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 목숨 앗아간 그날의 붕괴, 경찰이 밝힌 원인 어이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8 15:41

업데이트 2021.07.28 15:58

지난달 9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건물 붕괴 참사에 대해 광주경찰청 수사본부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28일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9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건물 붕괴 참사에 대해 광주경찰청 수사본부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28일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국과수 "횡하중 취약한 건물, 불법 철거로 붕괴"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사고의 원인은 안전불감증에 기반한 무리한 철거 방법 선택, 감리·원청 및 하도급업체 안전 관리자들의 주의의무 위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직후 제기된 다단계식 불법 하도급과 공사 단가 하락에 따른 부실 공사, 해체 계획을 무시한 무리한 철거까지 총체적 부실이 얽히고설켜 건물 붕괴로 이어졌다는 취지다.

광주경찰청, 중간 수사 결과 발표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28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5층짜리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붕괴 원인은 불법 철거로 불안정해진 건물에 계속해서 옆으로 미는 힘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횡하중(가로로 미는 힘)'에 취약한 건물에서 해체 계획을 무시한 무리한 철거가 이뤄지다 보니 평형이 깨져 철거를 위해 쌓은 성토물(흙)과 건물 1층 바닥(슬래브) 붕괴로 이어져 한쪽으로 넘어졌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28일 오전 광주경찰청에서 조영일 광주경찰청 형사과장이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사고의 원인 분석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오전 광주경찰청에서 조영일 광주경찰청 형사과장이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사고의 원인 분석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업무상과실 치사상 9명 입건…5명 구속

국과수는 철거 과정의 문제점을 크게 4가지로 분석했다. ①건물 외벽 강도와 무관한 철거 작업 진행 ②하층부 일부 철거 후 건물 내부 성토체 조성 ③횡하중에 취약한 'ㄷ'자 형태로 철거 진행 ④1층 바닥 하중 증가 및 지하 보강 조치 미실시 등이다. 해체계획서상 철거업체는 건물 5층 최상층부터 철거를 시작해 하향식으로 해체 작업을 해야 하지만, 철거 순서를 어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공사와 직접 관련이 있는 감리와 원청회사, 하도급업체, 불법 재하도급업체 관계자 등 9명을 업무상과실 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하고 이들 중 시공사 현장소장과 일반철거 감리자, 철거업체 대표 등 5명을 구속했다.

조사 결과 감리자는 단 한 차례도 현장 감리를 실시하지 않는 등 감리자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원청회사와 하도급업체 현장 관리자들은 시공업체가 해체계획서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철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또 불법으로 재하도급을 받은 시공업체 대표는 해체계획서를 지키지 않고 철거 공사를 진행했다.

국과수가 분석한 붕괴 건물에 대한 철거 과정의 문제점. 사진 광주경찰청

국과수가 분석한 붕괴 건물에 대한 철거 과정의 문제점. 사진 광주경찰청

"계약하고 수익만 챙기는 '지분 따먹기' 문제"

경찰은 부정한 청탁을 받고 감리를 선정한 동구청 직원과 재하도급 금지 규정을 위반한 하도급업체 대표, 원청업체 안전부장·공무부장 등 4명은 불구속 송치하기로 했다. 아울러 원청업체에 대해서는 불법 재하도급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관할 행정관청에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 사실을 통보했다.

경찰은 공사의 공동 수급자로 계약을 체결하고도 실제 공사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수익 지분만 챙기는 이른바 '지분 따먹기'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관련 기관에 제도 개선을 건의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분 따먹기는 필연적으로 입찰 방해와 불법 하도급 등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결국 공사 단가 하락에 따른 부실 공사로 이어져 안전 사고 위험을 키우기 때문에 형사처벌과 과징금, 입찰 자격 제한 등 처벌 법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무리한 철거 공사가 진행된 근본적 원인이 ▶계약 체결 과정에서의 불법적인 금품 수수 ▶실제 공사에는 참여하지 않고 지분만 챙기는 입찰 담합 행위 ▶다단계식 불법 재하도급으로 인한 비상식적인 공사 대금 산정 등에 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업체 선정과 관련된 조합 관계자 4명, 브로커 2명, 공사 수주업체 관계자 8명 등 모두 14명을 업무상 배임과 뇌물 등 혐의로 입건했다.

지난달 9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공사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9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주택재개발 공사 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경찰 "공사 수주 과정 수억원대 금품 오가" 

경찰은 공사 수주업체와 브로커들 사이에 금품이 오가고, 입찰 담합 등 불법 행위가 이루어진 정황도 확인했다. 이 중 업체 선정 알선 대가로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브로커 1명을 구속했고, 수사 시작 직전 미국으로 도피한 문흥식 전 5·18구속부상자회 회장 등 13명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 중이다.

박정보 광주경찰청 수사본부장은 "그동안 중점을 뒀던 붕괴 원인과 책임자 규명 수사가 일단락된 만큼 재개발조합 비리 등 이번 사고와 관련된 여러 혐의에 대해 한 점 의혹이 남지 않도록 수사력을 집중해 철저히 수사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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