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입에 담기 힘든 욕설…성소수자는 코로나가 더 무섭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30 05:00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해 8월 26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설치된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광고판이 훼손됐다며 경찰 신고 등의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해 8월 26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설치된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광고판이 훼손됐다며 경찰 신고 등의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성소수자 친구끼리 모이면 방역 수칙을 더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죠. 지난해 이태원 집단 감염 후 사람들의 반응에 우울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힌 직장인 김모(23)씨가 지난달 기자에게 전한 속마음이다. 그는 "이태원 클럽 사건 있었을 때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에 무차별적 비난이 많이 올라왔다"면서 "체감상 혐오표현이 더 늘어난 거 같다. 코로나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혐오 팬더믹’ 한국을 삼키다> 4회
방역 구멍에 혐오 씨앗 자랐다

혐오 바이러스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먹고 자란다. 더 강해진 혐오는 이른바 타고났거나 바꾸기 어려운 특성까지 파고든다. 성적 지향과 종교가 대표적이다. 코로나 방역의 구멍은 곧 혐오의 지름길과 같았다. 특정 그룹이 집단 감염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될 때마다 혐오표현은 비수처럼 꽂혔다. 지난 1년여간 반복된 양상이다.

지난 2월 대구 남구 신천지 대구교회에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에 따른 사과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지난 2월 대구 남구 신천지 대구교회에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에 따른 사과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코시국' 혐오 대상 1위에 오른 종교

코로나 확산에 따른 여론의 집중포화는 종교를 향했다. 초기 집단 감염 주범으로 꼽힌 신천지 교회와 지난해 광복절 집회가 주된 타깃이었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지난 5월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1000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게 물었더니 최근 1년간 '특정 종교 집단'을 향한 혐오표현이 가장 두드러졌다. 종교를 겨냥한 혐오표현을 경험해본 비율은 83.3%, 코로나19와 관련해 종교를 공격해본 비율도 71%(이상 1~3순위 기준)에 달했다. 둘 다 1등이었다.

방역 수칙을 위반한 종교 집단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은 곧장 혐오로 바뀌었다. 지난해 2월 신천지 발(發) 집단 감염 후 온라인상에는 이들을 비난하는 혐오 표현이 급증했다. 특별취재팀이 빅데이터 업체 사이람을 통해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데이터 264만4713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3월(코로나 1차 유행 전후) 신천지와 관련해 '쓰레기'(477건), '마귀'(453건) 등 언급량이 급증했다.

신천지에 이어 기독교 교회도 혐오의 타깃이 됐다. 광복절 광화문 집회 후 일부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코로나 2차 유행이 본격화하면서다. 반정부 성격이 강한 당시 집회는 일부 교회와 종교인이 주도했다. 지난해 7~8월 '교회' 키워드로 빅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사이비'(999건), '개독’(395건) 등 혐오 표현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교회 관련 버즈량(소셜 미디어에 게시된 글 수)도 8월 중순부터 급증했다.

지난해 5월 서울의 한 병원 입구에 붙은 이태원 클럽 등을 방문한 환자와 동거가족에 대한 안내문. 연합뉴스

지난해 5월 서울의 한 병원 입구에 붙은 이태원 클럽 등을 방문한 환자와 동거가족에 대한 안내문. 연합뉴스

이태원 감염에 성소수자 혐오 고개 들다

혐오 정서는 성적 지향 같은 마음속 내밀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지난해 5월 이태원 클럽 발 집단 감염이 발생하자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최대치에 다다랐다. 확진자가 다녀간 업소 중 소위 '게이 클럽'으로 알려진 곳이 포함돼 있어서다. 기존에 깔려있던 거부감과 차별 의식이 감염병과 결합하면서 증폭된 것이다.

이는 지난해 4~5월 '동성애'와 '게이' 관련 혐오 표현을 분석해보니 뚜렷하게 드러났다.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과 성행위를 비하하는 단어인 '변태'(22건) 등의 언급량이 늘었다.

이른바 확진자를 향한 과도한 '낙인 찍기'가 이어지자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해 3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필요 이상의 사생활 정보가 구체적으로 공개되면서 확진자들의 내밀한 사생활이 원치 않게 노출되는 인권침해가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에서 해당 확진자가 혐오의 대상이 되는 등 2차 피해까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여전히 성소수자들은 뿌리 깊은 편견에 더해진 코로나 발 혐오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너 동성애자야?'부터 시작해서 '너는 그러면 여자랑 하는 게 좋아 남자랑 하는 게 좋아?' 이런 말 들어봤고요. 갑자기 제 친구들에 대한 욕도 하는 거예요. 저랑 다니니까 그 친구들도 동성애자냐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애들 사이에서 그냥 욕을 엄청 먹었어요." (19세 성소수자 여성, 2020년 논문 「청소년의 혐오표현 노출실태 및 대응 방안 연구」중)

지난해 광복절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시의 집회금지명령으로 집회 대부분이 통제됐으나, 전날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과 중구 을지로입구역 등 2곳에서는 개최가 가능해지면서 인파가 몰렸다. 연합뉴스

지난해 광복절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시의 집회금지명령으로 집회 대부분이 통제됐으나, 전날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과 중구 을지로입구역 등 2곳에서는 개최가 가능해지면서 인파가 몰렸다. 연합뉴스

"방역 빌미로 특정 집단 공격 증폭"

전문가들은 집단 감염이 발생할 때마다 특정 집단에 가해진 비난은 '희생양 만들기'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는 위기 상황마다 반복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방역이 코로나 시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어떤 집단에서 감염이 일어나면 '혐오 표현은 나쁘니까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발동하지 않게 된다. 대개는 원래 혐오 받던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집단화되고, 증폭되는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를 집어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은 우울(블루)과 분노(레드)를 동시에 가져왔다. 특히 두드러진 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다. 서구에선 아시아인 등에 대한 증오범죄와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이 이어진다. 국내서도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혐오 정서가 난무한다. 여혐ㆍ남혐 논란, 중국동포(조선족)와 성소수자 비난 등이 대표적이다.

'성별, 장애, 출신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편견을 조장하고 멸시ㆍ모욕ㆍ위협을 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 혐오표현의 정의(2019년 인권위 보고서 참조)다. 이러한 혐오표현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아왔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출하는 모양새다. 혐오는 때론 내 이웃을 향하고, 종종 나 자신을 겨누기도 한다. 팬더믹 1년 반,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우리 안의 혐오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살펴봤다. 혐오표현이 근거로 삼는 명제들이 맞는지도 '팩트체킹'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