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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권한 美 체조여왕, 개인종합도 포기…그래도 박수 받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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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수가 없던 ‘체조 여왕’에게도 스스로의 중압감은 힘겨운 상대였다.

도쿄올림픽 6관왕이 기대됐던 시몬 바일스(24·미국)가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 경기 중에 기권한 데 이어 개인종합 결승도 출전 포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일스가 29일 열리는 개인종합에 출전하지 않는다고 28일 속보를 전했다. 8월 1∼3일 4개 종목별 결선에 출전하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몬 바일스(미국)가 27 일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에서 경기 도중 포기 의사를 내비쳤다. [ AFP=연합뉴스]

시몬 바일스(미국)가 27 일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에서 경기 도중 포기 의사를 내비쳤다. [ AFP=연합뉴스]

바일스는 지난 27일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단체전 결승에서 4개 종목 중 도마 한 종목만 뛰고 기권을 선언했다. 바일스가 빠진 미국 대표팀은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에 금메달을 내주고 은메달에 머물렀다.
바일스는 경기가 끝난 뒤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번 올림픽에서 정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면서 정신적 안정을 위해 물러났다고 밝혔다. 그는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 우리의 마음과 몸을 보호해야 한다. 선수도 인간이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스포츠에서 금기시한 정신건강을 수면 위로 떠올렸다”

27일 테니스 여자 단식 3회전에서 탈락 후 고개를 떨군 오사카 나오미. [신화통신=연합뉴스]

27일 테니스 여자 단식 3회전에서 탈락 후 고개를 떨군 오사카 나오미. [신화통신=연합뉴스]

그의 기권 소식에 “동료에 대한 결례”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미국 팬들과 언론은 오히려 격려를 쏟아내고 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땄던 전 미 체조선수 앨리 레이즈먼은 “바일스는 인간이다. 가끔 사람들은 그걸 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일스는 스포츠 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 광고, 기대, 성적 등 모든 일을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고 했고,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그는 스포츠가 선수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팬들은 “당신은 여전히 GOAT”라는 소셜미디어 해시태그로 그를 격려하고 있다. ‘G.O.A.T(Greatest Of All Time)’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뜻하는 말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바일스가 받아야할 것은 감사와 지지다. 여전히 GOAT″라고 트윗을 올렸다. [트위터 캡처]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바일스가 받아야할 것은 감사와 지지다. 여전히 GOAT″라고 트윗을 올렸다. [트위터 캡처]

바일스에 앞서 여자 테니스 세계 랭킹 2위인 오사카 나오미(24·일본)도 여자 단식 16강 전에서 탈락하는 이변을 보였다.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최종 점화주자로 이목을 집중시킨 그는 지난 5월 프랑스오픈 도중 정신 건강을 이유로 기권한 바 있다. 당시 “2018년 US오픈 이후 우울증을 앓아왔다”는 사실과 함께 “선수도 결국은 인간”이라고 토로해 선수의 정신 건강이란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만든 ‘가장 이상한 올림픽’ 

미 현지 언론은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코로나19 팬데믹’를 지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쿄올림픽이 사상 처음으로 팬데믹 기간에 열리면서 근대 이후 ‘가장 이상한 올림픽’이 됐다”며 “바일스와 오사카는 이번 올림픽에 대한 선수들의 부담감을 대표한다”고 보도했다.

WSJ는 올림픽 개최가 1년 늦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수들에게 심적 압박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에 전염병을 피해 이어진 1년간의 고립 훈련으로 이미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극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지난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불꽃이 터지고 있다. 이번 개막식은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불꽃이 터지고 있다. 이번 개막식은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또 경기 방식과 대회 운영 방식 등 팬데믹 상황으로 바뀐 경기 환경에도 주목했다. 이전과 다른 규칙은 선수들의 기량을 제한했고, 특히 무관중 경기가 선수들에게 가장 큰 압박이 됐다고 전했다. 일례로 바일스는 경기 전 관중석에 앉아있는 부모님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고 WSJ은 전했다. 그러면서 “무관중 환경은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해야 할 개막식과 경기장을 모두 ‘공공 전시회’로 전락시켰다”고 했다.

이 밖에도 우사인 볼트·마이클 펠프스의 뒤를 잇는 최고의 스타가 탄생하길 바라는 기대감과 낮은 개막식 시청률을 만회하려는 미디어의 과도한 홍보 경쟁이 선수들을 혹독한 환경으로 몰아넣었다고 WSJ은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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