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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살았군" "담배 작작 피우지" 암환자에겐 비수같은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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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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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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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성 유방암 환자 A씨는 경리 일에다 사무실의 궂은일을 다한다. 암 치료는 끝났지만 림프 부종(붓는 증상)이 있어 병원에 다닌다. 일을 하다 보면 금방 피로해진다. 재발할지 몰라 항상 걱정한다. 발병 전에 손쉽게 하던 엑셀 수식을 기억하지 못해 인터넷을 뒤진다. 이런 일이 쌓이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남편도 치료를 돕느라 휴직한 상태라 몇 달째 소득이 없다. 병원비는 얼마 안 들지만, 교통비·식대 등이 부담스럽다. 다시 일하더라도 예전처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사람 대하는 것도 겁난다.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암 생존자 200만 시대의 편견 #24% 실직, 21% 회사 차별 경험 #유방암 환자의 이혼율은 5.2배 #이낙연 ‘사회복귀 국가책임’ 공약

다른 30대 유방암 환자 B씨는 한쪽 유방을 부분 절제했다. 의료진이 성형 수술(유방재건 수술)을 권한다. 그녀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 좀 부담된다”고 말한다. 유방을 다 절제한 환자의 재건 수술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부분 절제 환자는 건보가 안 된다. 상급종합병원 기준으로 1000만~2000만원이 든다.

암을 앓고 있는 사람, 즉 암 유병자가 200만명을 넘었다. 2018년 기준 암 유병자가 200만 5520명이다. 7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됐다. 대부분이 암 생존자다. 김영애 중앙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부센터장은 “암 진단 후 수술·항암 등의 적극적 치료가 끝나면 암 생존자로 본다”며 “치료기술 발전, 조기검진 증가 등으로 암 생존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센터장은 “암 생존자는 주변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편견에 시달리는데, 잘 관리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암 생존자들이 6월 1~4일(암 생존자 주간) 국립 대운산 치유의 숲에서 열린 산림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복식호흡을 배우고 있다. [사진 울산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암 생존자들이 6월 1~4일(암 생존자 주간) 국립 대운산 치유의 숲에서 열린 산림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복식호흡을 배우고 있다. [사진 울산암생존자통합지지센터]

이런 상황을 반영해 암 생존자 지원이 대선 공약으로 등장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일 유방암을 비롯해 모든 암을 경험한 여성의 일상 회복을 돕는 ‘사회복귀 국가책임제’를 공약했다. 이 전 대표는 “유방암 경험자의 사회 복귀율이 33%로, 80%를 웃도는 유럽보다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는 “중증 질병 경험자들이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유방 재건수술에 급여(건보) 적용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암 생존자는 병 자체보다 편견에 더 아파한다. 8살에 횡문근육종이라는 소아암을, 2년 전엔 직장암 3기를 진단받은 신현학(24)씨는 암 투병 과정을 유튜브(직장 없는 남자)로 알리고 있다. 그는 “‘젊은데 얼마나 건강관리를 못 했으면,막 살았으면 암에 걸리냐’라는 말을 들을 때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한다. 신씨는 “‘요즘 암 별것 아니다’라며 위로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고 되레 화가 난다. 나는 그 별것 아닌 것에 사활을 걸고 싸워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교수는 “주변에서 ‘왜 암에 걸렸대? 착하게 살았는데’라고 안타까워하는데, 그러면 나쁘게 살아서 암에 걸렸다는 프레임을 씌우게 된다”며 “폐암에 걸리면 ‘담배 작작 피우지 그랬어. 그럴 줄 알았다’라고 한다거나 ‘쟤 엄마 암이니 같이 놀지 마’라고 편견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암 생존자 7년 만에 두 배로 늘어

암 생존자 7년 만에 두 배로 늘어

유방암 환자의 이혼율이 월등히 높다. 조 교수는 “암 환자 1000명당 이혼 건수가 11건이다. 일반인은 2.1건”이라고 지적한다. 40대 후반의 여성 유방암 환자는 2019년 요양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큰 병원을 오가며 수술·항암치료를 했다. 그때 남편이 바람을 피운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남편이 병원에 자주 와서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20대 후반의 남성 혈액암 환자는 항암치료를 받고 복직했으나 부서가 바뀌면서 적응에 애를 먹다가 퇴사했다. 이번에는 여자 친구와 불화가 생겼다. 그녀는 결혼을 약속하며 투병을 도왔다. 그러나 구직 활동이 길어지면서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그는 “지금 상황에선 결혼을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한다.

가정에서도 흔들린다. 삼성서울병원·화순전남대병원이 최근 암 생존자 433명을 인터뷰했다. 40대 폐암 환자 C씨는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받았다. 아내가 C씨를 생각해서 “쉬면서 아기를 보는 게 어떠냐”며 역할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C씨는 “점점 돈이 사라져가는 게 보인다. 가장으로서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433명 중 104명(24%)이 암 진단 후 직장을 잃었고, 20.7%는 고용주나 동료에게서 차별을 경험했다. 국립암센터가 지난해 암과 무관한 30세 이상 1234명을 설문조사 했더니 27.1%가 암 생존자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할 것 같다고 답했다. 31.5%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고, 45.7%는 암 환자 집안 자녀와 결혼을 피하고 싶다고 했다.

암 생존자 지원 정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전국 13곳에 통합지지센터가 심리지원, 운동법 지도, 영양 관리 등을 담당한다. 센터당 예산이 2억원에 불과하다. 김영애 부센터장은 “미국처럼 ‘암 생존자의 날’을 만들어 인식 개선에 나서고, 보건소나 지역사회에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주희 교수는 “암 환자가 직장에서 차별받지 않게 보장해야 한다. 병가만으로 암 치료를 받기에는 기간이 짧다. 치료기간을 유급휴가로 보장하고, 탄력근무제를 지원하는 게 좋다”며 “암 환자를 임신부처럼 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