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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가 뭔 죄? 빨갱이·꼴통 '막장 싸움판' 끌려나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념적 양극화와 서로에 대한 혐오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래픽=신용호

이념적 양극화와 서로에 대한 혐오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래픽=신용호

포털 사이트의 기사 댓글 창은 소리 없는 전쟁터다. 정치의 '정'자만 들어가는 주제라면 어디든 진보·보수의 날 선 혐오표현이 이어진다. 유튜브에선 좌파·우파의 '스피커'임을 내세우는 이들이 검증되지 않은 혐오 영상을 쏟아낸다. 조국 사태, 부동산 정책 논란 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이 포개지며 이념적 혐오는 양극단으로 향하고 있다. 오죽하면 가족끼리도 정치 이야기는 안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혐오 팬더믹’ 한국을 삼키다> 4회 #이성보다 감성 앞선 이념·지역 혐오

온라인 지형만 좌우로 쪼개져 있지 않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지난 5월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1000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게 물어본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지난 1년간 혐오표현을 경험한 적 있다고 답한 10명 중 8명(79.9%)은 특정 정치성향에 대한 혐오를 보거나 들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관련 혐오표현을 사용한 사람의 42.3%(1~3순위 기준)도 특정 정치성향을 공격했다고 답했다.

정치 양극화에 혐오도 위험 수위 도달

"입진보, 빨갱이" vs. "꼴통 보수, 토착왜구"
소셜 미디어에서 진보·보수 키워드로 자주 나오는 혐오표현이다. 특별취재팀은 빅데이터 업체 사이람에 의뢰해 '코시국'(코로나19 시국)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 데이터 264만4713건을 분석했다. 혐오 대상이 어느 쪽이든 정치 성향을 비하하는 혐오표현이 일관되게 상위 20위권에 나타났다. 진보를 지칭하는 '빨갱이'나 보수를 가리키는 '꼴통' 같은 극단적 언어가 비속어와 함께 뒤섞였다.

전문가들은 정치·이념 혐오가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랐다고 평가했다. 대국민 인식 조사에서도 이전보다 특정 정치성향에 대한 혐오표현이 심해졌다고 느끼는 비율이 절반 이상(54.6%)이었다.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 이후 혐오를 대놓고 드러내는 종교 집단, 중국인·중국 동포와 연관된 단어들에 '문재인' '빨갱이' 등의 키워드가 언급되는 걸 주목해야 한다. 사람들이 정치 영역에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센 수위의 혐오표현을 쓰는 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정치적 비판을 충분히 하는 것과 저열하게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특정 집단을 악마화하고 공격하는 걸 포퓰리즘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진보든, 보수든 표현의 하한선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건 우리의 정치적 수준이 굉장히 낮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대구 출신 10대가 부산 클럽에 다녀온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온라인 기사 아래 달린 포털사이트 댓글. 대구에 대한 지역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네이버 캡처

대구 출신 10대가 부산 클럽에 다녀온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온라인 기사 아래 달린 포털사이트 댓글. 대구에 대한 지역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네이버 캡처

뿌리 깊은 지역 혐오, 코로나로 다시 분출

지난해 2월 27일 육군 제50사단 장병들이 대구 동성로 일대에 투입돼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2월 27일 육군 제50사단 장병들이 대구 동성로 일대에 투입돼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뉴스1

"고담 대구" vs. "전라도가 전라도했다"
이념에 뿌리를 둔 혐오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역 혐오로 줄기를 뻗어 간다. 대표적인 게 경상도와 전라도다. 보수는 전라도를, 진보는 경상도를 손가락질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의 지역주의 발언도 잊을 만 하면 등장한다.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 특정 지역을 겨냥한 혐오표현을 겪었다는 비율은 73.3%였다. 14개 항목 중 6번째로 높았다.

코로나 1차 유행 후 대구에 대한 직접적 혐오표현이 증가했다.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3월(코로나 1차 유행 전후) '대구' 키워드의 버즈량(소셜 미디어에 게시된 글 수)이 많이 늘었다. 연결 중심성 상위 단어로는 '신천지'와 '코로나바이러스' 등이 꾸준히 등장했다. '대구 코로나', '대구 폐렴', '고담 대구' 같은 혐오표현도 다수였다. 그 여파는 한두달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연말까지 대구와 연관된 키워드엔 코로나바이러스가 빠지지 않았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코로나 1차 유행 후 대구 관련 언급이 급증했다. 자료 중앙일보·사이람

빅데이터 분석 결과 코로나 1차 유행 후 대구 관련 언급이 급증했다. 자료 중앙일보·사이람

'대구' 연관 키워드를 보여주는 워드클라우드. 글씨가 클수록 더 많이 언급된 단어다. 자료 중앙일보·사이람

'대구' 연관 키워드를 보여주는 워드클라우드. 글씨가 클수록 더 많이 언급된 단어다. 자료 중앙일보·사이람

해묵은 지역감정은 대척점에 있는 전라도도 감염시켰다. 1차 유행 이후 '전라도' 키워드의 연결 중심성 상위 단어로 '대구'와 '신천지' 등이 등장했다. 누리꾼들이 대구의 신천지 교회 집단 감염과 대구·경북, 전라 지역 차별에 대한 반응을 연결하면서다.

전라도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공격과 더 많이 연결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진보 진영을 겨냥한 '좌빨' '문재앙' 등의 혐오표현이 지난해 이후 주요 키워드로 꾸준히 나타났다. '홍어'처럼 전라도를 비하하는 오랜 혐오표현도 마찬가지다. 유튜브 등에선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가짜뉴스와 혐오가 단골 메뉴다.

전라도 비하 댓글을 써 봤다는 대학생 홍모(24)씨도 평소 수많은 지역 혐오를 겪었다고 했다. 그는 "전라도와 충청도가 서로 비하하는 댓글, 경상도를 '토착왜구'라고 하는 댓글을 많이 봤다. 주변에서 하도 경상도가 어떻니, 전라도가 어떻니 말하니까 나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중장년층뿐 아니라 향후 여론을 주도할 청소년까지 혐오에 물들어간다.

"지역 혐오나 여성 혐오나 그런 차별은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아요.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얘기해도 그런 말이 꼭 들어가거든요." (15세 여중생, 2020년 논문 「청소년의 혐오표현 노출실태 및 대응 방안 연구」중) 

지난해 11월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오월을사랑하는모임(오사모)' 회원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감옥에 넣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가짜뉴스의 표적이 되면서 지역혐오의 주된 근거로 등장한다. 뉴스1

지난해 11월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오월을사랑하는모임(오사모)' 회원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감옥에 넣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가짜뉴스의 표적이 되면서 지역혐오의 주된 근거로 등장한다. 뉴스1

지역·이념 앞에선 '이성보다 감정'

다만 지역·이념 혐오는 젠더나 중국동포 등 다른 혐오와 구분되는 특징이 나타났다. 소셜 미디어 등에 퍼진 혐오의 근거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비율은 확연히 낮았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전라도서 가장 많은 강력 범죄가 발생한다'와 '대구의 범죄율은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명제는 인식 조사 응답자의 19.3%와 15%만이 각각 맞다고 봤다. 반면 남녀, 중국동포, 난민·인종과 관련된 혐오 명제에 대해선 30~70% 수준의 응답자가 동의했다. 온라인에 떠도는 지역 혐오의 근거가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이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지역 혐오가 여전한 건 '팩트'가 아니라도 믿고 싶은대로 믿겠다는 감정이 앞선 것으로 풀이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혐오표현은 대부분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감정적 판단이 먼저 만들어진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지역에서 범죄가 자주 발생한다는 전제도 맞지 않았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2019년 전남과 전북의 살인 범죄는 각각 28건, 43건이었다. 광주는 22건이었다. 세 곳을 합치면 전국 살인범죄 건수(847건)의 11%에 불과하다. 강도 범죄도 비슷했다. 같은 해 전남은 27건, 전북은 28건, 광주는 30건이었다. 전라도의 강도 범죄를 합쳐도 전국 845건의 10% 수준이다. 이 지역에서 유독 강력 범죄가 자주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두 번째 명제도 100% 사실은 아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구의 인구 1000명당 범죄 발생 건수는 31.1건이다. 제주(38.9건)-부산(33.1건)-서울(31.8건)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았다.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높긴 하지만, 인구수를 감안해도 전국 최고 수준은 아니라는 의미다. 5대 강력범죄로 꼽히는 살인ㆍ강도ㆍ강간(강제추행 포함)ㆍ절도ㆍ폭력도 2014년 2만9396건에서 2018년 2만2631건으로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지역주의와 정치 양극화에 따른 갈등의 씨앗은 정치권에서 적극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혐오 전문가는 "지역·이념 갈등은 사실상 만들어진 혐오"라며 "정치인들이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팬덤 정치를 하며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를 집어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은 우울(블루)과 분노(레드)를 동시에 가져왔다. 특히 두드러진 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다. 서구에선 아시아인 등에 대한 증오범죄와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이 이어진다. 국내서도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혐오 정서가 난무한다. 여혐ㆍ남혐 논란, 중국동포(조선족)와 성소수자 비난 등이 대표적이다.
'성별, 장애, 출신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편견을 조장하고 멸시ㆍ모욕ㆍ위협을 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 혐오표현의 정의(2019년 인권위 보고서 참조)다. 이러한 혐오표현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아왔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출하는 모양새다. 혐오는 때론 내 이웃을 향하고, 종종 나 자신을 겨누기도 한다. 팬더믹 1년 반,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우리 안의 혐오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살펴봤다. 혐오표현이 근거로 삼는 명제들이 맞는지도 '팩트체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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