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아마존 모셨다” TSMC “독일 진출”···‘반도체 3차 대전’ 서막

중앙일보

입력 2021.07.27 14:26

업데이트 2021.07.27 15:01

반도체 이미지 [픽사베이]

반도체 이미지 [픽사베이]

#1. “아마존과 퀄컴을 고객사로 유치했다. 인텔 파운드리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26일(현지시간)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온라인으로 열린 기술 전략 설명회에서 한 얘기다. 인텔은 지난 4월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다.

1980년대 미·일 갈등이 1차 대전
90년대 말 ‘치킨게임’ 이어 세 번째
美‧中‧日‧臺‧EU 반도체 ‘5色 전략’
한국 기업엔 ‘M&A 악수’ 될 수도

이날 인텔은 현재 7나노 수준인 양산 기술을 4년 내에 2나노로 향상시킨다는 구상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 계획을 내놨다. TSMC와 삼성전자를 ‘따라잡겠다’는 선언이다. 겔싱어 CEO는 “기술 진보를 뒷받침할 대규모 투자를 이미 결정했다”고 말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2. 같은 날 류더인(劉德音) TSMC 회장은 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초기 검토’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독일에 반도체공장을 짓기 위한 평가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앞서 웨이저자(魏哲家) TSMC CEO는 이달 15일 실적 발표 때 “일본에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TSMC는 올해 초 미국 애리조나주를 포함해 2024년까지 1280억 달러(약 147조6000억원)를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파운드리 투자 비전이 발표되면서 ‘반도체 3차 대전’의 서막이 올랐다. 반도체 패권을 되찾으려는 미국과 반도체 굴기를 포기하지 않은 중국, 옛 영광을 재현하려는 일본이 세게 붙었다. 신흥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한 대만과 수백조원대 투자 계획을 내놓은 유럽연합(EU)도 참전했다. 여기에다 2030년 시스템 반도체 세계 1위를 선언한 한국을 더하면 반도체 6파전인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을 표현한 이미지. [중앙포토]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을 표현한 이미지. [중앙포토]

이번엔 분위기가 삼엄하다. 미국에 맞붙은 일본에 대한 무역 제재를 부른 1980년대 1차 대전, 한국과 일본·대만·독일이 ‘치킨게임’을 벌인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2차 대전보다 더 치열하고 폭 넓은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10년 후 1조 달러(약 1150조원)로 성장할 반도체 시장은 물론 미래 산업·기술 패권을 놓고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반도체 자강론’

코로나19 팬데믹이 반도체 전쟁에 기름을 부었다. 그동안 평화롭고 안정돼 보였던 반도체 시장은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라는 민낯을 드러냈다. 반도체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4차산업혁명에서 도태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겼고, 국가마다 ‘반도체 자강론(自强論)’을 불러일으켰다. 주요국 정부는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해 반도체 육성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주요국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비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요국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비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 “다시 미국으로 헤쳐 모여”

그런데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 패권 국가가 반도체 육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전략의 결’은 다르다.

미국이 내놓은 메시지는 한마디로 ‘다시 미국(Again America)’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제조 점유율은 90년 37%에서 지난해 12%로 하락했다. 이를 회복해 잃어버린 반도체 헤게모니(주도권)를 다시 움켜쥐겠다는 게 미국의 속내다.

정책 추진 속도는 매우 빠르다. 반도체 산업에 향후 5년간 520억 달러(약 59조9400억원)를 투자하는 법안이 지난달 상원을 통과한 데 이어 하원 문턱도 곧 넘을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반도체를 포함한 주요 4개 산업의 ‘공급망 강화에 관한 보고서’를 지난달 공표했다. 미국 반도체 산업이 공급망 취약성에 노출돼 있고 자국 내 생산 역량이 부족하다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강력한 재정 투입을 통해 자국 내 생산 역량 확보에 나설 방침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서밋에서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서밋에서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3세대 반도체 개발’로 우회 전략  

중국의 전략엔 변화가 감지된다. ‘반도체 굴기’라는 비전은 변함이 없는데 미국 제재에 맞서 ‘3세대 반도체’라는 우회 전략을 선택했다. 중국 정부는 올해 ‘14차 5개년 계획 및 2035 중장기 목표’에서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고순도 소재, 장비 및 제조 기술, 메모리 기술을 포함한 3세대 반도체 육성책을 발표했다. 모두 중국의 약점으로 꼽히는 분야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지역별 비중(2019년 기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지역별 비중(2019년 기준)

동시에 ‘빅펀드’로 불리는 국가반도체기금과 세제 지원을 통해 자국 반도체 기업을 키우고 있다. 한편으론 한국이나 일본, EU와 협력에도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중국이 단기간에 반도체 역량을 강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대응은 외국과의 협력 또는 외국 기술 기업 유치와 인수를 통한 기술 확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박람회 모습〈연합뉴스〉

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박람회 모습〈연합뉴스〉

일본도 지난달에만 두 차례 반도체 전략 발표 

일본을 읽는 키워드는 절치부심이다. 지난달에만 두 차례에 걸쳐 ‘반도체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핵심은 파운드리를 포함해 첨단 반도체 양산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에는 기존 반도체 공장을 재생해 일본 내 반도체 제조 기반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규판 KIEP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자기완결주의를 포기하고 해외 첨단 반도체 제조기업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며 “이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주요한 변수”라고 분석했다.

EU 깃발〈로이터=연합뉴스〉

EU 깃발〈로이터=연합뉴스〉

EU, 10년간 200조원 규모 투자 나서

EU는 침묵을 깼다. 지난해 말 반도체 성장 전략을 담은 ‘유럽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글로벌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현재 10%에서 향후 9~10년 내 두 배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향후 10년간 1450억 유로(약 196조9000억원)를 풀 방침이다.

TSMC 로고 〈연합뉴스〉

TSMC 로고 〈연합뉴스〉

대만 “TSMC가 대만이다”  

파운드리 점유율 55%를 장악한 TSMC를 앞세운 대만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해외 진출 전략이 돋보인다. 바이든 정부의 요구에 360억 달러(약 42조원) 규모의 공장을 미국에 짓기로 했다. 일본·독일 진출 계획도 밝혔다. 지난 4월엔 28억 달러(약 3조2000억원)를 투자해 중국 난징 공장을 확장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M&A 시도···국내 업체에 악수” 

주요 국가가 명운을 걸면서 반도체 3차 대전은 장기전이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 간 합종연횡과 이합집산, 외교전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도 치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자칫 ‘반도체 공급 치킨게임’이 재현될 수도 있다. 반도체 역량 강화를 선언한 각국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기업의 인수합병(M&A) 방어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해외 반도체 기업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악재다. 연원호 부연구위원은 “주요국이 모두 반도체 역량 강화에 나서면서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산업은 무한경쟁에 돌입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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