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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지사지(歷知思志)

홍길동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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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유성운 문화팀 기자

『홍길동전』은 허균이 쓴 최초의 한글소설인가. 그동안 학교에서 배워온 것과 달리 최근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다.

일단 『홍길동전』의 한글 원본이 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8세기 이후 나온 한글본이 발견되곤 하지만 한문으로 쓰인 『홍길동전』을 이 무렵에 한글로 옮겨적은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18세기 들어 출판시장이 발달하면서 영리를 목적으로 만들어 민간에 대여하는 방각본(坊刊本)이 유행하자 『홍길동전』도 대중에게 읽히기 쉬운 한글로 재구성됐다는 것이다.

역지사지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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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논쟁적인 이슈는 저자가 과연 허균이냐는 점이다. 『홍길동전』에는 17세기 후반 인물인 장길산이 등장하고 선혜청이라는 관청도 허균 사후에 자리를 잡았다는 주장이 있다. 이식이 쓴 『택당집』에 ‘허균이 『홍길동전』을 썼다’는 내용이 등장한다는 반론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홍길동전』과는 다른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는 재반론도 있다. 무엇보다 신분 타파를 내세우며 서자 출신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과감한 내용을 17세기 초 당대에 이름난 학자였던 허균이 과연 쓸 수 있었겠냐는 의구심도 자리 잡고 있다. 그만큼 『홍길동전』엔 진보적 시각이 담겨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는 한탄은 적서 차별이라는 전근대적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요즘 여당은 대선 후보 선출을 앞두고 적장자 논쟁이 한창이다. 누가 친노·친문의 적자인지를 놓고 다투고 있다. 그러고 보면 역시 고전은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이 있다. 21세기에도 적자 타령을 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