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회사 하이브리드 근무 확산 “재산불리기도 재택크”

중앙일보

입력 2021.07.3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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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원하는 곳에서 한 달 일하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난 6월 한 달간 제주에서 지낸 황진우씨. [사진 라인플러스]

‘원하는 곳에서 한 달 일하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난 6월 한 달간 제주에서 지낸 황진우씨. [사진 라인플러스]

# 11년 차 직장인 황진우씨는 지난 6월 한 달간 제주에서 ‘일했다’. 집은 안양이고 직장(라인플러스)은 판교에 있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회사가 운영한 ‘원하는 곳에서 한 달 일하기’ 프로그램의 덕을 봤다. 황씨는 요즘 거의 매일 재택근무를 한다. 황씨는 “코로나19 전엔 당연하던 ‘사무실 출근’이 사라졌다”며 “제주든, 재택이든, 사무실 근무든 업무 자체는 큰 차이가 없고 다만 출퇴근에 쓰던 2시간이 새로 생겨 좋다”고 말했다.

네이버·야놀자 새 방식 속속 도입
KT·현대차 ‘스마트워크센터’ 운영
사무실 대신할 거점 근무지 만들어
직장인 65% “유연근무 계속돼야”

# 중견기업에 다니는 안모씨는 요즘 주 2회 재택근무를 한다. 회사 안 나가는 시간, 자투리 시간엔 웹 개발 관련 부업을 하고 있다. 안씨는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부업으로 버는 돈이 회사에서 받는 월급보다 많다”며 “재택근무하는 날엔 회사 눈치 안 보고 부업 일과 관련된 피드백을 바로 해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안씨는 재택근무 덕분에 맘놓고 ‘N잡러’(2개 이상 직업을 가진 사람)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9시 출근, 6시 퇴근’은 이젠 옛말

서울의 한 스마트워크센터에서 공무원들이 화상 시스템을 통해 회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스마트워크센터에서 공무원들이 화상 시스템을 통해 회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가 직장인의 근무 방식을 바꿔놓았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하는 직장인의 일상은 깨졌다. 기업과 직장인은 팬데믹 시대에 맞춰 새로운 근무 환경과 근무 행태를 시도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흐름은 재택근무를 주로 하되 때때로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의 확산이다. 근무 공간의 변화가 당장은 IT나 소규모 기업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점차 대기업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네이버의 관계사 라인플러스는 지난 7월 초부터 완전재택부터 주 N회 재택까지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하이브리드 워크 1.0’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근무에 대한 직원들 만족도가 높아 코로나가 끝나도 이 제도를 유지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여가 플랫폼 ‘야놀자’도 자율 원격근무제를 무기한 시행하기로 했다.

직방의 비대면 근무 협업툴인 메타폴리스. [사진 직방]

직방의 비대면 근무 협업툴인 메타폴리스. [사진 직방]

재택근무가 늘면서 기존 사무실에 대한 개념도 변화하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은 서울 서초구에 있던 본사 사무실을 6월부로 재계약하지 않고 아예 문을 닫았다. 그 대신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가상 오피스 ‘메타폴리스’를 차렸다. 직원은 메타폴리스에 접속해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화상회의에 참여한다. 직방 관계자는 “지난 2월부터 ‘클라우드 워킹(원격근무)’ 제도를 시행중인데, 본사 사무실 문을 닫은 건 코로나 대유행이 끝나도 계속 원격근무를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대기업에서도 재택근무 비율이 높아지고 근무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SK그룹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자 일부 계열사는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100% 재택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LG전자는 최근 재택근무 비율을 40%에서 50%로 상향하고 집합교육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대기업은 이미 직원이 기존의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고 거점 지역에서 일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센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SK텔레콤과 롯데쇼핑이 스마트워크센터를 마련했고, 올해 KT와 현대자동차 등이 잇따라 운영을 시작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제한이 사라진다면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제한이 사라진다면

현대차의 경우 정의선 회장과 직원이 지난 3월 온라인 타운홀 미팅을 하던 중 출퇴근의 개선 방안으로 H-워크스테이션 신설 제안이 나왔다. 현대차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일하는 공간 역시 새롭게 변화하고 있고, 코로나19가 끝나도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일하는 추세는 바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근무 공간의 변화로 직장인들의 생활도 바뀌었다. 본업의 틀에서 벗어나는 시도가 이어진다. 한 스타트업의 이사인 정모씨는 “재택근무 이후 남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재능 공유 사이트 ‘숨고’를 통해 창업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재테크에 열중하는 직장인도 늘었다. 소위 ‘재택(在宅)크’다. IT회사 소속의 한 직장인은 “예전에 출퇴근하는 데 쓰던 2시간을 주식 투자 공부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재택근무할 때 주식 투자를 시작한 사람이 많은지 잠시 재택근무를 종료해 회사에 갔더니 대화 주제가 주식 얘기뿐이었다”고 올리기도 했다.

상당수 직장인은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새로운 근무 방식이 계속되길 원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한국을 포함한 세계 29개국 근로자 1만25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절반 이상(65%)이 “코로나 이후에도 재택근무 등 유연한 근무 환경을 원한다”고 답했다. 또 3분의 1가량(30%)은 “사무실 근무를 강요하면 이직을 고려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새로운 평가 방식과 인사관리 필요”

전문가는 기업이 코로나19 이후의 조직체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장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재택근무의 확산은 조직원이 겸업 등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며 “그런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업은 역동적이고 능력 있는 조직원을 떠나보내게 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근무시간, 투입 시간보다는 결과에 따라 직원들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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