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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사법부, 진실 못밝혔다"…6년전 한명숙처럼 또 불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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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7월 26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창원교도소에 수감되기 직전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7월 26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창원교도소에 수감되기 직전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진실은 그 시대에 금방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오늘 사법정의가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2015년 8월 24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법부에서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2021년 7월 26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6년의 시차를 두고 ‘평행이론’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여권 핵심 인사가 중대 비리를 저지른 죄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기 직전 국민에게 대법원 확정판결을 부정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 후계자로 점 찍었다고 밝힌 한 전 총리는 9억원가량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5년 8월 20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았다. 약 6년이 흐른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전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과 공모해 2017년 대선 당시 인터넷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징역 2년형을 확정받았다.

대법관 만장일치 유죄 판결에도…‘대안적 진실’

두 사건은 각각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대법원2부 소속 대법관들이 만장일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그러나 한 전 총리에 이어 김 전 지사는 자신만의 ‘대안적 진실’을 내세우며 사법부 판단을 부정했다.

대한민국 재판은 피고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3심제로 운영된다. 한 사건에 대해 3번까지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재판마다 법원의 종류가 달라지고 재판부 구성도 바뀐다. 마지막 대법원 판결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재심 청구 등의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독 한 전 총리와 김 전 지사는 이런 사법 체계를 따르지 않는 대신 소셜네트워크(SNS)와 자서전 출간 등을 통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닮은 점은 또 있다. 검찰이 대법원 판결 다음 날 형 집행에 나서려고 하자 한 전 총리와 김 전 지사는 다양한 사유를 들며 최대한도로 수감일을 늦췄다. 한 전 총리가 대검찰청 예규에 따라 사흘을 늦췄고, 김 전 지사는 주말이 꼈다는 등의 사유로 나흘 연기했다. 그 사이 이들은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다.

이재명·이낙연·추미애·김어준…판결 집단 불복

여권 인사들이 집단으로 대법원 확정판결에 불복해 사법부 공격에 나선 점도 공통점이다. 특히 김 전 지사 판결에 대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법원 확정판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사법절차 안에서 규명하고자 했던 진실은 끝내 찾을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대법원 판결은 몹시 아쉽다. 진실을 밝히려는 김 지사의 노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 밖에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김두관 민주당 의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박용진 민주당 의원 등도 비슷한 입장을 내놓았다.

방송인 김어준씨. 뉴스1

방송인 김어준씨. 뉴스1

방송인 김어준씨는 지난 23일 유튜브 채널 ‘딴지방송국 다스뵈이다’에서 대법원을 향해 “와, 이 개놈XX들 진짜 열 받네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거를”이라며 욕설을 내뱉기까지 했다.

이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방귀 뀐 놈이 성 내는 것도 황당한데, 아예 똥을 싼 놈이 성을 내니…”라며 “김경수가 열은 너한테 받아야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씨가 2018년 2월 자신이 진행하던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를 통해 직접 매크로 프로그램을 시연하며 “(드루킹) 사건을 최초로 공론화했다”고 자랑스러워 했던 걸 꼬집은 것이다.

법조계에선 “김 전 지사가 2023년 출소하면 최근까지 무리하게 벌어졌던 여권의 ‘한명숙 구하기’처럼 ‘김경수 구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른 점도…김경수는 “경남도민에 송구” 사과

물론 한 전 총리와 김 전 지사의 닮은꼴 행보는 앞으로 깨질 가능성도 있다. 일부 차이점도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한 전 총리는 수감 직전 사과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김 전 지사는 경남도민 등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남, 더 큰 경남을 위해 시작한 일들을 끝까지 함께 마무리하지 못하게 되어 참으로 안타깝고 송구하다”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서울구치소 앞에서 결백을 상징하는 백합꽃 다발과 성경책을 들며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김 전 지사 손에는 특별한 소품이 보이지 않았다. 한 전 총리를 배웅하는 길에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유은혜 교육부 장관 등 여권의 유력 인사 30여 명이 무더기로 나타났지만, 김 전 지사 곁에는 고민정·김정호 민주당 의원 일부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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