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흥분한 '통신선 복원'···北은 주민에 알리지도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9 17:07

업데이트 2021.07.29 18:50

남북 통신 연락선이 복원된 지 사흘째인 29일에도 북한은 내부적으로 이를 전혀 알리지 않았다. '북남 수뇌', 즉 정상 간 합의라면서도 주민들은 알지 못하게 한 것이라 속내가 주목된다.

북한 내에선 이날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관련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물론, 노동신문·조선중앙TV 등 대내용 매체에도 통신선 복원 사실을 알리는 일체의 소식이 실리지 않았다. 지난 27일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없는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수뇌분들의 합의에 따라 북남쌍방은 7월 27일 10시부터 모든 북남통신련락선들을 재가동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이는 한국 외교부에서 최종건 1차관과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각각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및 성 김 미 대북특별대표와 유선 협의를 갖고 한반도 비핵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한·미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북한은 오히려 29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김 위원장이 전승절을 기념해 중국과의 친선을 상징하는 대표적 기념물인 북·중 우의탑을 찾았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에는 김 위원장이 ‘항미원조 보가위국’을 강조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중국이 6·25 전쟁에 참전할 당시 내걸었던 구호로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고 가정과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8주년을 계기로 28일 북중 우의탑을 찾았다고 노동신문이 29일 보도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8주년을 계기로 28일 북중 우의탑을 찾았다고 노동신문이 29일 보도했다. [뉴스1]

한국에선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한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 협상 등에 대한 여러 전망이 쏟아지는데, 북한은 관련된 일체의 언급 없이 반미(反美) 코드를 강조한 셈이다.

북한 역시 정부처럼 통신선 복원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최종목표로 하는 남북 대화 개시의 의미로 보는지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의용 장관은 지난 28일 학술행사에서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에도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그 밖에 비핵화 의지로 연결할 수 있는 북한의 메시지나 조치는 없는 상황이다. 

의문 남는 北 '비핵화 의지'  

청와대는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한 남북 대화의 최종적 목표가 '비핵화'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진은 지난 27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을 알리는 브리핑에 나선 모습. [뉴스1]

청와대는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한 남북 대화의 최종적 목표가 '비핵화'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진은 지난 27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을 알리는 브리핑에 나선 모습. [뉴스1]

앞서 지난 28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통신선 복원을 ‘출발선’으로 표현하면서 “최종 목표는 비핵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남북 정상회담 등을 포함한 대화 시도와 관계 개선은 수단일 뿐 결국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북한과 협상에 임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작 김정은 위원장은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잠수함 개발까지 언급하며 '책임 있는 핵 보유국'을 강조하는 등 비핵화와는 거리가 먼 길을 가고 있다.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도 여전히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7일 전국노병대회에 참석해 “보건위기와 장기적인 봉쇄로 인한 혼란과 애로는 전쟁 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라며 “오늘의 어려운 고비를 보다 큰 새 승리로 바꿀 것”이라고 강조한 것 역시 당장의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내치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결국 북한이 남북 대화에 임하더라도 이는 비핵화 협상에 대한 의지의 표명이 아닌 내부적인 식량난 개선과 코로나19 백신 지원 등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

어르고 달래 '대화 국면' 조성됐지만… 

한미연합군사훈련은 2018년 6월 이후 그 규모를 축소해서 진행하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대부분의 훈련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도상훈련(CPX)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뉴스1]

한미연합군사훈련은 2018년 6월 이후 그 규모를 축소해서 진행하고 있다. 특히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대부분의 훈련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도상훈련(CPX)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뉴스1]

여기엔 북한과 대화 재개를 통해 한반도 평화 시계를 2018년으로 돌려놓으려 시종일관 애쓰는 정부의 태도가 빌미를 준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제재 완화는 없다’는 대북정책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한 것과 달리 한국 정부는 대화 그 자체를 위한 대북 인센티브 제공에 공을 들여왔다. 또 국제사회의 비판을 감수하며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을 시행했고, 올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는 등 북한 인권 상황에도 눈을 감아 북한 눈치보기라는 비판도 받았다.

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논의를 뒷받침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한·미 연합훈련 축소 역시 3년째 이어지고 있다. 남북 대화의 최종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론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목표로 하는 듯한 대북전략이 반복된 셈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앞두고 통신선 복원에 합의한 것은 남북관계 정상화의 의지라기보단 남북-북·미관계의 주도권을 갖고 오기 위한 ‘판 흔들기’의 목적이 더욱 강해 보인다”며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오히려 북한을 더 초조하게 만들고 고립시키면서 강제로라도 비핵화 프로세스에 참여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오히려 북한의 숨통을 틔워주고 대화 그 자체만을 쫓는 접근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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