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인은 조개홀릭? 바다서 60㎞ 남원 고분에 조개껍질 수북

중앙일보

입력 2021.07.28 17:32

업데이트 2021.07.28 17:50

전북 남원 제30호분에서 발견된 조개더미 [사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전북 남원 제30호분에서 발견된 조개더미 [사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대가야인들은 조개 홀릭이었을까.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에서 발굴된 제30호분(5~6세기 추정)에서 나온 유물 중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조사단의 시선을 끈 것은 항아리에 가득 담긴 우럭조개와 피뿔고둥 더미였다. 가야 고분에서 조개류가 발견된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앞서 김해나 진해, 창원 등지에서 발견된 가야 유적에서도 조개와 고둥류가 발굴돼 가야인이 이를 식재료로 즐겨 사용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전북 남원 제30호분에서 발견된 조개와 고둥 [사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전북 남원 제30호분에서 발견된 조개와 고둥 [사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다만 남원은 분지형 내륙 지역이다. 가장 가까운 해안(경남 사천)도 직선거리로 60㎞가량 떨어져있다. 연구소 측은 "해안 지역의 가야 고분에서 조개 더미가 발견된 일은 많지만 이런 깊은 내륙 분지에서 발견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뿔고둥은 서해안, 우럭조개는 남해안에서 주로 잡힌다"면서 "이 시기 남원 분지를 차지한 세력의 교역망이 매우 넓었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해안에서 내륙까지 어패류를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소금 덕분이다. 교역망은 주로 수로가 이용됐는데, 소금이 생산되면서 어패류를 장기간 저장하고 해안에서 내륙까지 운반하는 교역활동이 가능했다고 한다.

전북 남원에서 발굴된 제30호분 [사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전북 남원에서 발굴된 제30호분 [사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전북 남원에서 발굴된 제30호분의 초미금구 [사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전북 남원에서 발굴된 제30호분의 초미금구 [사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하지만 조개더미가 반드시 식재료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무덤에서는 5∼6세기 신라·가야 고분에서 많이 나오는 칼집 끝 장신구 ‘초미금구’가 발견됐다. 무덤의 주인공이 무사 계급에 속하는 지도층 인사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연구소 관계자는 "30호분은 이 일대에서 발견된 40여기의 가야시대 고분군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인 만큼 정치 엘리트의 무덤으로 보인다"면서 "항아리에 담긴 것으로 볼 때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조문품'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가야의 영역은 어느 정도였을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가야의 중심지는 경북 고령이다. 전북 남원까지는 거리가 꽤 떨어져있다. 그럼에도 이곳이 대가야의 영역일 것으로 추정하는 단서 중 하나는 무덤의 형태다. 봉분 내부를 작은 흙덩어리를 교차하며 다져 올렸는데, 경북 고령, 경남 함안 등의 가야 고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특징이다.
무덤에서 발견된 초미금구 역시 5~6세기 신라·가야지역 고분에서 많이 출토된다. 금이나 은으로 환두대도의 칼집을 장식하는 도구로써 무덤에 안장된 인사의 권위를 상징한다.

전북 남원에서 발굴된 제30호분 조성도 [사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전북 남원에서 발굴된 제30호분 조성도 [사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완주문화재연구소 측은 "5세기 들어 고구려의 남하가 본격화되면서 신라와 백제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국력을 쏟는 동안 대가야가 이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했을 것"이라며 "전북 남원은 대가야의 국력이 가장 강했을 때 최서단 영역에 해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