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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남편 돈 번다고, 지원 못받는 母子…이혼소송이 희망 됐다

중앙일보

입력

“정말 이혼이 된 거예요?”

40대 엄마는 변호사를 붙잡고 수차례 되물었다.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고 명시한 법원 결정이 믿기지 않았다. 이혼 결정은 엄마와 8살 아들에겐 희망이었다. 아들의 손을 꼭 쥔 엄마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김모씨는 그동안 홀로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보며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가정폭력으로 별거에 들어갔지만, 혼인 상태로 남아 있는 남편의 소득 탓에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혼 소송을 대리한 정이수 변호사가 소송 결과를 전하자 엄마는 비로소 꾹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소송 후 김씨는 정 변호사에게 감사 문자를 보냈다. 사진 정이수 변호사 제공

소송 후 김씨는 정 변호사에게 감사 문자를 보냈다. 사진 정이수 변호사 제공

남편 폭행에 집 떠난 모자

김씨의 비극은 지난 2013년 시작됐다. 매일 밤 술에 취해 주먹을 휘두르는 남편 탓에 신혼의 단꿈이 아닌 악몽에 시달렸다. 아이가 태어났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결국 남편은 현행범으로 붙잡혀 아동보호 사건으로 가정법원에 회부됐다. 법원명령으로 가정폭력 상담을 받았지만, 재발을 막진 못했다. 견디다 못한 김씨는 아이와 함께 남편을 떠났다.

폭력에서 벗어났지만, 문제는 생계였다. 홀로서기는 버거웠다. 30개월에 발달성 장애 진단을 받은 아들을 돌보며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세무서로 향했지만, 지원대상이 아니란 답변이 되돌아왔다. 더는 친정에 손을 벌리기 어려운 상황. 드문드문 남편이 보내던 양육비마저 끊겼다. 카드 돌려막기로 버텼지만 약 7000만원으로 불어난 빚에 김씨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홀로서기 위해 시작한 이혼소송 

의정부지방법원은 김씨에 파산을 선고했다. 사진 정이수 변호사 제공

의정부지방법원은 김씨에 파산을 선고했다. 사진 정이수 변호사 제공

지난해 6월 암담했던 김씨 모자에게 한줄기 서광이 비쳤다. 의정부지방법원이 김씨의 개인파산 및 면책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빚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위기를 넘겼지만, 김씨가 경제적 악순환에 빠질 우려는 여전했다. 자립을 위해선 먼저 혼인 상태로 남아 있는 남편의 소득 때문에 지원 대상이 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남편은 이혼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소송을 해야 했지만, 법을 잘 모르고 이혼 상담도 받아본 적 없던 김씨에겐 법원은 벽처럼 느껴졌다.

파산관재인으로 김씨를 도왔던 정 변호사가 나섰다. 정 변호사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소송구조를 요청해 김씨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법원에 이혼 및 양육권, 양육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남편은 “이혼은 받아들이겠다”며 한 발짝 물러나면서도 “친권과 양육권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담당 재판부는 남편에게 10주간 상담 조치 명령을 내리면서 판결 선고 전까지 매월 60만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직권명령을 내렸다.

이혼 결정으로 새 희망 품었다 

김씨의 이혼소송 결정문. 사진 정이수 변호사 제공

김씨의 이혼소송 결정문. 사진 정이수 변호사 제공

지난 19일 반년에 걸친 마음고생이 결실을 보았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이 김씨의 이혼 및 양육권, 양육비 청구소송에 대해 화해 권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재판장은 김씨가 남편과 이혼하고 A씨를 아들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한다고 결정했다. 남편에게는 아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김씨에게 매달 120만원을 지급하라고도 했다. 김씨와 남편이 각각 결정문을 받고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이들은 이혼하게 된다. 이혼이 확정되면 김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돼 지원받는 동시에 한부모 가정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된다. 김씨는 정 변호사에게 “아이의 상태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무거움 짐을 벗고 이제 아이와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이수 변호사는 김씨 사례처럼 가정을 버린 남편의 소득이 있어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소득 신고내용 등 형식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별거를 택했지만, 무자력 상태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며 “이들이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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