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조 사상 최대 ‘빚투 레이스’…대선 테마주 가장 뜨겁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2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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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회사원 이모(31)씨는 최근 증권사에서 2000만원을 빌려(신용융자) 반도체 관련 주식인 H사에 투자했다. 그는 “1000만원가량 투자했다가 300만원 수익을 본 뒤 (빚을 내서) 투자금을 총 3000만원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그는 “확실한 종목이라는 생각이 들면 내 돈만으로 투자하기보다 신용(빚)까지 끌어넣어야 손에 쥐는 수익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신용잔고 올들어 5.3조 27% 급증
코스피 횡보에도 대출 받아 투자
융자 많은 톱10 절반이 정치테마주
정치인과 직접 관련 없는데 돈 몰려
“주가 하락땐 깡통계좌 위험” 경고

올해 증권사의 신용융자 잔고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해 증권사의 신용융자 잔고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스피가 최근 3200선에서 횡보하고 있지만 이모씨와 같은 개인투자자의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 융자 잔고가 역대 최대치인 24조원을 넘어섰다.

2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신용융자 잔액은 24조6483억원이다. 역대 최대 규모다. 개미(개인투자자)의 투자 열풍에 빚 증가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신용융자 잔액이 20조원을 밑돌던 연초와 비교하면 27%(5조2960억원)나 늘었다.

증권사는 잇달아 대출(신용공여)을 중단하고 있다.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100%까지 돈을 빌려줄 수 있지만, 급증한 빚투 수요에 돈을 빌려줄 여력(여신 한도)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NH투자증권은 지난 16일부터 신용거래융자 신규 매수 서비스와 증권담보융자를 일시적으로 막았다. 미래에셋증권도 지난 22일부터 신용융자를 비롯해 증권담보융자 서비스를 중단했다.

개미들의 ‘빚투’ 열기를 전문가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신용융자 거래는 주가 상승을 예상한 투자 방식이다. 하지만 코스피 등이 횡보하는 데다 최근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오히려 손실을 볼 가능성이 커져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공포 속에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며 “변동성이 커지면 빚투족은 큰 손실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증권사의 신용융자 잔고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해 증권사의 신용융자 잔고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대훈 SK증권 연구위원도 “현재 지수는 그동안 급격히 오른 부담감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가능성 등 각종 대외 변수가 맞물려 당분간 급격히 오르긴 힘들 것”이라며 “(이런) 횡보장에서는 빚투족의 기대만큼 높은 수익을 거두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더 걱정스러운 부분은 빚투족의 상당수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들썩이는 ‘정치 테마주’로 몰리는 데 있다. 테마주는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무관하게, 확인되지 않는 풍문에 따라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코스피 시장에서 신용융자가 가장 많은(신용융자 잔고 비율) 상위 10개 종목 중 절반이 소위 정치인 관련 테마주였다.

신용융자 잔고 비율이 9.97%로 10%에 이르는 한솔홈데코는 증권가에서 탄소배출권 수혜주인 동시에, 이재명 경기도지사 관련주로 언급된다. 이 지사가 평소 주장하는 기본주택공급 확대의 이득을 볼 거라는 관측 때문으로 풀이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관련주로 불리는 까뮤이앤씨(10.54%)와 콤텍시스템(10.18%), 써니전자(9.6%) 등 세 종목도 신용융자 잔고 비율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정치 테마주 중 대부분은 해당 정치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빚투족은 주가가 하락할 때 반대매매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반대매매란 주가가 급격히 내려갈 때 투자자가 추가 증거금을 납입하지 못하면 증권사들이 강제로 주식을 팔아 대출 회수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황세운 연구위원은 “돈을 빌려 실체가 없는 테마주에 투자하는 건 상당한 위험한 투자”라며 “주가 급락이 지속하면 주식을 모두 팔아도 빌린 돈을 못 갚는 깡통계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테마주는 주가가 급등락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빚을 내서 투자했다가 원금(증거금) 대부분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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