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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역전승' 이다빈의 값진 銀···"엄마 김치찌개 먹고싶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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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에서 아쉽게 패한 이다빈. [연합뉴스]

결승에서 아쉽게 패한 이다빈. [연합뉴스]

 이다빈(25·서울시청)이 생애 첫 올림픽에서 값진 은메달을 따냈다.

태권도 여자 67kg 초과급 은 #올림픽 직전 두 차례 발목 수술 #한국 태권도 사상 첫 노골드

세계 랭킹 5위 이다빈은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태권도 67㎏ 초과급 결승에서 3위 밀리차 만디치(30·세르비아)에 7-10으로 졌다. 부상을 딛고 일군 값진 은메달이다. 이다빈은 2년 전부터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2019년 국제 대회 도중 오른팔을 다쳐서 2~3달 재활했다. 지난해 2월엔 왼쪽 발목 수술을 받았다. 다시 재활했다. 하지만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이대로는 올림픽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느낀 이다빈은 올림픽 개막 석달 여를 앞두고 왼발목 뼛조각을 제거하고 인대를 접합하는 수술을 다시 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후 2개월간 이를 악물고 재활과 훈련을 병행하며 몸상태를 끌어올렸다. 그가 메달을 딸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올림픽 직전 왼발목을 수술한 이다빈. [사진 이상명]

올림픽 직전 왼발목을 수술한 이다빈. [사진 이상명]

이다빈은 예상을 뒤엎었다. 16강전에서 아미나타 샤를렝 트라오레(코트디부아르)에게 17-13 역전승을 거둔 그는 8강에선 카테리네 로드리게스 페게로(도미니카공화국)를 23-14로 물리쳤다. 세계 1위 비안카 워크던(영국)과 준결승에선 투혼의 역전 드라마를 썼다. 이다빈은 종료 3초 전까지 22-24로 뒤졌다. 패색이 짙었다. 영국 선수단은 승리 예감한 듯 환호했다. 그 순간 이다빈의 왼발이 번뜩였다. 날카로운 내려찍기가 비안카 얼굴에 꽂혔다. 이다빈은 키 1m77㎝, 비안카는 그보다 5㎝ 큰 1m83㎝다. 결승전을 향한 집념의 발차기였다. 역전승을 알리는 종료 버저가 울렸다. 경기를 지켜본 팬은 "내 평생 가장 짜릿한 역전드라마"라며 박수를 보냈다.

장신 비앙카를 무너뜨린 발차기는 오랜 세월에 걸쳐 다진 이다빈의 필살기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간 2014년 아시안게임 여자 62㎏급 금메달을 따낸 이다빈은 워낙 실력이 특출나서 '태권도 천재'로 불렸다. 종주국 한국에서도 고교생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건 드문 일이라서다. 탄탄대로를 달릴 줄 알았는데, 이듬해부터 위기를 맞았다. 한체대에 입학한 그는 갑자기 체중이 10㎏ 가까이 늘면서 감량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체급을 73㎏급으로 두 체급 올리기로 했다. 이다빈은 2학년 때까지 대회 출전을 멈추고 체급에 걸맞는 근력과 체력을 키웠는데, 이때 집중한 것이 발차기였다.

그는 정광채(49) 한체대 태권도학과 교수의 지도 아래 하루 세 차례 총 1500회 발차기 훈련을 했다. 보통 대학 선수 훈련량의 3배였다. 매일 밤 10시가 돼야 끝났다. 힘들어서 운 적도 있지만, 도쿄올림픽에 서는 모습을 떠올리며 참았다. 그 과정에서 발차기가 더욱 날카롭게 업그레이드됐다. 상대와 뒤엉킨 상태에서도 원하는 곳을 빠르고 정확하게 맞히게 됐다. 정광채 교수는 "(이)다빈이는 힘과 유연성을 타고 나서 한 발을 들고 20~30차례 발차기를 한다. 보통은 남자 선수도 5번 이상 차기 어려운 기술이다. 경량급 선수 출신이라 스피드도 폭발적이다. 1m90㎝대 거구들을 이기는 다빈이 경기를 보면 마치 '여자 이소룡'을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적응기를 마친 이다빈은 2018년 아시안게임과 2019년 세계선수권을 연달아 우승하며 중량급 정상급 선수가 됐다.

경기 전 날 이다빈이 아버지와 나눈 문자메시지. [사진 이상명]

경기 전 날 이다빈이 아버지와 나눈 문자메시지. [사진 이상명]

올림픽 은메달을 딴 이다빈의 꿈은 소박하다. 울산 고향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엄마표 감자찌개와 김치볶음밥을 먹고, 아이돌 가수 강다니엘의 노래를 들으며 반려견 '이든'이와 산책을 기대한다. 4남매(딸3, 아들1) 증 맏이인 그는 동생들을 위해 용돈도 준비했다. 이다빈 아버지 이상명(50)씨는 "다빈이가 군것질을 무척 좋아하는데, 과자를 종류별로 잔뜩 사뒀다. 은메달 딴 우리 딸 장하고, 사랑해"라고 전했다.

앞서 80㎏ 초과급 동메달 결정전에 출전한 인교돈(29·한국가스공사)은 동메달을 따냈다. 슬로베니아 이반 트라이코비치에 5-4로 이겼다. 인교돈은 생애 첫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불굴의 의지로 일군 메달이다. 인교돈은 스물두 살이던 2014년 혈액암 일종인 림프종 판정을 받았는데, 5년간 치료 끝에 극복했다. 이로써 한국 태권도는 노골드를 기록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6개 체급에 출전해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고 대회를 마쳤다.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치러진 이래 종주국인 한국이 금메달을 하나도 못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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