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인생2막에 가짜 부자 아닌 진짜 부자로 살아가기

중앙일보

입력 2021.07.28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76)

해녀 출신 할머니 몇 분이 지나가다가 체험공방에 들렀다. 이제 공방이 동네 어른의 휴게소가 되어서인지 가끔 지나가다 들려 세상사를 펼쳐 놓는다. 이젠 물질도 힘들어 못 하고 이렇게 더운 날에는 밭일도 못 한다는 얘기가 거반이다.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는 얘기다. 해녀 할망이 돌아간 후 넓은 공방에 앉아 책을 읽는다. 문득 ‘세상에 나같이 창의력 넘치는 사무실 갖고 있는 사람 나와 보라고 해’라는 생각을 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인생 후반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휴식을 취하며 읽은 마이클 센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의 한 페이지를 인용해 본다. “고통은 단지 봉급 수준의 정체(노후소득의 감소내지는 전무함)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오랜 두려움, 즉 내가 고물이 되어 버린다는 두려움의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자신들의 기술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세상에 살고 있다.”

1968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을 기다리던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실직은(은퇴로 봐도 될 듯)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뜻이지요. 일이 없는 사람은 동료 시민에게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것은 랠프 엘리슨이 쓴 『투명인간』이 현실화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노인교실의 독거노인 사회활동지원프로그램에서 실습지도하는 필자. 이 프로그램은 봉사가 수입을 창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진 한익종]

노인교실의 독거노인 사회활동지원프로그램에서 실습지도하는 필자. 이 프로그램은 봉사가 수입을 창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진 한익종]

세상에나, 60년 전에 벌써 은퇴 후 인생 후반부를 사는 사람의 고통을 꿰뚫어 봤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니…. 김형석 교수께서는 100세를 살아보니 60세에서 70대까지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에 패러디해 보자. 직장에서 퇴직한 후 10년을 보낸, 60세를 넘어서고 보니 이제부터의 내 삶이 가장 행복할 것 같다. 함께 산책에 나선 아내가 내게 말을 건넨다. “여보, 과거에도 행복했지만 제주에 온 이후의 날들이 더 행복한 것 같아.” 그럼, 남편이 누군데.

그렇다면 은퇴 후 인생 후반부가 어떤 모습이면 정말 행복한 삶이 될까? 흔히들 표현하길 젊어서 열심히 돈을 벌어 인생 후반부 경제적 부를 누리며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하면서 과거를 추억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노후의 모습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아쉽게도 틀렸다. 그러기에는 남은 생이 너무 길고, 과거에 그리던 것 하기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에 부치고, 나아가서는 행복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각주구검하기에도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렇다면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는 우리의 행복추구권은 도로아미타불이 됐다는 말인가. 아니다. 길은 아직 열려 있다. 바로 함께하는 자세로 스스로의 자존감과 성취감을 얻는 방법이 있다.

아내가 60세 때 환갑기념으로 보건복지사,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찬성한 일이 기억난다. “그래 인생 후반부는 돈이 아니라 보람과 성취를 통해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 중요해.” 아내는 제주 어촌마을의 조그만 요양보호시설에 요양보호사로 출근한다. 그 만족감과 자긍심이란….

체험공방을 찾은 선생님들이 봉사 프로그램의 지도 방법을 나누고 있다.

체험공방을 찾은 선생님들이 봉사 프로그램의 지도 방법을 나누고 있다.

타인에게 기여하고 봉사한다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욕심을 내려놓았다는 것이고, 그런 삶의 태도에는 불만과 모자람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아내의 직업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직업이 아니라 이런 직업을 망라한 직업군과 직업관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바로 내가 제창한 ‘발룬티코노미스트’이다. 봉사와 경제활동을 아우르는 복합어, 발룬티코노미스트적 삶. 나는 2년 전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에 내려와 발룬티코노미스트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선견지명이 있어서인지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직전 해에, 앞으로 단체여행업은 도태될 것 같다는 예감에 여행업을 조금씩 줄여가면서 환경과 봉사, 창작을 아우르는 일을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제주 정착을 결행했다. 내 생각은 바로 발룬티코노미스트적 활동으로 나타났고, 그 이후 요양기관 어르신들 취미교실, 독거노인 사회활동지원, 어린이 환경·봉사·창작교실 운영 등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게 되더니 이젠 제법 많은 곳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온다. 틈틈이 그리고 만든 작품도 팔리게 됐고.

‘그까짓 돈 벌려고?’라고 얕잡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생 후반부는 자기만을 위한 욕심을 내려놓고, 사회적 필요성과 자존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가짜 부자로 남지 말고 진짜 부자가 돼 보자. 그 방법은 ‘함께 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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