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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권력자 가족이었어도 이랬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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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원의 국내 이송을 위해 출국한 특수임무단이 지난 21일 문무대왕함 출항 전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한 청해부대원의 국내 이송을 위해 출국한 특수임무단이 지난 21일 문무대왕함 출항 전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뉴스1]

이렇게 엽기적인 사건들이 많았던 적이 있었나. 과거에는 물리적인 사건들이 엽기적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가 그랬다. 요즘 이에 못지않은 사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 다리나 건물 붕괴는 아니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극심한 불안에 노출되고 있다.

위험에 국민 방치한 사건 잇따라 #편 가르기에 빠져 국민 보호 소홀 #국민 불안 이렇게 컸던 적 있었나

청해부대 장병들의 집단 코로나 확진 사건은 얼마나 엽기적인가. 아프리카까지 진출한 전투부대 대원들에게 백신 접종 계획조차 없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40도를 넘는 고열에도 해열제 두 알을 줬다고 한다. 결국 승조원의 90%가 확진자가 됐다. 전투라도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와중에 청와대 대변인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청해부대원 귀국을 위해 비행기 2대 급파를 지시했다”고 용비어천가를 띄웠다. 대한민국 청와대에 무능한 참모들만 모여 있다는 고백을 온 세상에 퍼뜨리는 순간이었다.

동부구치소 코로나 집단감염도 엽기적이다. 죗값을 치르는 사람들이지만 엄연히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밀집 공간에서 감염 위험이 더 높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아무도 챙기지 않았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 내쫓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자. 청해부대나 동부구치소에 대통령이나 여당 대표 또는 국방부ㆍ법무부 장관 자녀가 있었다면 이렇게 방치했을까. 그리고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자화자찬만 하고 있을까.

이 정권 책임자들은 이런 의문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 강행 같은 경제 정책이 줄줄이 실패해서 느끼는 불안과는 차원이 다르다. 먹고사는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의견이 갈리고 정책 수단이 얼마든지 달라질 여지가 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는 차원이 다르다. 무조건 보호돼야 하는 게 국민의 안전이다.

이런 점에서 국민은 불안하다. 지난 1년6개월 넘게 방역 자랑에 여념이 없었지만, 국민은 당장 백신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또 현 정부에서 공무원을 대폭 늘렸는데도 국민 보호는 오히려 후퇴했다. 그 징후는 청해부대와 동부구치소가 전부가 아니다. 단순 사고 같지만, 경기도 남양주에서 마을 길을 걷던 중년 여성이 고삐 풀린 개에 물려 사망한 사건은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 여파로 나 홀로 산책이나 등산이 늘었지만, 고삐 풀린 개라도 만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개가 사람을 다치게 할 우려가 큰 만큼 안전장치 강화가 필요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팔짱을 끼고 있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 고독사가 늘어나고, 송파 세 모녀 사건과 유사한 사례도 꼬리를 물고 있다. 하지만 적절한 보호장치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정치인과 관료 사회의 역할 붕괴 아닐까. 5년마다 대선을 치르는 1987년 체제 이후 집권세력은 국민보다는 진영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다. 관료 사회도 출세를 위해 눈치만 보는 해바라기 집단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선거용 재정이 남발되면서 해마다 100조원씩 나랏빚을 낼 정도로 국가 재정이 어려워졌다. 그래도 더불어민주당은 재난지원금 퍼주기에 열을 올린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는 소홀하면서 바닥을 드러낸 재정 퍼주기는 과잉이라고 할 만큼 열심이다. 부동산도 과잉 규제가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경우다. 굵은 대책만 25차례 연속 쏟아내고 공시가격을 4년 연속 끌어올렸다. 그 결과 집값이 폭등해 국민 상당수는 졸지에 벼락 거지가 되고, 무주택 서민은 치솟은 전셋값에 절망한다.

대법원 유죄 판결을 통해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조작된 민주주의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 역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험에 빠뜨린 엽기적인 사건이다. 결국 내 편, 네 편으로 나누는 정치는 모두를 위태롭게 한다. 군인도, 재소자도, 개에 물린 여성도 모두 국민이다. 현 정권 책임자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있는가. 거울 앞에서 자문해 보기 바란다.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