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성과 급했던 김정은, 당 경제부장 한달 만에 교체

중앙일보

입력 2021.07.30 00:33

업데이트 2021.08.2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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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정은 용인술의 노림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하기 직전인 2013년 11월 백두산 인근의 삼지연군을 찾았다. 당시 그를 수행한 이들은 ‘삼지연 8인 그룹’으로 불렸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하기 직전인 2013년 11월 백두산 인근의 삼지연군을 찾았다. 당시 그를 수행한 이들은 ‘삼지연 8인 그룹’으로 불렸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성격을 두고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2018년 3월 한국 정부의 특사단으로 평양을 방문해 그를 만난 당국자는 “김 위원장은 치밀하고, 노련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급하고 즉흥적이나, 똑똑하고 논리적”이라고 썼다.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의 주선으로 평양에 머물며 어린 시절의 김 위원장을 지켜봤다는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정은 왕자는 승부욕이 강하다”고 묘사했다.

‘운구차 7인방’도 ‘삼지연 8인그룹’도 모두 사라져
집권초엔 권력장악 위해, 지금은 성과 내기 위해 간부 질책
결과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의 표현일 수도 있어

1인 절대권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선 최고지도자의 성향이 고스란히 정책에 투영된다. ‘한반도의 봄’과 ‘청와대를 향한 저주’, 통신선 연결을 교차하는 등 극과 극을 치닫는 남북 관계는 롤러코스터다. 북한에서 ‘간부사업’이라 불리는 인사(人事) 역시 마찬가지다.

“3년상(喪)까지 기다리려 했다”

2013년 12월 12일 평양에서 총성이 울렸다. 김 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향해서다. 이를 필두로 장성택을 추종했던 수 십명의 고위 간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처형됐다. 당시 김 위원장은 “아버지(김정일) 3년상을 마치기 전에는 총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장성택이) 내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고 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2년 만에 울린 이날의 총성은 28세에 북한의 ‘최고존엄’에 오른 자신을 얕보지 말라는 공포정치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북한의 고위 간부들은 바짝 긴장했고, 김 위원장에게 말할 때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인민들이 더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며 민생을 챙기며 주민들에게 친근함을 보여주는 모습과 상반된 장면이다.

정보 당국은 2016년 이후 북한에서 고위 인사에 대한 처형은 대거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이 노동당 위원장(지난 1월 당 총비서로 개칭)이라는 직책으로 최고지도자에 오른 시점이다. 하지만 지난달 노동당 전원회의를 비롯해 수시로 진행하는 회의 때마다 김 위원장이 당과 정부·군의 간부들을 바꾸는 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공포정치로 권력을 장악한 뒤, 잦은 인사를 통해 간부들의 고삐를 죄는 모양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2011년 김정일 운구했던 7인들의 당시 직책과 현재

2011년 김정일 운구했던 7인들의 당시 직책과 현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을 앞세우는 선군(先軍)정치를 표방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뒤 북한 군부는 김정은 위원장의 표적이 됐다. 이는 잦은 군 수뇌부 교체로 나타났다. 선대 지도자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년 동안 9명의 인민무력상(현 국방상, 우리의 국방장관)을 등판시켰다. 김일성 주석이 집권 46년간 5명, 김정일 위원장이 17년간 3명을 기용한 것과 비교된다. 평균 재임기간이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각각 9년과 6년을 웃돌았지만, 김 위원장은 거의 매년 교체에 나섰다.

이런 분위기는 야전으로도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2014년 “배 나온 지휘관들은 전쟁을 못한다”며 군 단장들을 바닷가로 모아 수영과 사격대회를 한 뒤, 군단장을 40~50대로 바꾸는 ‘젊은 피’ 수혈에 나섰다. 군부대 시찰때 눈에 들면 곧바로 곁으로 불러들이는 경우도 있다. 7군단장이던 한창순을 정찰총국장으로 앉힌 게 대표적이다.

김 위원장은 또 군부가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독점했던 ‘돈 되는’ 무역을 무역기관으로 원위치시켰다. 군이 장악했던 관광지를 대대적으로 공사하고,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던 마오쩌둥(毛澤東)의 말을 의식한 견제이자, 당 우위 국가 건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군의 힘빼기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용해만 살아 남았다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은 2011년 12월 28일 진행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식을 주목했다. 당시 김 위원장과 함께 당·정·군 최고 실력자들이 호위했던 소위 ‘운구차 7인방’이 당분간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향후 북한을 이끄는 핵심 세력이 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운구차 7인방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기남 당 비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이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제1부부장 등이다.(이상 당시 직책)

이런 예상은 빗나갔다. 2018년까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였던 김기남 비서를 제외하곤 모두 2년 남짓한 기간에 처형·숙청 되거나 2선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장성택 처형 직전 김 위원장이 백두산 아래 삼지연을 찾았을 때 동행했던 8명의 인사가 평양의 신권력으로 떠올랐다.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김병호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박태성 당 부부장, 마원춘 당 부부장, 홍영칠 당 기계공업부(현 군수공업부) 부부장 등 ‘삼지연 8인 그룹’ 역시 최근 모습을 감췄다. 김병호 부부장이 당 중앙위 위원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당 정책 결정의 핵심기구인 정치국 역시 마찬가지다. 김정은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2010년 꾸렸던 정치국원(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 가운데 현재까지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는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의 역할 역시 상징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어 사실상 전원이 바뀐 셈이다.

5년 단임제인 한국 정부에서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2년 안팎이다. 이를 고려하면 김 위원장의 잦은 인사는 이상할 게 없다. 오히려 간부들을 질책하며 성과를 내려는 치밀한 계산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자신을 깔보는 행위를 못견디며 권력장악 차원의 인사정책과 달리 최근엔 성과가 없을 경우 ‘태만’을 질책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김정일과 달리 빨치산이라는 ‘동지’도, 후계자 경쟁에서 지원했던 세력에 대한 빚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하지만 임명한 지 한 달만에 당 경제부장을 교체(지난 2월)하는 등 성과를 기다리지 못하는 모습은 조급함의 표현일 수 있다.

김정은 앵콜 두 번 받고 ‘인민배우’ 오른 김옥주
김옥주

김옥주

최근 북한에서 가장 힙한 가수는 김옥주(사진)다. 북한 당국은 지난 11일 북한 예술계의 최고봉인 ‘인민배우’ 칭호를 그에게 줬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때 삼지연악단 소속으로 방한해 두 차례 공연에서 한국 가요 ‘J에게’를 불러 한국 국민에게도 알려진 인물이다.

1985년생인 김옥주는 올해 36세다. 북한이 인민배우 칭호를 30대에 준 건 이례적이다. 탈북자들은 그가 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 여사가 다녔던 금성학원 출신이라고 귀띔했다. 이설주의 선배로 은하수관현악단 등에서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모란봉악단과 청봉악단, 삼지연악단, 국무위원회 연주단 등 각종 음악 단체를 창단했다. 북한 음악인들 가운데 일류급을 선발했다는 후문이다. 북한판 걸그룹으로 불리며 지방 공연에도 나섰다. 하지만 그동안 조명을 받았던 인물들은 류진아와 라유미 등 인민배우보다 한 급 아래인 공훈배우이자 금성학원 후배들이었다.

그는 11살이던 96년 12월 31일 새해(97년) 맞이 공연에 출연해 북한 전역에 전파를 타는 등 유년시절부터 노래에 두각을 보였다. 금성학원을 졸업하고, 은하수관현악단에 들어가 활동한 것도 그의 음악성을 보여준다. 김옥주의 인민배우 등극은 김 위원장의 총애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실제 그는 지난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기념 음악회에서 김 위원장이 두 차례나 앵콜했던 ‘친근한 이름’을 불렀고, 이후에도 각종 공연에서 독창을 도맡고 있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북한은 어려서부터 예술에 소질을 보이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영재교육을 실시한다”며 “김옥주와 유사한 경력을 지닌 가수들이 많은데 그가 늦깎이로 인민배우라는 특급조명을 받게 된 건 지난 2월 공연에서 김 위원장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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