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만 슬퍼해줘" 극단선택 아들의 부탁, 엄마는 거절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9 05:00

업데이트 2021.07.29 09:05

광주에서 학교 폭력 피해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고등학생 어머니가 지난 2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한 손편지.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광주에서 학교 폭력 피해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고등학생 어머니가 지난 2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한 손편지.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엄마 "너 힘들게 했던 사람들 혼내줄게" 

'엄마 아빠 일주일만 딱 슬퍼해 주고 그 다음부턴 웃으면서 다녀주세요. 저는 엄마 아빠가 웃는 게 너무 좋거든요. 제가 진짜진짜 사랑해요.'(A군 유서 내용 일부)

'엄마가 그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어. 네가 너무 그립거든. 대신 너(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전부 혼내줄게.'(A군 어머니가 아들에게 쓴 편지 내용 일부)

광주광역시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고등학교 2학년 A군(18)은 유서에서 부모님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과 걱정·사랑 등을 담았다.

[사건추적]
학폭 시달리던 광주 고교생 …경찰, 가해자 3명 구속영장

뒤늦게 아들의 사망 배경에 학교 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 아버지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글을 올리고, 어머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손편지를 올렸다. 도대체 이들 가족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9일 광주 광산경찰서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달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11시 19분쯤 광산구 어등산에서 A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A군의 몸에 외상이 없고, 타살 정황이 없다고 보고 자살 사건으로 판단했다.

'단순 자살'로 묻힐 뻔했던 사건은 A군이 남긴 유서가 확인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사망 전날 A군이 태블릿PC에 남긴 유서에서 학교 폭력이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돼서다.

A군은 '안녕'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유서에서 '엄마 아빠 많이 놀라셨죠.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제가 계속 살아가면 엄마 아빠 힘만 빠지고, 저도 엄마 아빠 얼굴 보기가 힘들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구들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나 학교에서 맞고 다니던 거 X팔리고 서러웠는데 너희 덕분에 웃으면서 다닐 수 있었어. 너무너무 고마워'라고 적었다.

광주에서 학교 폭력 피해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고등학생 아버지가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일부.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광주에서 학교 폭력 피해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고등학생 아버지가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일부.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아들 목 조르던 가해자가 운구할 뻔"

발인을 하루 앞두고 A군의 부모는 충격에 빠졌다. A군의 친구 부모가 장례식장에 찾아와 동영상을 보여준 직후였다. 영상에는 A군이 지난해 교실에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 다른 학생이 뒤에서 목을 조르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동영상을 가져온 부모는 A군의 목을 조르던 남학생 중 1명이 다음 날 운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막아야겠다는 마음으로 A군 부모를 찾았다고 한다. A군 부모는 해당 영상과 사망 전 아들이 남긴 유서 등을 근거로 학교 폭력 의혹을 제기하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A군 어머니는 지난 2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해 달라는 글을 올리면서 아들에게 쓴 손편지도 공개했다. 그는 "아들아, 너를 품은 10개월은 행복했어"라며 "세상에 나고 보니 너만큼 빛나는 아이가 또 없더라. 17년 하고도 6개월을 업히고 먹이고 키웠는데 거기가 어디라고 엄마보다 먼저 가니"라고 했다.

이어 "네가 엄마한테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그랬지. 일주일만 슬퍼하고 담엔 웃고 다녀주라고. 엄마 웃는 게 좋다고"라며 "엄마가 그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어. 네가 너무 그립거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신 너 힘들게 했던 사람들 전부 혼내줄게"라며 "아들아 고통 없는 그곳에서 행복하렴. 다음에 우리 또 만나자. 그땐 엄마 곁에 오래 머물러줘"라고 했다.

"아들 억울함 풀어주세요" 청와대 국민청원 

A군 아버지도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학교 폭력으로 인해 생을 마감한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6월 29일 화요일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학교에 간다던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인근 산으로 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며 "장례를 치르던 중 교실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제보받고 이유를 알게 됐다"고 했다. "수년간의 학교 폭력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길이었다"면서다.

A군 아버지는 "아들이 매일 웃으며 저의 퇴근길을 반겨주었는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낸다고 항상 씩씩하게 말하던 녀석인데, 속으로 그 큰 고통을 혼자 참고 견디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아비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학교 폭력을 가한 가해 학생들이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이) 저희가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글은 28일 현재 19만7000여 명이 동의했다.

학교 폭력 이미지. 중앙포토

학교 폭력 이미지. 중앙포토

11명 가해자 분류…'공동상해' 3명 영장

경찰은 28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상해) 혐의로 A군이 다니던 고교 재학생 3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고교 1학년 때부터 사망 전까지 A군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상해를 입힌 혐의다.

이들 3명은 공동폭행 혐의로 입건된 11명 중 주도적으로 A군을 괴롭힌 학생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이들은 29일 오전 11시 광주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는다.

경찰은 앞서 A군의 사망 배경에 학교 폭력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급생 전원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했다. A군이 생전에 학교 폭력을 당했다면 목격했거나 알고 있는 내용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11명을 가해자로 분류해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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