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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검열 시대 되돌리는 언론중재법, 유령 의결 무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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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 방에서 대안을 본 사람이 있나. 이건 ‘유령 의결’이다.”(이달곤 국민의힘 의원)

여당, 내용 공유도 않고 소위 처리 #5배 징벌배상 등 독소조항 그대로 #‘매출액 크면 배상 많이’ 억지 조항도 #전문가 “유례없는 규제로 언론 위축”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언론중재법을 강행 처리하자 야당에서 터져 나온 반발이었다.

여야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쟁점을 두고 토론을 벌였지만 평행선만 달렸다. 회의 시작 7시간여 만에 박정 소위원장이 “위원회 대안으로 의결하겠다”며 표결에 부쳤지만, ‘위원회 대안’의 구체적 내용은 공유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대안이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의결하나. 이건 무효”라고 항의했지만 의사봉을 두드린 후였다. 출석 위원 6명 중 국민의힘 의원 2명을 제외한 범여권 4명의 찬성으로 법안은 소위 문턱을 넘었다.

회의 후 박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의결하는 순간 대안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일반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개 의견이 갈릴 경우 위원장이 대안 내용을 대략적으로 공유해 구두 합의를 이룬 뒤 의결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그런 절차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언론중재법' 주요 내용 및 전문가·야당 의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민주당 '언론중재법' 주요 내용 및 전문가·야당 의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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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28일에도 “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을 ‘언론 검열 시대로의 회귀’로 규정하고, 절대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최형두 의원), “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려는 정치적 속내에 불과하다”(강민국 원내대변인)고 강력 반발했다.

소위에서 강행 처리된 법안에는 언론 자유를 제한할 우려가 큰 ‘독소조항’이 대거 포함됐다.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언론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정정보도를 해당 언론보도와 같은 시간·분량·크기로 보도 ▶열람차단·기사삭제 청구권 등이다.

언론의 고의·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법원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선 세계에서 유례없는 과잉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 교수는 “언론보도 피해구제는 명예훼손 등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언론자유를 위축시켜 전체 정보량을 크게 축소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손해배상액 하한선을 언론사 매출액의 1만분의 1로 정한 조항도 법리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매출액이 큰 회사가 무조건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데, ‘돈 많으니까 벌금 더 내라’는 논리가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허위 보도에 대한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할 수 있도록 신설된 조항도 문제다. 해당 조항은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 등 6가지 경우를 ‘언론사의 명백한 고의·중과실로 추정한다’는 조항인데, “정의가 모호해 권력의 입맛에 따른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최형두 의원)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사진·삽화·영상 등 시각자료와 기사 내용을 다르게 하거나,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시각자료를 사용해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라는 조문은 최근 조국 전 법무장관의 딸 일러스트를 사용해 논란이 된 사례를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 조문이 명확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조항이다. 예컨대 ‘시각자료와 기사 내용이 다른 경우’를 대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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