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손만두 먹고 싶은 환자에게 차몰고 배달간 가게 주인

중앙일보

입력 2021.07.30 09:00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91)

어떤 위기를 맞았을 때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데는 이웃이 매우 중요하다. 서로 만나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곳에 사는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이웃을 챙겨 주었다. [사진 pxhere]

어떤 위기를 맞았을 때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데는 이웃이 매우 중요하다. 서로 만나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곳에 사는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이웃을 챙겨 주었다. [사진 pxhere]

해외에 사는 지인 한 사람이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다. 그의 집 가까운 곳에 단골로 다니는 약국이 하나 있는데 병이 심해질수록 복용해야 하는 약이 늘어나 약국을 자주 방문한다고 했다. 더구나 그가 쓰는 항암제는 전문약이라 미리 주문해야 살 수 있었다. 어느 날 처방전을 가지고 급히 약국을 찾았는데 마침 그가 사야 하는 약이 떨어졌다. 이틀 후 찾으러 오라고 하는데 그날은 갈 수가 없었다.

사정을 얘기하니 약사가 집으로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약을 갖고 왔다. 약사가 직접 약을 갖고 집을 방문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약사는 그가 구입하는 약으로 어디가 아픈 줄 알았나 보다. 그 마음이 너무 고와 환자는 직접 카드를 써서 감사하는 마음을 적어 작은 선물과 함께 전달했다. 환자는 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웃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위안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가 손만두를 먹고 싶어 한다는 소식에 부부는 직접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웃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위안을 받는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가 손만두를 먹고 싶어 한다는 소식에 부부는 직접 차를 몰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웃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위안을 받는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우리나라에도 그와 유사한 일이 있다. 공주에서 사업을 하던 가장이 폭삭 망해 그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친척의 도움으로 간신히 허름한 집을 하나 구했지만 사는 게 무척 힘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어릴 적 어머니가 빚어주던 손만두가 떠올렸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솜씨를 살려 손만두 가게를 내기로 했다. 부지런한 아내도 한몫 거들었다.

가게는 테이블이 예닐곱 개 들어갈 정도로 비좁았다. 새로 차린 가게에 손님이 찾아올 리 없었다. 다행히 가게 인근에 건축공사가 시작되어 인부들이 드나들었다. 세월이 지나며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맛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멀리서도 찾아왔다. 한번은 전북 익산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할머니 목소리다. 병원에 입원한 영감이 꼭 그곳의 손만두를 먹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택배로 보낼까 하다가 부부는 영업이 끝난 뒤 직접 차를 몰고 익산까지 달려갔다. 감격한 할아버지는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았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어떤 위기를 맞이했을 때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는 1995년 폭염 때 시카고의 두 지역 사망률을 비교했다. 노스론데일과 사우스론데일은 인구통계학적으로 별 차이가 없으며 겨우 도로 하나 접해 있음에도 전자의 사망률은 후자의 여섯 배나 되었다. 이런 차이를 가른 결정적인 요소는 공동체가 가진 유대의 두터움이었다. 서로 만나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곳에 사는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이웃을 챙겨 주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 특히 식당업이 무척 어렵다. 오랫동안 사업을 영위한 장수기업도 그렇다. 이들이 문을 닫으면 집기 비품은 헐값에 팔려나가고 빚조차 갚기 어렵게 된다. 그동안 이어온 솜씨가 사장됨은 물론이고 안타까운 것은 이제 그런 맛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웃 간의 끈끈한 정도 끊어지게 마련이다.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방법은 없을까. 정부에서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나 자영업자의 얘기론 언 발에 오줌 누기다.

한때 ‘미리내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미리내라는 뜻은 은하수의 우리 말이지만 그보다는 말 그대로 미리 낸다는 의미다. 원래 이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카페를 이용하는 손님이 한 잔 값을 미리 지급해 필요한 누군가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맡겨놓은(Suspended) 커피’ 캠페인에서 나온 것이다. 경제적으로 커피값조차 내기 어려운 사람을 위한 배려에서 출발한 운동이지만 코로나로 영업이 어려운 자영업자를 위해서도 활용할 수 있다. 지금 돈을 미리 낸 후 소비는 나중에 하는 것이다.

신문 뉴스를 보니 요즘 코로나 감염증으로 인한 보복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특히 부유층의 경우 차량을 통한 여가 생활이 늘면서 고급자동차나 스포츠카를 사는 경우가 급증했다. 고급승용차의 대명사인 포르쉐 차량은 상반기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가 늘었다. 서민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푼 돈 덕분에 주식 투자가 열풍을 일으키면서 증권사 순익이 급증하고 해외여행이 막힌 시민들이 보복 소비에 나서며 카드사의 실적도 폭발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돈을 제멋대로 쓰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냐만 이웃이 어려우면 쓰는 사람도 마음이 편치 않은 법이다. 더욱이 요즘은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어 어차피 여럿이 모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 무분별하게 보복 소비에 나서기보다 우리 이웃의 어려움을 헤아려 미리내 운동과 같이 자영업자를 지원하고 소비를 유예하는 것은 어떨까.

꽤 오래전에 출판한『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이 있다. 평생 경북 봉화에서 농사꾼으로 살았던 전우익 선생의 저서다. 1993년에 나왔으니 벌써 30년 가까이 되었다. 어지러운 세상사를 단순하고 소박한 언어에 비춰, 우리가 잊고 있는 참삶을 깨우쳐 주는데 그의 말은 아직도 유용하다. 그는 투박한 사투리로 말한다.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가 없습니다.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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