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이제 만마전인가? 끝내 행성내전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1.07.28 00:45

업데이트 2021.07.2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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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천년만의 대홍수와 초유의 광대역 산불, 타는듯한 가뭄, 숨 막히는 미세먼지와 폭염, 그리고 폭설과 한파. 호주·아마존·아프리카·북미·중국·유럽… 온 지구가 이상 기후로 중병을 앓고 있다. 게다가 대감염병이 온 인류를 휩쓸고 있다. 대지의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다. 오래된 수마(水魔)·화마(火魔)·병마(病魔)에 이제 진마(塵魔)·염마(炎魔)·한마(旱魔/寒魔)까지 더해지는 상황이다.

인류는 지금 만마전 초기상황 진입
인류 전체로 재앙·질병 직접 대면
행성시민됨 자각, 자연과 공생해야
행성내전·인류세의 자멸 극복 가능

일찍이 존 밀턴은 『실낙원』에서 갖가지 악귀가 모인 곳을 만마전(萬魔殿·pandemonium)이라고 부른 바 있다. 모든(pan) 마성·마귀(demon)들이 모인 장소를 말한다. 훗날 존 마틴은 밀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마전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온갖 (초)자연적·마성적 현상에 직면한 오늘의 지구는 마치 낙원을 상실한 뒤의 만마전처럼 피할 곳 없는 아수라장(阿修羅場)이나 라그나로크 직전의 모습이다.

만마전은 만신전(pantheon)의 한 은유지만 인간이 누리던 낙원(으로서의 자연)을 잃은 뒤의 실상에 대한 묵시록적 경고임은 물론이다. 종교와 철학과 문학에서는 불가피한 마성적 힘(daimon/demon)과 사악한 악마(devil)를 구분하나,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초월적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 일반 인류에게 둘은 차이가 없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자연에게 형벌을 가하는 반신적(半神的)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유명한 크세르크세스다. 그는 정복을 위해 헬레스폰트 해협에 다리를 놓아 아시아와 유럽을 이으려다가 강풍이 다리를 부숴버리자, 노발대발하며 해협에 태형(笞刑) 300대를 치고 바다에 족쇄를 한 쌍 채우라고 명령했다. 형벌을 내리는 대왕을 당연시하며 부하는 말한다. “대왕께서는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너를 건너가실 것이다.” 인간오만의 극치다.

극단적인 자연 개발과 과잉 소비와 에너지 사용을 포함해 근대 이후 인류는 장기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자연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형벌을 자연에게 계속 가해왔다. 그리하여 전체 인류 단위로서의 인간들은 자연조차 지배하고 초월하는 초인간적인, 즉 초자연적이며 신적인 존재를 상념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분명 신과 자연 사이에 존재한다. 인간은 신이나 자연이 결코 아니며, 신·신성성과 자연·자연성에 근접할 수도 없다. 인간성이 신성성·초월성과 동물성 사이에 존재한다는 점은 신을 믿지 않더라도 불변의 진리다.

둘로 다가가거나 둘을 지배하려 할 경우 인간은 외려 오만과 예종의 극단적인 상황에 놓일 뿐이다. 근대 이래 이성과 과학과 기술의 절대 능력을 믿은 인간들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최고지배자(homo dominatus), 또는 인간종을 넘어 아예 반신이나 신종(神種·god species), 나아가 신인(神人·homo deus)이 되려하였으나, 끝내 같은 인류 전체로서는 오히려 점점 더 자연 현상과 기계와 질병과 직접 마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류세의 도래라는 가장 혹독한 역설이다. 선현들이 고래로 ‘인간으로서의 의무’ 못지않게 ‘인류로서의 소명’을 강조한 까닭이다.

플라톤을 포함해 앞선 지혜들은 내전(stasis)과 전쟁(polemos)을 구별해왔다. 전자가 종족, 국가 또는 시민, 문명 내부의 투쟁을 말한다면, 후자는 종족 간, 국가 간, 시민 간, 문명 간 충돌을 의미했다. 그런데 그리스 비극의 한 창시자 아이스킬로스는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의 최후 장면을 통하여 누천년 전에 오늘의 지구상황을 미리 내다본 듯 전쟁과 내전에 대해 놀라운 통합시각을 요구하고 있다.

전령(傳令)의 신 헤르메스는 재앙의 사냥감이 되더라도 운명도 신도 탓하지 말란다. “그것은 자업자득이니까요. 그대들은 느닷없이 그런 봉변을 당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자신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피할 길 없는 재앙의 그물에 걸려든 것이니까요.” 끝내 프로메테우스는 지진·천둥·벼락·회오리·먼지와 온갖 바람들이 “서로 격렬한 내전을 벌이는구나… 나를 향해 다가오는구나”고 탄식한다. 자연(현상)끼리 내전을 벌이며 인간에게 육박하는 재앙 상황이다.

오늘날이 우리 인류가 자초한 만마전 초입이라면 이제 인류는 전혀 새로운 전쟁·내전과 평안·평화 관념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인류는 같은 행성구성원으로서 자연·기후·동물·식물·바이러스와 같은 다른 행성구성원들과, 전쟁이 아니라 내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즉 행성시민들 사이의 행성내전인 것이다. 그들을 행성거주민이자 행성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행성내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행성평화도 오지 않을 것이다. 행성평화는 세계평화와 인간평화의 필수 선결요건이다.

지금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응급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인류는 자멸할 상황이다. 지구위생과 행성위생이 파괴되면 인간위생도 똑같이 위험하다. 인류는 행성시민이 되지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다면 끝내 이 행성으로부터 추방되고 말 것이다. 행성시민의식과 행성시민주의가 필수다. 우리 인류여! 어떻게든 만마전만은 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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