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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청구서’ 회피는 정답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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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정훈
장정훈 기자 중앙일보 팀장
장정훈 산업1팀장

장정훈 산업1팀장

올여름 독일과 베네룩스 3국에선 200년 만의 홍수로 200명이 넘게 사망했다. 스위스 고산 지대에선 빙하가 녹아내려 난데없이 생긴 빙하호로 주거지가 침수됐다고 한다. 지난겨울 미국에선 따뜻하던 텍사스가 갑자기 영하로 떨어져 눈과 우박이 내렸고, 북쪽은 이상 고온으로 자연 산불이 발생해 지구촌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기상 재해의 주범으로 꼽히는 지구온난화를 막겠다며 탄소국경세 도입 방침을 내놨다. 한마디로 EU나 미국보다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만든 제품을 수출할 때는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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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나 미국이 아직 개념도 낯선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상재해나 이상기온을 보면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더했을 때 0(중립)이 된다는 의미의 탄소 중립은 전 지구적 과제가 됐다. 하지만 탄소 국경세 그 이면에는 기후변화를 빌미로 새로운 관세를 매겨 추가 세원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걸 무시할 수 없다. EU는 2026년부터 철강·알루미늄·비료·시멘트 등에 탄소국경세를 적용하면 한 해 140억 유로(약 19조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 역시 내년부터 탄소국경세를 시행할 경우 최대 160억 달러(약 18조 4320억원)의 세수가 늘어난다. 탄소 국경세가 새로운 무역장벽이란 것도 부정할 수 없다. EU나 미국은 녹색 경제라는 화두를 선점한 채 신흥국으로 넘어갔던 제조업의 헤게모니를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간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서 선진국 시장을 자유롭게 공략하며 경제발전을 이뤄왔다. 하지만 EU나 미국은 이제 자국 내 산업을 보호해 제조업의 패권을 되찾겠다며 무역 시장의 게임의 룰을 바꾸려 하는 것이다.

결국 EU나 미국이 도입하겠다는 탄소 국경세는 자유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겐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전경련은 EU가 던진 탄소 청구서에 맞서 한국을 탄소국경세 적용에서 제외해달라는 건의 서한을 EU 집행위원장에게 보냈다. EU에 지금처럼 수출하려면 탄소국경세로 한 해 1조200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할 판인 수출기업의 다급한 상황을 보여준다.

탄소 중립은 이제 기업만의 과제도 아니고 정부가 목표만 내건다고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은 그린에너지를 도입해 탄소 감축을 위한 체질 전환을 서둘러야 하고, 정부는 탈원전 정책 재고를 포함해 다양한 인센티브와 장기적인 정책 지원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