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연합뉴스

기본적으로 이런 남북 간 협력 사안들은 대북 제재와 직결된다. 촘촘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망으로 인해 사실상 북한으로의 물자 유입은 모두 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 북한이 촉구한 합의의 ‘이행’ 국면국면마다 제재가 문턱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인데, 이 역시 남한이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셈이다.

北 요구, 모두 동맹 직결 사안

한ㆍ미 연합훈련은 물론이고 철도ㆍ도로 연결 등 남북 간 경협이나 제재 이행 역시 동맹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문 정부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뒤 미ㆍ중 갈등 사안에서 무게추를 미국 쪽으로 옮기며 밀착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는데, 임기 말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필수적인 미국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목표였다. 그 결과 지난 5월 21일 한ㆍ미 정상회담 뒤 도출한 공동성명에 판문점 선언에 대한 존중이 포함됐고, 바이든 대통령이 남북 간 대화, 관여, 협력을 지지한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최근 남북관계 주요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최근 남북관계 주요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동맹 vs 남북관계’ 선택 요구

북한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이날 조선신보가 한국이 “외세굴종과 반북대결의 정책에 매달렸다”고 비판하며 “북남관계를 풀어나가는 데서 근본핵은 민족자주”라고 강조한 것은 문 대통령에 선택을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이 나서서 공고히 해놓은 한ㆍ미 관계를 토대로 미국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든, 그게 여의치 않으면 한ㆍ미 동맹 균열을 감수하고서라도 남북 관계 진전에 나서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한국이 남북관계를 제재 등에서 예외로 가져갈 수 있을지 일종의 시험대에 올려놓은 셈”이라며 “연합훈련이나 남북 간 합의 이행, 구체적으로는 금강산 관광 재개나 철도 연결 등의 부분에서 동맹에 묶이지 말고 독자적으로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30일 北 대외매체 조선신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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