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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버트 부차관보 “한ㆍ일, 과거와 미래 다른 바구니에 담으라”

중앙일보

입력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가 2021년 7월 28일 워싱턴에서 한미동맹재단이 주최한 '평화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가 2021년 7월 28일 워싱턴에서 한미동맹재단이 주최한 '평화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가 28일(현지시간) 한·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미국이 생각하는 한·일 해법을 제시했다. 한·일 갈등은 미국 입장에서 해묵은 과제이지만, 고위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해결책을 언급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20세기 잔혹행위" 일제 만행 거론 #단 과거와 미래 분리해 협력 강조 #통신선 복구엔 "흥미로운 진전" 표현

램버트 부차관보는 이날 워싱턴에서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가 공동 주최한 '평화 콘퍼런스'에서 양국 간 과거와 미래의 '두 바구니론'을 제시했다.

램버트 부차관보는 "몇 년간 우리가 공통의 기반을 찾기 위해 도쿄, 서울과 협력해 왔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 솔직해지자.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면서 "20세기에 일어난 잔혹 행위(atrocities)는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들을 한 바구니에 담아 그에 걸맞게 대하고, 다른 바구니에는 21세기에 양국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들로 채우려 노력하는 게 우리 같은 실무자들에게는 도전 과제"라고 밝혔다. 한 바구니에는 과거를, 다른 바구니에는 미래를 담자는 주문이다.

문맥상 '20세기 잔혹 행위'는 일제 만행을 뜻한다. 동시에 '과거 바구니'와 '미래 바구니'의 분리는 한국을 향해선 과거는 과거로 대하라는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램버트 부차관보 발언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일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사가 있을까’라는 사회자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한·일 갈등은 역대 미국 행정부의 외교 과제 중 하나다. 바이든 정부 역시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한미일 삼각 협력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문구를 넣을 정도로 우선순위다.

그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이 결정됐다가 곧바로 취소된 일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주 웬디 셔먼 부장관이 아시아에 갔을 때 우스운(funny) 일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셔먼 부장관이 탄 비행기가 급유를 위해 중간 기착지에 내렸을 때 서울(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받은 첫 보고는 돌파구가 마련돼 문 대통령이 (도쿄) 올림픽에 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도쿄에 도착했을 때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 명확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anxious)했다. 다음 날 한·일 차관을 만났을 때 그들이 서로를 정중히 대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안도했다.”

램버트 부차관보는 "일본과 한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두 동맹"이라면서 "일본과 한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내 나라(미국)가 덜 안전하고, 일본과 한국이 협력하지 않을 때 그들 역시 덜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 젊은이들은 나라가 일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더 안전하고 보다 번영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일본의 젊은이들, 미국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램버트 부차관보는 "만약 두 나라 모두 미국이 역할을 하길 원한다면 미국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가 '평화 컨퍼런스'를 열었다. 왼쪽부터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마크 램버트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 박명림 연세대 교수.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가 '평화 컨퍼런스'를 열었다. 왼쪽부터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마크 램버트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 박명림 연세대 교수.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통신선 복구엔 사실상 평가 유보

램버트 부차관보는 북한이 지난 27일 13개월 만에 전격 남북 통신 연락선을 복원한 데 대해서는 "흥미로운 진전(interesting development)"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평가를 유보하는 듯한 표현이다. 긍정적이다 아니다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지 않다.

그는 "정전협정 체결 68주년을 맞는 날에 일어났다"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동맹인 한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램버트 부차관보는 한·미 동맹 현주소도 짚었다. 그는 "70년 넘은 동맹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 미국은 미국 국민에게, 한국은 한국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은 한국의 방어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이제는 세계로 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세계 곳곳에 있는 도전과 기회에 한·미가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 대한 대응, 산업 공급망 안정, 사이버 위협 대응, 기후변화, 국제기구 운영 방식 등에서 한·미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한국이 미국의 중남미 불법 이민자 유입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캐나다와 함께 나선 거의 첫 국가라는 점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면서 "10~20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일이다. 매우 기쁘고 만족한다"고 말했다.

램버트 부차관보는 한국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로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을 당할 때 미국이 손 놓고 있었다는 일각의 주장에는 반박했다.

그는 "사드 배치를 추진할 때 중국 측 인사가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나는 '외람되지만 당신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말해줬다"고 회상했다.

또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때 미국이 중국에 맞서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미국이 한국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이의를 제기한다"면서 "우리는 한국과 어깨를 걸고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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