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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의 슛오프] 바람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입력

여자 양궁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안산, 강채영, 장민희.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여자 양궁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안산, 강채영, 장민희.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11년 영화 「최종병기 활」의 주인공 남이(박해일 분)는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궁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바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궁 선수들에게 '바람 계산'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양궁 선수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일기예보부터 본다. 실내에서 경기가 열리는 사격과 달리 실외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시속 200㎞가 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화살도 옆바람이 강하면 원래 생각했던 지점보다 몇 ㎝ 떨어진 곳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오조준(誤照準)'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한 장면

영화 최종병기 활의 한 장면

양궁계에선 정중앙을 노리는 정조준(正照準)의 반대 개념으로 오조준이란 단어를 쓴다. 엄밀히 말하면 '예측 조준' 정도가 맞는 표현이겠지만 입에 익은 표현이 됐다.

오조준은 과녁(올림픽은 70m 거리)에 설치된 깃발, 그리고 35m 지점에 설치된 풍향계(바람주머니), 그리고 몸으로 느낀 바람의 정보를 종합해 이뤄진다. 한국 선수들은 오조준 노하우가 탁월하다.

'몸바람(몸에서 느껴지는 바람 방향)'과 '타깃바람(과녁 근처에서 부는 바람 방향)'이 같을 땐 오조준을 하기 편하다. 3시 방향에서 바람이 분다면 조준을 좀 더 오른쪽으로 해서 쏘는 식이다. 뒷바람이 불면 화살이 더 많이 날아가기 때문에 아래쪽을 겨냥헤서 쏜다. 몸바람과 타깃바람이 다를 땐 오조준이 쉽지 않다. 선수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을 땐 바람을 잘못 파악했다고 보면 된다.

한국이 단체전에서 더욱 강한 건 '커뮤니케이션'의 힘이다. 첫 발을 쏜 선수는 다음 선수에게 자신이 느낀 바람의 정보를 전달한다. 이를테면 '나는 오른쪽 7점 구역을 조준하고 쐈다. 너는 (나보다 무거운 활을 써 바람의 영향을 덜 받으니)8점을 조준하고 쏴라"고 한다. 긴 선발전과 연습을 통해 서로 어떤 활을 쓰고, 어떤 스타일로 쏘는지 알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다. 오래 전부터 이어진 한국 양궁의 전통이기도 하다.

남자 양궁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김제덕, 김우진, 오진혁.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남자 양궁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김제덕, 김우진, 오진혁.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오진혁 오빠는 어깨 회전근 힘줄 4개 중 3개가 끊어진 상태다. 나머지 하나도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전보다 가벼운 활을 쓴다. 양궁은 활을 잡아당길 때 드는 장력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오빠는 예전에 54파운드(24.5㎏) 짜리 활을 쓰다가 지금은 46파운드 활을 쓴다.

남자 선수 입장에선 치명적일 수도 있고, 자존심도 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진혁이 오빠는 어깨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선택을 내렸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오조준을 잘 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힘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쏘면서 부담이 줄어든 것 같다.

단체전 경기가 열린 동안에는 생각보다 바람(초속 0.8㎧)이 많이 불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전에서는 태풍의 영향을 받아 2㎧ 이상의 강풍이 불 수도 있다. 우리 선수들은 워낙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 연습을 많이 해 큰 영향을 받진 않을 것이다. 여자 선수들도 무거운 활을 쓰기 때문에 나쁘지 않을 것이다.

26일 중계를 마치고, 금메달 3개를 기념해서 삼겹살을 먹었다. 남은 경기가 있지만 선후배들이 너무 잘 해낸 게 기뻐서였다. 남녀 개인전까지 금메달 5개를 모두 따내 '오겹살' 파티까지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혜진 해설위원. 우상조 기자

장혜진 해설위원.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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