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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은 조국의 시간, 야당은 탄핵의 강으로…대선 주자들 ‘역주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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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제부터 ‘국민의 시간’이다.”(6월 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정당했다.”(6월 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지난달 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송 대표는 이 자리에서 “조국 장관 자녀입시관련 논란 등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드렸다”고 사과했다. 중앙포토

지난달 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송 대표는 이 자리에서 “조국 장관 자녀입시관련 논란 등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드렸다”고 사과했다. 중앙포토

지난달 초 거대 여ㆍ야 대표는 각 정당의 강성 지지층 반발에도 ‘조국의 시간’과 ‘탄핵의 강’을 건너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송 대표는 취임 한 달 기자간담회에서, 당 대표 후보였던 이 대표는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꺼낸 말이었다. 두 사람의 말은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 극성 지지층에 기대지 않고 중도 확장에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평가받았다.

지난달 3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가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대구ㆍ경북 합동연설회에서 정견을 발표하는 모습. 그는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정당했다”고 말했다. 뉴시스

지난달 3일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가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대구ㆍ경북 합동연설회에서 정견을 발표하는 모습. 그는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정당했다”고 말했다. 뉴시스

하지만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여·야에선 조국의 시간과 탄핵의 강으로 돌아가려는 회귀 본능이 발현되고 있다. 대선을 향한 당 대표들의 방향을 교란한 건 경선이 급한 대선 주자들이다.

與 이낙연 “尹, 조국에 사죄하라”…이재명 측 “檢, 수사권 남용”

민주당의 회귀를 자극한 건 지난 23일 조국 전 법무장관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입시 비리 관련 1심 재판에서 나온 조민씨의 고교 동창 장모씨의 진술이었다. 장씨는 “(2009년 6월 서울대 사형제도) 세미나 동영상 속 여성은 조민이 90% 맞다”고 진술했고 이틀 뒤 페이스북엔 “조민은 사형제도 세미나에 분명 참석했다”라고 썼다. 그가 지난해 법정에서 “세미나에서 조민을 본 적 없다. 동영상 속 여성은 조민이 아니다”라고 했던 진술을 뒤집은 것이다.

조 전 장관 딸 조민씨의 고교 동창 장모씨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26일 링크한 조 전 장관. 페이스북 캡처

조 전 장관 딸 조민씨의 고교 동창 장모씨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26일 링크한 조 전 장관. 페이스북 캡처

친문 지지층 사이에서 “장씨의 양심 고백으로 조국의 진실이 돌아오고 있다”는 기류가 형성되자 여권 지지율 2위인 이낙연 전 대표는 2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윤석열(전 검찰총장) 검찰이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무리한 기소를 어떻게든 밀어붙이기 위해 또 다른 가족을 인질로 잡고 청년에게 거짓 증언을 강요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장씨는 “검사의 압박이나 회유는 없었다”(25일 페이스북)고 했지만 이 전 대표는 “윤석열씨는 국민과 조 전 장관, 장씨의 가족에게 사죄하라”고 주장했다.

28일엔 여권 1위 이재명 경기지사의 캠프 수행실장인 김남국 의원이 라디오에 나와 “(장씨의 말은) 굉장히 의미 있는 양심선언이다. (지난해 진술은) 당시 수사팀의 과잉된 수사권 남용 때문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같이 출연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양심선언이란 표현은 과도한 해석”이라며 “이런 식으로 조국 랠리를 끌고 가는 게 이재명 지사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보느냐”고 반문했다.

野 윤석열 “朴에 송구”…홍준표ㆍ유승민 “尹이 朴 수사”

야권 대선 주자들에게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8ㆍ15 특별사면 가능성 언급과 탄핵 정당성을 희석하는 말들이 잇따르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았던 윤 전 총장이 특히 적극적이다. 지난 20일 대구를 찾은 윤 전 총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소추를 했던 것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8ㆍ15 특사와 관련해선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위해서 (사면권을) 잘 행사하실 것으로 기대한다”(26일)는 말을 남겼다.

2016년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설문 유출과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6년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설문 유출과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민의힘 내부 주자들은 윤 전 총장을 견제하기 위해 탄핵의 강에 한발 더 다가섰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26일 페이스북에 “(윤 전 총장이) 자신은 법과 원칙대로 수사했다고 강변하면서, 무리하게 감옥 보낸 두 분(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사면 요구하는 것이 정상적인 검사의 태도냐”며 “두 분에 대한 수사는 정치수사였고 잘못된 수사라고 고백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에 꼭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하는 이유를 호소할 것”(지난달 언론 인터뷰)이라던 유승민 전 의원도 최근 “국회에서 탄핵한 것까지는 내가 역할 한 게 맞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박 전 대통령 구속ㆍ기소ㆍ구형까지의 주체였다. 특검 때부터 서울중앙지검장까지 하며 역할을 한 것”(21일 언론 인터뷰)이라고 주장했다.

강성 친문, 태극기 세력 껴안기…“대선 확장력엔 방해”

여야 주자들이 과거 회귀 증상을 보이는 것은 경선판에서 전통 지지층 또는 극성 지지층의 심사를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여론을 좌지우지 하는 친문 유튜버들이나 이들의 말에 영향을 받는 극성 지지자들 사이에선 조 전 장관의 혐의를 ‘누명’이라고 여기거나 조 전 장관 일가를 ‘순교자’로 보는 시선이 뚜렷하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불복 주장은 이른바 ‘태극기 세력’이 가장 적극적이지만 그 밖의 국민의힘 전통 지지층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좁지 않다.

2019년 10월 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과 서초역 일대에서 열린 ‘제8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 문화재’. 뉴스1

2019년 10월 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과 서초역 일대에서 열린 ‘제8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 문화재’. 뉴스1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2년째인 2019년 3월 10일 서울 도심에서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태극기집회’가 이어졌다. 보수단체 회원 등 참가자들이 이날 검은색 근조 리본을 가슴에 달고 서울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탄핵 무효”, “즉각 석방”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2년째인 2019년 3월 10일 서울 도심에서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태극기집회’가 이어졌다. 보수단체 회원 등 참가자들이 이날 검은색 근조 리본을 가슴에 달고 서울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탄핵 무효”, “즉각 석방”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대선 주자들의 회귀 경쟁에 송 대표와 이 전 대표는 난감한 표정이다. 송 대표의 한 측근은 “송 대표가 기껏 국민의 시간을 만들었는데, 다시 조국의 시간이 드리워져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님아, 그 강(탄핵의 강)에 빠지지 마오”(21일)라고 호소하거나 “대선 경선 과정에서 탄핵에 대한 입장차를 부각하려는 사람들은 국민과 당원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26일)이란 경고를 내고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각 당 대표들의 중도 확장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선 주자들이 자기 당원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경선을 이기더라도, 결국은 대선에서 중요한 확장력에는 방해만 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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