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음식물 쓰레기로 음식 담는 그릇 만든 디자이너

중앙일보

입력 2021.07.27 10:00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26)

‘냉장고 환상’으로의 초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전체 부지면적 13만4815㎡, 건축 연면적 16만1237㎡로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부지면적을 보면 축구장의 약 20배 크기다. 아시아 최대 규모인 복합전시관, 창제작 스튜디오, 극장, 아틀리에 등 최신식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예술·인문학·과학·기술의 융복합 콘텐츠를 제작하는 공간이다.

이렇게 웅장한 곳에서 왜 하필 ‘냉장고’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는지 많은 사람이 물었다. 누구의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주제를 왜 전시까지 하냐는 것이다.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1862년 런던 만국 박람회에서 냉장고가 전시되었고(정확히 말하면 제빙 기계), 냉각 기술의 덕택으로 도시가 돌아가고 전 세계로 식재료가 유통됐다. 한쪽에서는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 죽는 일이 벌어지고, 전 지구적 환경 공해가 유발된 사실과 냉장고 폐기할 때 사회적 비용이 들어갔다.

냉장고는 정말 환상적인 발명품이었을까. 냉장고의 편리와 효율에 대한 환상 뒤에 숨겨진 것은 무엇일까. 진실을 감추는 환상을 벗겨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안은 있을까. 냉장고가 사회를 강력하게 독점하고 있고 냉장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고, 우리의 삶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가.

냉장고 프로젝트는 그간 25회의 칼럼을 통해 세상에 공개되었고, 많은 분의 댓글과 피드백을 받아 전시로 발전될 수 있었다. 칼럼 글이 작은 반향을 일으켰고, 전시로 구현되면서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전시장에 왔어도 놓칠 수 있는 부분과 기획자의 입장에서 소개하고 싶은 작가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냉장고 환상’에서는 일본 디자이너 아라키 코스케(Kosuke Araki)의 두 가지 작품을 전시했다. 그는 급격하게 진행된 근대화 과정에서 그동안 무시되었던 가치라든지 감성을 탐색하는 작업을 주로 해왔는데, 자연에 감사하고 사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인간다움을 회복한다는 취지에서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그의 첫 작품은 ‘음식물 쓰레기 제품(Food Waste Ware)’이다. 2013년에 발표한 그의 석사학위 졸업 작품인데, 작가는 영국왕립미술대학원 제품디자인과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자신의 부엌과 런던의 다양한 식료품 가게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 현황을 기록했고,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해 식기류를 제작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식기류는 채소 쓰레기를 태운 숯과 정육점 쓰레기에서 추출한 동물성 접착제를 사용해 제작했다. 버려진 뼈와 껍질로 만든 접착제였다.

그는 식료품 가게에 일부 유기성 폐기물을 따로 보관해 달라고 요청했고, 장을 마감한 후에는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기 위해 가게를 방문했다. 상한 채소가 대부분이었지만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신선한 채소도 있었다. 문제는 그가 목도한 것이 매일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식품 중 극히 일부라는 점. 그는 사람들 대부분이 날마다 버리는 음식의 양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자신의 부엌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에 대해 한 달간 기록했다. 그는 혼자 살고 있었고, 단지 저녁 식사만을 해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매주 약 1㎏의 음식물 쓰레기가 배출됐다고 한다.

작가의 부엌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한 달간의 기록. [사진 Kosuke Araki]

작가의 부엌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한 달간의 기록. [사진 Kosuke Araki]

그의 두 번째 작품 ‘아니마(Anima)’는 ‘음식물 쓰레기 제품’의 후속작으로 음식물 쓰레기와 옻칠을 사용해 수공예로 제작한 식기류 시리즈이다. 옻칠을 사용했다는 것이 차이점인데, 식기류는 옻칠의 산화로 인해 매우 짙은 갈색(거의 검정에 가까운)을 띤다. 옻칠을 사용함으로써 식기의 강도와 방수 기능, 향균 효과와 함께 광택을 주면서 사용 가능하고 간직할 만한 대상이 되었다.

음식은 사물이 아니라 생명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위해 그 생명을 먹지만, 아마도 음식물을 거래하거나, 구매 또는 섭취하는 과정에서 이를 생명으로 간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음식을 생명으로 여기지 못하는 인식이,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요인 중 하나라고 확신했다.

아라키 코스케의 ‘아니마(Anima)’. [사진 아시아문화원]

아라키 코스케의 ‘아니마(Anima)’. [사진 아시아문화원]

작가는 2년 동안 집안에서 생산된 과일 껍질과 뼈 등 먹을 수 없는 식품 폐기물을 수집하고 기록했다. 총 315㎏의 음식물 쓰레기를 수집한 다음 숯이 될 때까지 태우고 몰드를 사용해 틀을 갖춘 뒤 동물성 접착제로 붙였다. 마무리 작업으로 옻칠로 코팅해 깊이 있는 광택을 냈다. 옻칠은 일본 훗카이도의 전통 공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한편, 아니마는 런던의 V&A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과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도 소장하고 있다.

‘더럽게’만 여겨졌던 음식물 쓰레기가 아름답고 고귀한 작품으로 전시되었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늘 당연하게 버렸던 음식물 쓰레기에 대해 반성적인 사유를 이끌어낸다. 음식물 쓰레기로 만들어진 그릇에 담긴 한 끼의 식사가 마련된다면, 우리는 ‘생명’을 먹는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아니마 시리즈. 포도 줄기와 아보카도 씨 등의 숯을 사용해 만든 컵. [사진 Kosuke Araki]

아니마 시리즈. 포도 줄기와 아보카도 씨 등의 숯을 사용해 만든 컵. [사진 Kosuke Ar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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