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한 식당 하나 없는 계곡, 그래서 사람도 더위도 피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9 05:00

업데이트 2021.07.29 16:43

삼척 덕풍계곡 용소골 트레킹

에메랄드 빛 물을 토해내는 강원도 삼척의 미인폭포. 이맘때 더위를 피해가기 숨어들기 좋은 장소다. 백종현 기자

에메랄드 빛 물을 토해내는 강원도 삼척의 미인폭포. 이맘때 더위를 피해가기 숨어들기 좋은 장소다. 백종현 기자

하루하루가 유독 더 힘들게 느껴지는 여름이다. 휴가철이 왔지만, 문밖을 나서기가 두렵다. 연이은 폭염, 감염병 확산의 영향이다. 이름난 피서지에서 즐기는 바캉스는 당분간 피하고 싶다. 하여 강원도 삼척에 갔다. 바닷가가 아니라 계곡으로 숨어들었다. 가곡면 풍곡리의 덕풍계곡이다. 응봉산(999m) 북쪽 기슭, 깎아지른 벼랑 아래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물이 흘러간다. 더위와 사람을 피해 숨어들기 좋은 천혜의 피신처다.

폭염이 닿지 않는 산골

덕풍마을 입구는 계곡의 하류다. 유속이 느리고 폭이 넓어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백종현 기자

덕풍마을 입구는 계곡의 하류다. 유속이 느리고 폭이 넓어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백종현 기자

덕풍계곡으로 휴가 계획을 짜려면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일단 멀다. 삼척에서도 아득한 오지로 꼽히는 가곡면 덕풍마을이 계곡의 들머리다. 계곡을 따라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10여 개의 민박집이 틀어 앉아 있을 뿐, 변변한 식당 하나 없는 으슥한 산골이다.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가거나, 민박집에 “토종닭 하나 잡아놔 달라”는 식으로 미리 주문해야 끼니를 채울 수 있다.

덕풍계곡은 장장 13㎞에 이르는 거대한 물줄기다. 굽이굽이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다. 피서객 대부분은 덕풍마을 초입의 하류에만 머문다. 그나마 차를 대기도 편하고, 펜션과 슈퍼마켓이 가까워서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유속이 빨라지고 길이 험하다.

마을 안쪽도 요즘은 부쩍 피서객이 줄었다. 코로나의 영향이다. 계곡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장용택(60)씨는 “보통 6월이면 여름철 방이 다 나갔는데, 아직도 빈방이 많다”고 말했다.

간단한 물놀이가 아니라 더위와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목적이라면 덕풍계곡의 원줄기인 용소골로 들어야 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덕풍계곡’을 검색했을 때 쏟아지는 그윽한 계곡의 이미지는 하류가 아니라 용소골에 있다.

용소골로 가려면 벼랑과 계곡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뻗은 마을 길(5.5㎞)을 통과해야 한다. 차 한 대가 겨우 오갈 만큼 폭이 좁다. 덕풍계곡 터줏대감으로 통하는 민박집 ‘덕풍산장’이 보이면 자동차 핸들을 놓고, 신발끈을 동여매야 한다. 도로가 끊기는 이곳에서 용소골이 시작된다.

첨벙첨벙 계곡 속으로

용소골은 깊은 협곡이다. 계곡물과 깎아지른 벼랑 사이를 내내 걸어야 한다. 백종현 기자

용소골은 깊은 협곡이다. 계곡물과 깎아지른 벼랑 사이를 내내 걸어야 한다. 백종현 기자

“한여름에도 오전 9시는 돼야 볕이 듭니다. 빗방울이 보이면 곧장 돌아오세요.”

출발에 앞서 노영남(65) 덕풍마을 이장이 완곡하게 겁을 줬다. 그만큼 산이 깊고 험하다는 뜻이었다.
적막감. 용소골의 첫인상은 그랬다. 초입의 계단을 넘어서자 곧장 깎아지른 절벽이 겹겹으로 솟아 사방을 포위했다. 벼랑 위는 금강송과 참나무로 울창했다. 고개를 젖히지 않으면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용소골에는 용소(龍沼), 그러니까 큰 웅덩이가 세 곳 있다. 안전상의 이유로 현재는 마을에서 제2용소까지 이어지는 2.5㎞ 구간만 개방돼 있다. 평평하고 견고한 철제 탐방로가 두루 깔렸지만, 걷는 맛이 대단했다. 바위를 징검다리 삼아 계곡을 지나고, 밧줄에 의지해 절벽을 거슬러 올랐다. 무엇보다 굽이굽이 돌아가며 협곡을 구경하는 재미가 컸다. 계곡물에 한두 번 발을 빠트리고 나니 보폭이 점점 과감해졌다.

철제 탐방로는 제2용소에서 끝이 난다. 용소 주변으로 더위를 피해갈 만한 너럭바위가 수두룩하다. 백종현 기자

철제 탐방로는 제2용소에서 끝이 난다. 용소 주변으로 더위를 피해갈 만한 너럭바위가 수두룩하다. 백종현 기자

제2용소로 가는 동안 신발도 옷도 흠뻑 젖어버렸다. 폭포 아래 너럭바위에 대충 짐을 풀고 발을 담갔다.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찼다. 1급수에만 산다는 버들치가 쉴 새 없이 발밀을 지나갔다. 용소는 당장에라도 텀벙 뛰어들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빛깔을 튕겨 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린 숲처럼 분위기가 그윽했다. 좀처럼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폭포에 물감을 푼 듯

에메랄드 빛 물이 흐르는 삼척 미인폭포. 이국적인 풍경 덕에 기념 사진을 담아가는 사람이 많다. 백종현 기자

에메랄드 빛 물이 흐르는 삼척 미인폭포. 이국적인 풍경 덕에 기념 사진을 담아가는 사람이 많다. 백종현 기자

삼척에 걸출한 협곡이 또 있다. 삼척 도계읍에서 태백 통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맡에 있는 통리협곡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곱다는 미인폭포가 통리협곡 안에 숨어 있다. 덕풍마을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용소골이 두 발로 체험하는 피서지라면, 미인폭포는 눈으로 만끽하는 피서지다. 초입의 아담한 사찰 여래사를 지나, 비탈을 따라 15분을 내려가면 거대한 폭포가 위용을 드러낸다. 미인폭포가 30m 높이에서 토해내는 물은 선명한 에메랄드 빛이다. 석회석에서 녹아 나온 석회질 성분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왜 미인폭포일까. 예부터 주변에 미인이 많았다는 설도 있고, 폭포 생김새가 치마를 입은 여인 같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치마폭의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으니 폭포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사이 전화를 여럿 놓쳤다. 도시가 아득히 멀어 보였다.

여행정보
덕풍마을에서 운영하는 야영장과 방갈로가 덕풍계곡 안쪽에 마련돼 있다. 4만원부터. 마을 초입 관리소에서 어린이를 위한 구명조끼를 무료로 빌려준다. 용소골은 곳곳이 뾰족한 바위다. 바닥이 단단한 트레킹화를 준비하는 게 이롭다. 마을 입구~용소골(5.5㎞)을 오가는 마을버스가 다닌다. 미인폭포 앞 여래사에서 관리비 명목으로 입장료 1000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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