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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어렸을 때 저지르는 것" 10대 돌풍 뿌듯한 왕년 막내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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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일본 도쿄 수영 센터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승에 황선우 선수가 출전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8일 일본 도쿄 수영 센터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100m 준결승에 황선우 선수가 출전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일은 어렸을 때 저지르는 거거든요”

지난 23일 개막한 도쿄올림픽에서 김제덕(17·경북일고), 신유빈(17·대한항공), 황선우(18·서울체고) 등 10대 태극전사들이 ‘일’을 내는것에 대해 이에리사 전 태릉선수촌장이 한 말이다. 이 전 촌장은 그들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만한 ‘왕년의 막내’다.

“실수의 경험조차 큰 도움 될 것”

10대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를 누빈 이에리사(66) 전 촌장, 양창훈(51) 전 리우올림픽 양궁 여자국가대표팀 감독, 남유선(36) MBC 수영 해설위원들은 도쿄의 10대 돌풍을 어떻게 볼까. 세 사람은 29일 중앙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실수했던 경험조차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6년 7월 20일 서울 광화문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이에리사 전 태릉선수촌장. 중앙포토

2016년 7월 20일 서울 광화문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이에리사 전 태릉선수촌장. 중앙포토

선전하고 있는 후배들을 본 소감은.
▶이에리사=“신유빈 선수한테 기대를 많이 했다. (32강에서 탈락했지만)시합은 다 지나간다. 이긴 것도 지나가고 패한 것도 지나간다. 본인 말대로 단체전에서도 자기 시합을 후회 없이 하면서 다음 올림픽을 기대하면 그땐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양창훈=“실업팀에 있다 보니 김제덕 선수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제덕이가 잘 쏜다’‘전관왕을 했다’는 소식을 양궁계 여기저기서 들었다. 보물 같은 선수니까 어깨부상만 잘 컨트롤하면 10년 이상 한국 양궁 짊어지고 갈 재목이다.”
▶남유선=“한국 선수들이 신체적 조건 때문에 성과 못 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m에서 100m까지 황선우 기록이 굉장히 좋았다. 100m에서 오히려 편하게 실력을 펼칠 수 있을 거라 본다”
지난 2016년 8월 10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에서 우승한 장혜진이 양창훈(왼쪽) 감독과 태극기를 들고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6년 8월 10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양궁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에서 우승한 장혜진이 양창훈(왼쪽) 감독과 태극기를 들고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젠 역사가 된 왕년의 10대 스타들 

이들이 10대 시절의 활약은 한국 스포츠의 역사다. 이 전 촌장은 만 15세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1973년 제32회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 여자 탁구 단체전 우승의 주역이다. 신유빈이 지난 2019년 남녀 탁구 선수를 통틀어 역대 최연소 기록(만 14세 11개월 6일)으로 대표에 선발되면서 이 전 촌장의 기록이 깨졌다.

양 전 감독은 만 16세에 최연소 양궁 국가대표로 선발돼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4관왕에 올랐다. 김제덕보다 한살 어렸을 때다.

남 위원은 만 19세 때인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결승 무대를 밟았다. 지금까지 올림픽 결승에 진출한 한국 수영선수는 남 위원을 비롯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2년 런던올림픽의 박태환, 이번 도쿄올림픽의 황선우 등 세 명 뿐이다.

` 마린보이 ` 박태환이 2008년 8월 10일 베이징 국가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환호하고 있다. 중앙포토

` 마린보이 ` 박태환이 2008년 8월 10일 베이징 국가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환호하고 있다. 중앙포토

어렸을 때부터 큰 대회에 나가는 게 많은 도움이 됐나.
▶양창훈=“고1 때 너무 잘했다 보니까 자만심을 가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건방도 좀 들었던 거 같고…그렇게 성적을 내고 나서 열심히 안 하고 소홀한 게 있었다. (2년 뒤 88서울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양궁 선발전에 당연한 건 없다. 여차하면 떨어진다.”
▶남유선=“중3 때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처음 나갔다. 너무 어릴 때 올림픽에 참여하다 보니 시합을 통한 기록 달성이라든지 목표 설정을 하진 못했다. 두 번째 올림픽에선 그런 부분을 보완했다. 그래서 큰 대회에 최대한 어릴 때 참가하고 도전하는 게 좋다.”

수평적 관계가 시행착오 줄여

10대의 경험이 지도자가 되는 데도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다. 이 전 촌장은 사라예보 선수권 대회 일화를 언급하며 “단체전 우승하고 새벽까지 전화 받느라 개인전에선 컨디션이 엉망이 됐다”며 “그래서 훈련에 지장이 없도록 1988년 서울올릭픽(한국 여자탁구대표팀 감독) 때 처음으로 미디어데이를 만들었다. 태릉선수촌장 할 때도 출입카드시스템 만들어서 선수들 훈련이나 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양궁 국가대표 오진혁, 김우진, 김제덕이 26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양궁장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양궁단체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포효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양궁 국가대표 오진혁, 김우진, 김제덕이 26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양궁장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양궁단체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포효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 경기에선 김제덕이 23살 위인 오진혁에게 “오진혁 파이팅”이라고 반말 응원을 한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대모비스 여자양궁단 감독으로 재직 중인 양 전 감독과 경기체중 코치를 지낸 남 위원은 수평적인 선후배 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예전과 선후배 관계도 달라진 것 같다.
▶양창훈=“예전엔 뭐 하라고 하면 ‘네, 네’ 무조건 대답했는데 요즘 후배들은 왜 해야 하는지 물어본다. 거기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지 애들이 이해하고 납득을 한다. 오히려 이런 건 지금이 더 나은 거 같다. ‘왜 하기 싫으냐’‘왜 해야 하냐’ 소통을 하니깐 갈등으로 인한 시행착오를 덜 겪는 거 같다.”
▶남유선=“예전에는 팀 분위기를 선배들이 주도하고 후배들은 따라가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선후배를 나누지 않고 같은 동료로 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편안해진 느낌이다. 정해진 룰과 팀에서 정한 분위기에 맞춰가는 것보다 지금이 제 실력 발휘하기가 좋다.”
신유빈이 27일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탁구 개인전 홍콩 두 호이 켐과 경기에서 공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유빈이 27일 도쿄체육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탁구 개인전 홍콩 두 호이 켐과 경기에서 공격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른들이 번역 잘못할 때가 많아”

‘디지털 네이티브’(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 세대인 요즘 10대 선수들은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팬들과도 활발한 소통을 한다.

양 전 감독은 10대 선수들의 SNS 활동을 자연스럽게 봐달라는 입장이다. 그는 “본인들은 편하게 얘기하는데 어른들이 번역을 잘못할 때가 많다”며 “선수들의 튀는 행동을 보면서 ‘쟤는 왜 저런 생각을 하지’하고 의미 부여를 하는데, 선수인 거 빼면 이들도 10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촌장은 “우리 세대가 그렇게 안했다고 해서 ‘너네도 그러지 말아라’고 얘기할 순 없다”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좀 더 운동에 집중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도는 해본다”고 말했다. 그런 뒤 “이런 말도 ‘저게 바로 라떼야’라고 하려나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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