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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의 슛오프] 바람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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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양궁 대표팀 맏형 오진혁이 26일 도쿄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 결승전에서 과녁을 향해 활을 쏘고 있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불었지만 오진혁은 흔들림이 없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양궁 대표팀 맏형 오진혁이 26일 도쿄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 결승전에서 과녁을 향해 활을 쏘고 있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불었지만 오진혁은 흔들림이 없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11년 영화 ‘최종병기 활’의 주인공 남이(박해일)는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궁 선수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바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오조준’이 양궁 성패 갈라 #화살 가벼우면 바람 영향 더 받아 #개인전 초속 2m 바람 계산해야 ‘금’

정확히 말하자면 양궁 선수들은 바람을 계산해서 극복한다. 선수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일기예보부터 본다. 실내경기인 사격과 달리 양궁은 야외에서 하기 때문이다. 시속 200㎞가 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화살도 옆바람이 강하면 목표했던 지점보다 몇 ㎝ 떨어진 곳에 도달한다. 그래서 필요한 게 ‘오조준(誤照準)’이다.

양궁계에선 정중앙을 노리는 정(正)조준의 반대 개념으로 오조준이란 단어를 쓴다. 엄밀히 말하면 ‘예측 조준’ 정도가 맞는 말이겠지만, 어느새 오조준이 입에 익은 표현이 됐다.

오조준은 과녁(올림픽은 70m 거리)에 설치된 깃발, 그리고 35m 지점에 설치된 바람주머니, 그리고 몸으로 느낀 바람의 정보를 종합해 이뤄진다. 한국 선수들은 오조준 노하우가 탁월하다.

‘몸 바람(몸으로 느끼는 바람)’과 ‘타깃 바람(과녁 근처에서 부는 바람)’이 같은 방향일 땐 오조준을 하기 편하다. 3시 방향에서 바람이 분다면 조준을 좀 더 오른쪽으로 해서 쏘는 식이다. 뒷바람이 불면 화살이 더 많이 날아가기 때문에 아래쪽을 겨냥해서 쏜다. 몸 바람과 타깃 바람이 다른 방향으로 불면 오조준이 쉽지 않다.

경기 중 선수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바람을 잘못 파악했다고 보면 된다.

한국이 단체전에서 더 강한 건 소통의 힘이다. 첫 발을 쏜 선수는 다음 선수에게 자신이 느낀 바람의 정보를 전달한다. 이를테면 “나는 오른쪽 7점 구역을 조준하고 쐈다. 너는 (나보다 무거운 활을 써 바람의 영향을 덜 받으니) 8점을 조준하고 쏴라”고 한다.

긴 선발전과 훈련을 통해 동료 선수를 너무나 잘 알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진 한국 양궁의 전통이기도 하다.

오진혁 선수는 어깨 회전근 힘줄 4개 중 3개가 끊어진 상태다. 나머지 하나 상태도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가벼운 활을 쓴다. 활 무게는 활을 잡아당길 때 드는 장력을 기준으로 나눈다. 오진혁 선수는 예전에 54파운드(24.5㎏) 짜리 활을 쓰다가 지금은 46파운드(20.9㎏)의 활을 사용한다.

남자 선수 입장에선 가벼운 활을 쏘는 게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오진혁 선수는 어깨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선택했고, 자신만의 기술을 만들었다. 힘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쏘면서 어깨에 가해지는 부담이 줄어든 것 같다.

단체전 경기 기간에는 초속 0.8m의 바람이 불었다. 예상보다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전에서는 태풍의 영향을 받아 초속 2m 이상의 강풍이 불 수도 있다. 우리 선수들은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훈련을 많이 해 태풍도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 여자 선수들도 무거운 활을 쓰기 때문에 이런 환경이 나쁘지 않을 거다.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26일 중계방송을 마치고, 삼겹살을 먹었다. 지금까지 딴 금메달 3개를 기념한 것이다. 선후배들이 너무 잘해줘서 기뻤다. 남녀 개인전까지 우승하면 금메달 5개다. 그땐 오겹살 파티를 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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