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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신문' 여론조사로 언론재갈법?…"與의 동력은 언론 적개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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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언론법 개정에 개탄하실 것.”(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국민의힘은 29일 더불어민주당이 8월 내 처리를 공언하는 ‘언론 재갈법’(언론중재법 개정안) 비판에 집중했다. 이준석 대표는 “민주당은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은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이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겠다고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언론에 재갈을 물려 입맛대로 통제하겠다는 검은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며 “유령대안을 의결한 법안소위(지난 27일)는 원천무효”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전날 언론 5단체(한국신문협회ㆍ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ㆍ한국기자협회ㆍ한국여기자협회ㆍ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언론에 재갈 물리는 반헌법적 언론중재법 개정을 즉각 중단하라”(28일)는 공동성명을 낸 데 이어, 이날 방송기자연합회ㆍ전국언론노동조합ㆍ한국기자협회ㆍ한국PD연합회 등 4개 단체도 “일부 조항들은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정치 권력이 언론의 기사 편집과 표현을 일일이 사전 검열하던 보도지침과 유사한 느낌마저 준다”는 공동 성명을 냈다. 학계에서도 “전 세계 어디에도 언론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나라는 없다”(노동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야권ㆍ언론ㆍ학계 우려에도…與 “8월 국회 처리”  

하지만 민주당은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전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정책조정회의에서 “법안 내용과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면 ‘언론 재갈법’으로 호도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한준호 원내대변인은 “속도를 내서 8월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선 주자들도 가세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이낙연 전 대표는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저도 21년 기자로 산 사람으로서 안타깝지만 제가 현직 기자라면 그것을 환영했을 것 같다”며 “언론계가 자기 개혁을 좀 했더라면 여기까지 안 왔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이낙연 전 대표가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중앙도서관 관정관 미디어플렉스 스튜디오에서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주최로 열린 청년 토크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이낙연 전 대표가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중앙도서관 관정관 미디어플렉스 스튜디오에서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주최로 열린 청년 토크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날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도 가짜뉴스의 영향이 있다.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노무현 정신”(페이스북)이라고 주장했다. 김두관 의원도 29일 페이스북에 “(언론은) 펜의 정신은 망각한 채 인격 말살과 같은 심각한 범죄 행위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모욕을 안겨준 ‘논두렁 시계’가 대표적 사례”라고 썼다.

與 “국민 80% 찬성”…野 “‘나쁜 사람 처벌하자’ 수준 조사”

민주당이 대선주자까지 가세해 ‘언론재갈법’을 밀어붙이며 믿는 구석은 여론조사다. 민주당 미디어특위 부위원장인 김승원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국민의 80%가 언론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국민이 원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초부터 계속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국민 80%가 지지한다”(6월 16일 송영길 대표)는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2월 25일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 속기록.

2월 25일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 속기록.

민주당이 인용한 건 미디어오늘ㆍ리서치뷰 조사다. 지난해(5월 28~31일)와 올해(4월 27~30일) 조사에서 “ ‘허위ㆍ조작 가짜 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찬성 답변이 각각 81%ㆍ80%로 나왔다. 이에 대해 기자 출신인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나쁜 사람 처벌하는 것에 찬성하느냐’는 수준의 질문이다. 당연히 찬성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이걸 이용해 여당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빼고 기성 언론 정조준…“특정한 정치적 목적 보여”

민주당에 누적된 언론에 대한 적개심도 ‘언론재갈법’ 드라이브의 기저에서 작동하는 동력으로 분석된다.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만들겠다는 이번 언론중재법은 기성 언론들만이 적용대상이기 때문이다. 미확인 정보의 유포의 주된 채널로 지목돼 온 유튜브 매체 등엔 적용할 수 없는 법이다. 게다가 위헌 논란이 있는 언론사 매출액에 비례해 배상액 하한선(전년도 매출액의 1만분의1~1000분의1) 기준을 제시한 조항 역시 “기성 언론에 대한 적개심이 표출된 대표적 조항”(국민의힘 관계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사가 기사 내용과 다른 삽화 등을 넣은 경우 등’에 언론사의 고의나 중과실을 추정케 하는 내용은 최근 조선일보가 조국 전 법무장관 딸 조민씨의 삽화를 잘못 넣은 사건이 직접 입법 동기로 작용했다. 김승원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조선일보가 모욕적인 삽화를 넣었다. 이번에 아주 큰 실수를 했죠”라고 콕 집어 말했다.

민주당 '언론중재법' 주요 내용 및 전문가·야당 의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민주당 '언론중재법' 주요 내용 및 전문가·야당 의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민주당은 오래전부터 레거시 언론에 과민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대선 전에 극단적인 방법까지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이번에 처리된 법안은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고의ㆍ중과실을 추정하겠다는 것 자체가 특정한 의도를 가진 조문처럼 보인다”며 “헌법 가치인 언론의 자유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정치인들이 주무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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