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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ㆍ허구 뒤섞는 손원정표 연극 "비어있는 이야기에 끌린다"

중앙일보

입력

연극 '괴물 B'의 연습실에서 손원정 연출. [사진 손원정 제공]

연극 '괴물 B'의 연습실에서 손원정 연출. [사진 손원정 제공]

연출가 손원정(46)의 연극에서 현실과 허구는 뒤섞이곤 한다. 연출가로 데뷔했던 2017년 ‘맨 끝줄 소년’은 주인공 소년이 쓰는 글이 사실인지에 대해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2018년 ‘애들러와 깁’에서는 다른 배우의 삶을 욕망하는 한 배우를 중심으로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대해 질문했다. 지난해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도 주인공이 쓰는 편지가 어디까지 진실인지에 대한 의도적 혼란이 있었다.

2017년 연출 데뷔…다음 달 1일까지 '괴물 B' 공연 #『아몬드』손원평의 언니 "소꿉장난할 때부터 달랐다"

그런 그가 산업 재해에 대한 비극적 환상으로 돌아왔다. 다음 달 1일까지 공연하는 ‘괴물 B’다. B의 신체 각 부분은 타인의 것으로 돼있다. 산업재해 노동자들의 팔과 다리, 폐와 간이 이어붙여진 존재다. B가 신체의 주인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연극이 진행된다.

손원정은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어떤 방식으로 산업재해 문제를 대면할까에 대한 질문이다”라며 “직접적이고 통렬한 비판의 연극은 아니고, 고통의 외침을 한번이라도 들려주려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다분히 직접설적인 비판이 될 수 있었지만 손원정 연출 특유의 가상과 현실의 무경계로 독특한 연극성을 갖췄다.

그는 “꽉 차있는 이야기보다는 비어있는 것, 이야기 자체보다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알게된 후 연극학을 전공했다.

희곡의 해석, 연극 무대의 방향을 결정하는 드라마터그로 활동하다가 2017년 연출가로 계획에 없이 데뷔하게 됐다. 함께 하던 남편 김동현(1965~2016) 연출가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후였다. 손원정의 연출 데뷔작 ‘맨 끝줄 소년’은 김동현의 유작이다. 손원정은 김동현이 창단한 극단 ‘코끼리 만보’와 함께 연출을 계속해오고 있다. “지금도 연출할 때면 그의 생각이 많이 난다. 시각ㆍ청각이 탁월하고 섬세한 연출이었다. 무엇보다 연극을 정말 재미있어했다. 내가 왜 연출을 하고 있나 생각해볼 때가 많은데, 어쩌면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제일 재미있는 놀이인 연출을 던져주고 간게 아닌가 싶다.”

손원정은 손학규(74)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딸이고, 베스트셀러『아몬드』의 작가이자 영화 감독인 손원평(42)의 언니다. 그는 동생에 대해 “어려서부터 필력이 기가 막혔다”고 했다. “같이 소꿉 놀이를 할 때 희한하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더라. 글 쓰는 사람이 되리라 믿었다. 반면에 나는 분석적이고, 틈이 있는 걸 못 견뎠다. 비어있는 이야기를 메꾸는 데 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연극 '괴물B'에서 산업재해 피해자 몸의 콜라쥬인 B(오른쪽). [사진 손원정 제공]

연극 '괴물B'에서 산업재해 피해자 몸의 콜라쥬인 B(오른쪽). [사진 손원정 제공]

하지만 이제 그는 “꽉 찬 연극도 풍요롭고 메시지가 크지만, 여백이 남고 질문이 남는 연극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이 끝나고도 모호하고 새로운 세계를 소개할 작정이다. “번역해 무대에 올릴 희곡을 몇편 보고 있다. 아르헨티나 작품인데, 남미 희곡이 가지고 있는 이상한 문법이 아름답다. 남미 문학의 우화성 덕분에 우리의 현재 질문과 만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도 모르게 독특한 것에 끌리는 듯하다”며 웃었다. 한현주 작가가 썼고 이영주, 오대석 등이 출연하는‘괴물 B’는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동숭동 알과핵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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