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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총각은 못 나가는 ‘처녀출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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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올림픽이 한창이다.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처녀출전’이란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총각출전’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처녀뿐 아니라 총각들도 경기에 참여하는데 왜 ‘총각출전’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일까?

‘처녀출전’이란 것이 처녀들이 출전한다고 해서 부르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출전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처녀(處女)’는 원래 결혼하지 않은 성년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순수하고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처녀’란 말이 ‘처음’ 또는 ‘첫’이란 뜻으로 다른 낱말과 결합해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처녀출전’을 비롯해 ‘처녀우승’ ‘처녀작’ ‘처녀등정’ 등 이런 단어가 많다.

이러한 조어가 만들어진 것은 영어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 처녀림(virgin forest), 처녀비행(maiden flight), 처녀항해(maiden voyage) 등이 영어에 있는 표현이다. ‘처녀’를 뜻하는 영어 ‘virgin’ 또는 ‘maiden’이 들어간 말이다. 이들을 번역하면서 접하게 된 표현이 우리말에도 적용되면서 ‘처녀○○’ 형태의 말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하지만 ‘처음’이란 뜻으로 굳이 ‘처녀’라는 말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다. ‘처녀’란 말에서 여성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의 성적·신체적인 면을 이용한 이런 표현에는 남성 중심적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 의견이다.

‘처녀’가 비록 사전적으로 ‘처음’이란 뜻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으로서는 이 말에 충분히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출전’ ‘첫 우승’ ‘최초 비행’ 등처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인 ‘처음, 첫, 최초’를 사용해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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