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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딸 삽화' 노렸나…'유령의결' 반발, 논란의 '언론재갈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389회국회 임시회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가 진행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389회국회 임시회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가 진행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 방에서 대안을 본 사람이 있나. 이건 ‘유령 의결’이다.”(이달곤 국민의힘 의원)

더불어민주당이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언론중재법을 강행 처리하자 야당에서 터져 나온 반발이다.

여야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법안의 각종 쟁점을 두고 토론을 벌였지만 내내 평행선만 달렸다. 회의 시작 7시간여만에 박정 소위원장이 “위원회 대안으로 의결하겠다”며 법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위원회 대안’의 구체적 내용은 공유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대안이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의결하나. 이건 무효다”(이달곤), “나중에 어쩌려고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하느냐”(최형두)고 항의했지만, 박 위원장이 이미 의사봉을 두드린 후였다. 출석 위원 6명 중 국민의힘 의원 2명을 제외한 4명(박정·김승원·유정주 민주당 의원,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찬성으로 법안은 그대로 소위 문턱을 넘었다.

박정 소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389회국회 임시회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박정 소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389회국회 임시회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회의 이후 박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대안은 미리 만들어놓는 게 아니라, 의결하는 순간 대안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이날의 의결 상황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안을 두고 의견이 갈릴 경우, 위원장이 대안 내용을 대략적으로 공유해 구두 합의를 이룬 뒤 의결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그런 절차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국회 관계자는 “수석전문위원이 대안을 만들어오거나 논의 과정에서 ‘이런 걸 대안에 녹이자’고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이런 식으로 소위에서 양당 합의를 이루지 않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원회가 의결한 사항에 의사국은 별도의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게 국회 의사국이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밝힌 입장이다.

28일에도 국민의힘은 “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을 ‘언론 검열 시대로의 회귀’로 규정하고, 절대 묵과하지 않을 것”(최형두 의원), “민주당의 ‘입법폭주’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려는 정치적 속내에 불과하다”(강민국 원내대변인)고 강력 반발했다. 반면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변화된 언론 환경에서 가짜뉴스로 인한 국민 피해를 구제하고, 공정한 언론 생태계 조성을 위한 개혁의 첫걸음”이라며 “앞으로도 미디어 바우처법, 신문법 등 개혁 입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소위에서 강행 처리된 법안에는 언론 자유를 제한할 우려가 큰 ‘독소조항’이 대거 포함됐다.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언론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정정보도를 해당 언론보도와 같은 시간·분량·크기로 보도 ▶열람차단·기사삭제 청구권 등이다.

민주당 '언론중재법' 주요 내용 및 전문가·야당 의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민주당 '언론중재법' 주요 내용 및 전문가·야당 의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언론의 고의·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법원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 대해선 세계에서 유례없는 과잉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 교수는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는 명예훼손 등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언론 자유를 위축시켜 우리 사회 전체 정보의 양을 크게 축소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손해배상액 하한선을 언론사 매출액의 1만분의 1로 정한 조항도 법리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매출액과 배상액 간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며 “매출액이 큰 회사가 무조건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데, ‘돈 많으니까 벌금 더 내라’는 논리가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허위 보도에 대한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할 수 있도록 신설된 조항도 문제다. 해당 조항은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경우’ 등 6가지 경우를 ‘언론사의 명백한 고의·중과실로 추정한다’는 조항인데, “정의가 모호해 권력의 입맛에 따른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최형두 의원)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사진·삽화·영상 등 시각자료와 기사 내용을 다르게 하거나,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시각자료를 사용해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라는 조문은 최근 조국 전 법무장관의 딸 일러스트를 사용해 논란이 된 사례를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교수는 “법 조문이 명확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조항이다. 예컨대 ‘시각자료와 기사 내용이 다른 경우’를 대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해당 조항이 “언론사에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을 넘긴 것”이라고 해석하며 “이런 식의 입법은 언론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정정보도를 정정 대상이 된 보도와 같은 시간·분량·크기로 해야 한다는 조항에 대해선 “정정보도 크기는 판결을 통해 결정할 문제지, 법으로 정하는 건 언론 고유의 편집권을 침해하는 것”(최준선 성균관대 법전원 교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인터넷 뉴스로 피해 입은 자가 언론사에 기사의 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어떤 조건, 방법으로 실현되는지 모호하다”(손영준 교수)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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