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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경수와 여권의 사법 불복, 유감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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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26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재수감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26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재수감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그제 창원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경남 도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퇴진에 이어 여당 광역단체장의 범죄로 인해 또 한번 지역 주민이 피해를 보게 됐다.

현 정부 임명 대법관 비난하며 여론전 #대선 후보들도 사법부 불신 조장 나서

김 전 지사의 범죄가 2017년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벌어졌다는 점에서 청와대와 여당은 백번 고개를 숙여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김 전 지사는 그제 수감 직전 “사법부에서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며 대법원 확정판결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여권에선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난과 불복 발언이 끊이지 않는다. “사법부가 드루킹 진술만 믿고 유죄를 때렸는데 판결에 너무 문제가 많다”는 김두관 의원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특히 포털사이트에서 댓글 공작이 한창 진행될 무렵 이를 폭로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친여 인사들이 뜻밖의 실체가 드러나자 180도 돌변해 법원을 공격한다. 방송에 나와 매크로를 이용한 여론 조작을 고발하고 나섰던 주인공은 김어준씨다. 여기에 호응해 수사기관이 나서라고 촉구한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다. 그들의 요구대로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피의자가 김 전 지사다. 장기간 재판을 거쳐 1심과 2, 3심 모두 유죄 판결이 나왔다.

물론 여당에서 고발할 당시엔 야당과 지지자들이 걸려들리라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허익범 특별검사의 수사 결과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법 당국을 비난하는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 김어준씨는 유튜브 방송에서 대법원을 향해 욕설까지 했다. 이번 판결을 내린 대법관 네 명 중 이동원·민유숙·천대엽 대법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청했고, 조재연 대법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제청했다. 이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가지 않고 소부에서 결론이 난 것은 대법관 네 명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음을 의미한다. 이런데도 대법원을 못 믿겠다며 여론을 부추긴다.

개탄스러운 움직임에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등 대통령 후보까지 가세하는 분위기는 더 염려스럽다. 헌법의 수호자를 자임한 사람들이 정치적 유불리에 매몰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수사기관에 대한 압력도 마찬가지다. 현 정권이 야당과의 합의를 깨고 법안을 강행 처리해 탄생시킨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다. 공수처가 어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소환조사한 것을 두고서도 비난한다.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여권의 주요 인사들이 눈앞의 이해관계만 계산해 법원과 수사기관을 폄훼하는 게 타당한가. 현 대법원의 신뢰가 무너지면 정권의 위상도 함께 흔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