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리가 부족해서 시작한 사브르, 구본길은 간절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8 21:44

구본길 남자 펜싱 국가대표가 28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함성을 외치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구본길 남자 펜싱 국가대표가 28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B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함성을 외치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구본길(32·국민체육진흥공단)에게 어쩌면 펜싱 사브르는 운명일 수 있다.

구본길은 28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B홀에서 열린 단체전 결승전에서 김정환(38·국민체육진흥공단), 김준호(27·화성시청), 오상욱(25·성남시청)과 호흡을 맞춰 이탈리아를 45-26으로 대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 사브르 단체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선 종목 로테이션에 따라 단체전이 열리지 않았다. 대표팀은 도쿄올림픽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2연패를 이뤄냈다. 구본길은 9년 전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멤버여서 이날의 승리가 더 의미 있었다.

개인전의 아픔을 깔끔하게 씻었다. 세계랭킹 9위인 구본길은 지난 25일 열린 사브르 개인전에서 32강에서 덜미가 잡혔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마티아스 차보(독일·27위)에 8-15로 졌다. 경기 시작과 함께 내리 6점을 줄 정도로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아무것도 못 해보고 졌다"며 자책한 그는 사흘 뒤 열리는 단체전에 전념했다. 이미 대회 전 구본길은 "단체전에서 금메달이 목표"라고 말했었다.

해결사였다. 구본길은 결승으로 가는 분수령이던 '난적' 독일과의 4강전에서 45-42로 팀 승리를 견인했다. 11-15로 뒤진 4세트에 투입돼 독일 베네딕트 바그너를 세트 스코어 9-3으로 압도, 점수를 20-18로 역전했다. 대표팀은 5세트에 나온 오상욱이 상승세를 이어가며 25-21로 격차를 벌렸고 최종 3점 차 승리를 따냈다. 결승전에서도 그의 경기력엔 빈틈이 없었다. 10-4로 앞선 3세트 엔리코 베레와의 승부에서 5-2, 7세트에선 알도 몬타노를 5-2로 제압했다. 결승전 보기 드문 점수 차엔 그의 공격 본능이 큰 역할을 했다.

구본길은 중학교 1학년 때 교내 펜싱부 감독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학교 펜싱부엔 사브르와 플뢰레만 있었고 사브르를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시작할 때 사브르에 엔트리가 모자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단체전을 진두지휘하는 대표팀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했다. 런던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2017년부터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3연패,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에 이어 도쿄에서도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올랐다.

경기 뒤 구본길은 "나와 김정환 선수는 (런던에서) 올림픽 메달의 맛을 봤고, 이 느낌을 후배들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며 "개인전에서 경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나 자신에 대해 불안했다. 간절함으로 버텼는데 그 간절함이 지금의 메달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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