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페미, 안산=페미' 논란에···숏컷 여성 "해외 토픽감"

중앙일보

입력 2021.07.29 05:00

업데이트 2021.07.29 07:20

“안산 머리가 숏컷인데 페미인가요?” “숏컷에 여대는 페미다.”

도쿄올림픽 양궁 2관왕을 달성한 안산(20) 선수를 두고 느닷없이 페미니즘을 거론한 일부 네티즌들의 편견이 논란이다. ‘숏컷’에 대한 공격적인 지적과 함께 이번 올림픽에선 여성경기복 등 젠더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 역대 최고를 기록한 여성 참가자 비율은 물론 개막식 선서자의 성비를 맞추고, 남녀 선수가 공동 기수로 나선 첫 올림픽이란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올림픽 젠더 논쟁과 관련해 숏컷을 한 2030 여성 5인의 의견을 들어봤다.

대한민국 양궁대표팀 안산이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혼성단체전 8강에서 활을 쏘고 있다. [뉴스1]

대한민국 양궁대표팀 안산이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혼성단체전 8강에서 활을 쏘고 있다. [뉴스1]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기분 전환을 위해", "아침 준비 시간을 줄이고 편해서", "내가 하고 싶으니까" 이들이 밝힌 숏컷을 유지하는 이유다. 안 선수에 대한 논란에는 "꾸미면 꾸몄다고, 안 꾸미면 안 꾸몄다고 비판하려 든다", "나도 머리 길러보라는 남자들의 권유와 맨스플레인(man+explain의 합성어, 남성이 여성에게 무턱대고 설명하려는 행위)이 끊이지 않았다"고 답했다.

"꾸미면 꾸몄다, 아니면 아니라고 비난" 

대학생 김모(22)씨는 지난 4월 옆·뒷머리를 짧게 치는 이른바 '투 블록'을 한 뒤 숏컷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손질하기도 좋고 머리 말리는 시간도 금방이다. 숏컷 논란을 보니 외모를 통해 사상 검증을 하려는 것 같고 편협함이 느껴진다. 중요한 건 선수 역량 아닌가? 대단한 일을 하는 여성 선수에게 왜 사상 검증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김씨는 "안 선수는 약간 화장을 했는데 더 진하게 안 하냐는 비판도 봤다. 꾸미면 꾸민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여성에게 비판만 하려 든다"면서 "페미니즘의 의의와 본질은 무시하고 커뮤니티를 통해 접한 '페미'의 일부 이미지만 각인해 공격하고 판단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에 응한 대학생 김모씨와 대학원생 서모씨. 본인 제공

인터뷰에 응한 대학생 김모씨와 대학원생 서모씨. 본인 제공

"과거 없던 논란, 왜 짧은 머리 '단발병'이라 할까"  

대학원생 서모(27)씨는 "주변에서 숏컷을 많이 했고 나도 내 모습이 궁금해 짧게 잘랐다"고 한다. "옛날에 골프의 박세리 선수도 머리가 짧았다. 당시 머리 지적이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금메달을 따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영웅 대접하는 분위기인데 갑자기 왜 이런 지적이 계속되는지 모르겠다."

서씨는 "짧은 머리를 하고 싶은 걸 여성들도 '단발병'이라고 부른다. 친구가 '긴 머리는 당연하고 짧은 머리는 왜 병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한 말이 최근 다시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여성 선수 경기복에 대해서도 "의상 기준이 노출이 덜하고 편한 옷으로 바뀌는 것이 당연한 건데 일각에선 '페미 탓'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본인 개성"…"의상 논란 성차별적 현실"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대표팀 경기복 변화 이전(왼쪽)과 이후. [인스타그램 등 캡쳐]

노르웨이 비치핸드볼 대표팀 경기복 변화 이전(왼쪽)과 이후. [인스타그램 등 캡쳐]

'뮤지션'이라고 밝힌 양모(35)씨는 "음악 작업이 답답하고 안 풀려서 기분 전환을 위해 숏컷에 도전했다"고 했다. "본인의 취향과 개성에 따른 머리를 했을 뿐인데 '숏컷은 페미니스트'라고 단정 짓는 건 논리도 근거도 없는 비난이다. 여성 친구들은 '보이시하다'고 했는데 일부 남성들은 '얼른 다시 길러야지. 그래도 여자는 긴 머리가 낫다'고 하더라."

양씨는 "남성 선수 옷은 사이즈도 여유롭고 노출이 적어 편한 반면 여성 선수 옷은 몸에 달라붙어 불편하고 노출이 심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노르웨이 비치 핸드볼 선수들은 불편함을 느껴 반바지를 입어 경기에 나섰고 벌금 징계를 받았다. 이런 일들이 성차별 현실을 드러낸다. 여성 선수들도 편안하게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의상 규정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메달 따면 "남성은 전사, 여성은 소녀·낭자" 

"잘 어울리고, 머리를 빨리 말릴 수 있다"며 숏컷을 유지하고 있다는 A씨. 본인 제공

"잘 어울리고, 머리를 빨리 말릴 수 있다"며 숏컷을 유지하고 있다는 A씨. 본인 제공

일본에서 일하는 여성 A(29)씨는 "잘 어울려서 숏컷을 했다. 머리를 5분 만에 말릴 수 있어 좋다"면서 "한국에서 '머리를 기르면 어떠냐'는 주변 남성들의 권유와 '맨스플레인'을 들었다"고 했다. "1987년 임춘애 선수에게 '라면 소녀'라는 딱지를 붙였다. 나중에 인터뷰를 보니 도가니탕, 삼계탕도 먹었다더라. 여전히 메달을 딴 남성은 전사, 여성은 소녀, 낭자로 불린다. 2021년에 왜 페미니스트라고 공격하고 낙인을 찍으려는지 모르겠다. 20년 뒤 올림픽에는 과연 어떨까." A씨는 "일본에서는 숏컷이 첫사랑의 이미지라더라. 회사 동료들도 숏컷인 여성이 더 많다"고 했다.

직장인 이모(34)씨는 "숏컷인 여성을 페미니스트냐고 검증하려 드는 것은 해외 토픽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페미니스트 여부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동안의 올림픽 때 여성 선수들이 그런 의상을 원해서 입는 것으로 착각했다. 이번에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씨는 "과거부터 여성 선수들이 겪은 이런 고통에 공감한다"며 "앞으로의 올림픽과 스포츠에서는 이런 관행들이 꼭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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