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이 끊고, 김정은이 이었다…'대남 레버리지' 된 통신선

중앙일보

입력 2021.07.27 17:12

업데이트 2021.07.27 18:02

“지금 온 겨레는 좌절과 침체상태에 있는 북남관계가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대북전단이 불러온 '통신선 차단'
北 일방 결정…靑 꾸준히 복원 희망
남북 정상 친서 교환하며 '복원 합의'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7일 남북 통신 연락선 복원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남북관계 회복에 나서겠다는 예고다. 정부로선 반가운 일이지만, 사실 애초에 대북 전단을 빌미로 통신선을 전면 차단해버린 것 역시 북한이었다.

대북전단 살포에 北 "남북 접촉공간 완전 격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앞서 남북 간 통신선은 지난해 6월 9일을 기점으로 모두 먹통이 된 상태였다. 탈북민단체 등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 직접 나서 반발한 뒤 이어진 조치였다. 

당시 북한은 노동신문에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리는 조치를 취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및 남북 군 당국의 동·서해 통신선과 남북 정상 간 핫라인에 해당하는 청와대-국무위원회 간 직통 통신선을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북한은 2019년 6월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삼아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선을 차단했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두고 개통된 청오대-노동당 간 직통 핫라인 역시 이 때 차단됐다. 사진은 2018년 4월 20일 당시 송인배(가운데) 청와대 제1부속실장과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왼쪽)이 남북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직통전화)을 이용해 북한 국무위 담당자와 시험통화 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은 2019년 6월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삼아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선을 차단했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두고 개통된 청오대-노동당 간 직통 핫라인 역시 이 때 차단됐다. 사진은 2018년 4월 20일 당시 송인배(가운데) 청와대 제1부속실장과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왼쪽)이 남북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직통전화)을 이용해 북한 국무위 담당자와 시험통화 하는 모습. [연합뉴스]

특히 청와대-국무위원회 직통 통신선을 폐기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평화 성과'를 부정하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 해당 통신선은 최초의 남북 정상 간 직접 소통 채널로, 판문점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둔 2018년 4월 20일에 개통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이같은 조치에 대해 “(김여정 부부장이)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 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남조선 것들과의 일체 접촉공간을 완전격페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 행동”이라고 밝혔다.

통신선이 차단됨에 따라 남북 간에는 실무협의를 포함한 모든 논의와 대화 역시 전면 중단됐다. 이에 더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한의 일방적인 적대조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여건은 더 나빠졌다.

'해수부 공무원 피살'에 "복구하자"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해 9월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한 남북 공동조사를 위해 군사통신선 복구 및 재가동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해 9월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한 남북 공동조사를 위해 군사통신선 복구 및 재가동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럼에도 정부는 일관되게 북한과의 채널 복원을 희망했다. 지난해 9월 북한군에 의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에서 남북 통신선을 복원하기 위한 명분을 찾았을 정도다.

남북 공동조사를 위해 우선적으로 군 통신선을 활용해 소통하자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었다. 지난해 9월 27일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은 문 대통령이 주재한 긴급 안보관계 장관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남과 북이 각각 발표한 조사 결과에 구애되지 않고 열린 자세로 사실관계를 함께 밝혀 내기를 바란다”며 “이를 위한 소통과 협의, 정보 교환을 위해 군사통신선의 복구와 재가동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튿날 문 대통령도 직접 나서 “긴급히 남북 간의 군사통신선을 통해 연락과 소통이 이뤄져야 우발적인 군사충돌이나 돌발적인 사건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통신선 복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3개월 만에 복원, 北 속내는?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참석차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남북 정상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3주년을 계기로 친서를 교환하며 통신연락선 복원에 합의했다. [연합뉴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참석차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남북 정상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3주년을 계기로 친서를 교환하며 통신연락선 복원에 합의했다. [연합뉴스]

이처럼 북한은 통신선 복원 여부를 일종의 대남 레버리지처럼 활용해왔다. 눈길을 끄는 것은 통신선 차단을 지시한 건 김여정 부부장이고, 복원을 지시한 건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신선 복원은 남북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결과라며 “양 정상은 남북관계가 오랜 기간 단절돼 있는데 대한 문제점을 공유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조속한 관계 복원과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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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이 직접 나선 건 그만큼 복원에 부여하는 무게감이 크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의 북핵 협상 과정에서 남북 관계를 레버리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이번 통신선 복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하나의 독립 변수로서 직접 컨트롤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면서 동시에 남북 관계를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상에 활용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숨어있다고 해석된다”며 “이는 곧 한국 정부가 북·미 간 북핵 협상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한국의 차기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다시 대화 채널을 끊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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