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아이냐 100살 호두나무냐, 현대판 영국 '솔로몬의 재판'

중앙일보

입력 2021.07.27 05:00

딸을 지키려는 엄마와 자연을 지키려는 이웃. 영국에서 100년 된 호두나무를 둘러싼 이웃 갈등이 법정 소송으로 번질 위기에 처했다. 무슨 사연일까.

호두나무. [픽사베이]

호두나무. [픽사베이]

25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 등 현지 언론은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옆집 호두나무를 자르려던 한 엄마가 이웃 및 주 의회와 겪고 있는 갈등을 보도했다.

사연은 이랬다. 잉글랜드 동부 노퍽주 트라우스의 샹탈 백(41)은 지난 2019년 집 뒤뜰에서 아찔한 광경을 목격했다. 당시 네살배기 딸 보가 귀와 입술이 부어오른 채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아이는 온 몸이 두드러기로 뒤덮인 채 호흡 곤란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아나필락시스 반응이었다. 아나필락시스는 특정 물질에 노출된 뒤 급성 전신 반응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쇼크사나 정신적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보의 경우 옆집 마당에 있는 16m 높이의 거대 호두나무에서 떨어진 견과류 물질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던 것이다.

당시 응급 처치로 위기는 넘겼지만, 호두나무가 있는 한 안심할 수 없었다. 이에 백은 매년 가을이면 뒤뜰에 떨어진 호두를 치우고, 수시로 정원을 관리하며 보와 호두나무의 접촉을 최소화했다.

하지만 올해 호두나무 가지가 담장을 넘어오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백은 집 뒤뜰에 넘어온 호두나무 가지를 쳐야 한다고 판단했고, 주 의회에 가지치기 허가 요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주 의회는 호두나무의 훼손 가능성을 이유로 반려했다. 호두나무가 100년 이상 돼 가지치기가 자칫 질병과 부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백은 여러 차례 사정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백의 사연은 지역 주민 간 대립으로 번졌다. 가지치기 반대 측은 이 호두나무가 마을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지역의 세월과 품격을 대표하는 자연물”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찬성 측은 “시각적 아쉬움이 있겠지만,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건강상의 위험성을 고려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서한으로 백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주민 간 갈등이 격화하자 지역 의원이 타협점을 찾기 위해 나섰다. 의회 대표로 나선 리사 닐 의원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 “아이 건강을 우선하는 측과 나무를 지켜야 한다는 측의 주장을 모두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의회는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허가 없이 호두나무에 손을 될 경우 고소·고발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백은 “호두나무를 완전히 베어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을 줄일 만큼만 자르겠다”며 빠른 해결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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