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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前여친에 고소당했다…스페인 민주화 영웅, 국왕의 추락

중앙일보

입력

후안 카를로스 전 스페인 국왕은 스페인에 민주주의를 확립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8년 불거진 부패 스캔들로 고국을 떠났다. AP=연합뉴스

후안 카를로스 전 스페인 국왕은 스페인에 민주주의를 확립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8년 불거진 부패 스캔들로 고국을 떠났다. AP=연합뉴스

영웅에서 도망자 신세로-.

한때 스페인 민주화의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부패 혐의와 사생활 논란으로 고국을 떠난 후안 카를로스 1세(83) 전 국왕의 사연이다. 그는 최근 전 연인과의 법정 분쟁에 휘말리며 다시 화제가 됐다. 그의 전 연인이 카를로스로부터 불법 사찰과 협박을 당했다며 소송을 낸 것이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카를로스 전 국왕과 한때 내연 관계였던 독일인 사업가 코리나 추 자인-비트겐슈타인(57)이 카를로스에게 사찰과 협박을 당했다며 런던고등법원에 소송을 냈다”고 보도했다. 소장에 따르면, 그는 스페인 국가정보국(CNI) 요원이 자신의 집과 차량을 감시하고 휴대폰을 해킹했다고 주장했다. 또 카를로스 측으로부터 “말을 듣지 않으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협박을 당했다고도 했다. FT는 “자인-비트겐슈타인이 카를로스를 상대로 수천만 유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소장에 금액이 적히진 않았다”고 전했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후안 카를로스(왼쪽) 전 국왕의 옛 연인(오른쪽)이 불법 사찰을 당했다며 카를로스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고 보도했다. [FT 캡쳐]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후안 카를로스(왼쪽) 전 국왕의 옛 연인(오른쪽)이 불법 사찰을 당했다며 카를로스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고 보도했다. [FT 캡쳐]

자인-비트겐슈타인은 지난 2018년, 카를로스 전 국왕의 부패 스캔들을 폭로한 인물이다. 카를로스는 스페인 기업이 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고속철 사업과 관련해 중재를 서는 대가로 사우디로부터 1억달러(약 1146억원)를 챙겨 돈세탁을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자인-비트겐슈타인은 “카를로스가 부인 소피아 왕대비와 이혼하고 이 돈을 위자료로 쓴 뒤 자신과 결혼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4년 카를로스와 헤어진 뒤 탈세 등으로 수사를 받게 되자 이같은 비밀을 폭로했다고 한다. 이후 카를로스와 갈등이 깊어졌고, 감시와 협박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카를로스 측은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구체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FT는 “카를로스가 영국에 머물지 않아 관할권 다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후안 카를로스(오른쪽) 전 국왕이 아들인 펠리페 6세(왼쪽) 현 국왕, 손녀와 함께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후안 카를로스(오른쪽) 전 국왕이 아들인 펠리페 6세(왼쪽) 현 국왕, 손녀와 함께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현재 카를로스 전 국왕은 스페인을 떠나있는 상태다. 지난해 6월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아들인 펠리페 6세 국왕에게 “왕실에 폐가 되지 않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이후 카리브해 도미니카공화국과 중동 아랍에미리트(UAE)에 머물고 있다는 추측만 이어졌다.

1975년부터 약 39년간 국왕으로 재임한 카를로스는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확립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스페인 내전 뒤 36년간 철권통치를 했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하자 75년 왕위에 올랐다. 국민들은 그가 ‘제2의 프랑코’가 될 것이라 우려했지만, 그는 스페인을 민주·법치 국가로 천명하고 권력을 내각에 이양했다. 81년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도 “군사 독재 체제로 회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군부 세력을 투항시켜 큰 신임을 얻었다.

펠리페 국왕은 지난해 3월 아버지인 후안 카를로스의 유산을 상속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전직 국왕에게 지급되는 연금도 취소시켰다. EPA=연합뉴스

펠리페 국왕은 지난해 3월 아버지인 후안 카를로스의 유산을 상속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고, 전직 국왕에게 지급되는 연금도 취소시켰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2010년대 유럽 재정위기 전후로 그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2012년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호화 코끼리 사냥 여행을 즐겨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데, 당시 자인-비트겐슈타인과 내연 관계라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또 딸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가 횡령·탈세 사건에 연루되면서 또 한 번 비판을 받았다. 결국 카를로스는 2014년 6월 아들인 펠리페에게 국왕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했다. 펠리페 국왕은 지난해 3월, 아버지의 검찰 수사가 결정되자 유산 상속을 포기하고 전직 국왕에게 지급되는 연금도 취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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