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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평평한 외교’의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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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경진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지난해 9월 테리 브랜스테드 주중 미국 대사가 인민일보에 ‘상호주의(Reciprocity)에 기반한 관계 재조정’이란 글을 보냈다. 기고는 거부당했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 대사와 정반대 처우에 실망했다며 베이징을 떠났다.

올 3월에는 중국 최고지도자가 ‘평시(平視) 외교’를 말했다. “중국은 이미 세계를 평평하게 볼 수 있게 됐다”면서다. 상호주의의 중국식 표현이다. 곧 앵커리지 회담이 열렸다.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평평한’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 26일 톈진(天津)에서 미·중의 상호주의와 평시 외교가 맞붙었다. 먼저 미국이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의 방중을 타진했다. 미국 국무부 넘버 2에 중국은 넘버 5 셰펑(謝峰) 부부장을 내밀었다. 넘버 2 러위청(樂玉成) 부부장은 미국 담당자가 아니라는 이유다. 회담 불가. 미국이 거부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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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급해졌다.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카드를 썼다. 대신 설명이 붙었다. 셔먼의 상대는 셰펑이다. 왕이는 지도자 접견을 원하는 미국에 베푸는 ‘배려’다. 미국은 셔먼·왕이 회담으로 발표했다. 중국은 셰펑은 회담, 왕이는 회견이란 레토릭을 썼다. 공산당원의 미국 입국 비자 제재 해제를 앞세운 요구 리스트와 함께다. 평시 외교의 외투를 쓴 당익(黨益) 외교다.

미국 역시 고질적인 일방주의는 잊은 듯 ‘평평한 운동장’ 다지기에 한창이다. 지난해 1월 14일 미국·EU·일본의 통상장관이 공동성명을 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산업보조금 규정 강화를 요구했다. 글로벌 불공정성의 원인을 중국의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지목했다.

중국 외교에서 또 다른 전가의 보도(寶刀)는 시간이다. “시간으로 공간을 꿰차는” 전법이다. 베이징 외교가에는 선거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나라 외교관의 본국을 향한 푸념이 넘친다. 중국이 협상에서 시간을 무기로 휘두르면 판판이 깨진다면서다. 묘책이 없다며 혀를 내두른다.

평시 외교도 결국은 중국식 시간 외교다. 시간에는 시간이 답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까. 여야·정파·세대를 초월한 국익이 답이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한결같은 중국 대하기는 좋은 선례다.

대선을 앞둔 한국이 외풍을 막을 외교 백신 역시 원칙 있는 국익이다. 독일 싱크탱크가 최근 정책을 제안했다. “일관된 중국 정책을 만들라. 중국을 상대할 때는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을 명확히 정의하고, 자국의 핵심 이익을 분명히 한 뒤, 희망하는 최종 상태에 입각해 행동을 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